누군지도 모르는 고마운 분들이 그 귀찮디 귀찮은 앱을 깔고 브런치의 그것도 나의 글의 구독자님들이 되어준 것이다.
"이 소중한 초기 투자자들을 꼭 지켜주리라 더 좋은 글을 써야겠어" 순간 나는 사명에 불타올랐다.
하지만 "아니야...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사명의 글이 아니고, 일상의 작은 힘 하나라도 얻을 수 있는 담백한 글인 거지"
다행히도 얼른 자각하고 빠르게 힘을 뺐다.
"좋은 글입니다. 하루를 시작하기에도 출근 후 업무를 시작하기에도 좋은 글입니다. 결국 우리가 왜 사는지를 소소하게 알려주신 강렬한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 한 남자 직장인인듯한 분의 댓글이 달렸다. 여기까진 참 좋았다... 그런데...
"그런데 저희 와이프는 예쁘다고 하면 싫어합니다. 저는 오히려 예쁘다는 말에 행복해하는 아내분을 보시는 그 남편분이 부럽네요"
.
아침에 스피치 코칭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이 댓글을 일단 삼키고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나는 얼른 이 댓글을 '엄마 여자들' 독서 모임방에 공유했다.
예쁘다는 말을 싫어하는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자신의 생각을 달아달라고 했다.
다들 조금씩 흥분하는 것이 느껴졌다.
여자 아내 A : 일단 그 남편 참 따듯하네요. 아내가 싫다고 해도 예쁘다고 계속 말해주는 상황이잖아. 캬 언젠가는 그 아내도 기뻐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여자 아내 B: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아내분이 스스로 이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너무 많이 듣는 말이어서 식상할 수도 있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예쁜지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따라 눈이 촉촉해 보이고 이쁘네~ 요리하는 뒷모습이 이뻐 보이네~뭐 이렇게 말이죠.
여자 아내 C: 저라면 예쁘다는 말은 들어도 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ㅎㅎㅎ아니면...
매력 있어~로 바꿔서 이야기 해보시면 어떨지요.
저마다 자신의 남편을 떠올리며 감정이입이 된 것 같은 뉘앙스들이었고 남동생이나 친정오빠를 앞에 두고 정성껏 훈수를 두듯 말들을 이어갔다.
한 엄마는 논문까지 찾아서 장문으로 열변을 토했다.
여자 아내 D: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고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잘 받아들인다고 해요. 제 생각엔 그 와이프분은 지금 남편에게 무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자라온 성장과정에서 그런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 단어를 들으면 몸이 배배 꼬이고 손발이 오그라들기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내분이 말은 그렇게 해도 남편의 사랑의 표현으로 결핍의 그릇이 채워지고 있는 중일테니 그 남편분 너무 걱정 말라고 전해주고 싶네요. 이렇게 따뜻한 남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니까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칭찬하시라고요. 그리고 한 10년 후쯤 결과보고 차 다시 대댓글 달아달라고 해주세요ㅎㅎㅎ
그러다가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드는 톡이 쓱 올라왔다.
여자 아내 E: 저는 제가 남편에게 그렇게 해줘요. 술만 먹으면 어릴 때 부모님에게 상처 받아 곪아있던 것을 엄청 이야기하더라고요. 긴 시간 다 들어주었어요. 그랬더니 어느새 어릴 때의 이야기를 안 해요. 다 쏟아내 버렸나 봐요.
그리고 남편이 내가 칭찬해주면 초기엔
반응도 없고 어색해서 얼굴도 안 보더니 그래도 계속 해주었더니만이제는 은근히 좋아하고 먼저 바라는 눈치예요ㅎㅎㅎ 다른 사람들한테 와이프가 칭찬 많이 해준다고 자랑도 하고 다니는 것 같고요. 역시 칭찬은 남편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최고의 방법인 것 같아요.
이제 이 분위기를 어쩔 것인가. 어찌 수습할 것인가. 이 엄마의 사정을 다 아는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조용하던 방에 드디어 톡이 올라왔다.
"아 천기누설이네요. 칭찬은 남편을 춤추게 한다! 현명한 아내다 자기야! 아 나는 진짜 이기적인 여자인가 봐. 진짜 남편은 여자하기 나름인 건데... 남편에게 칭찬은 커녕 '말 안 해도 알겠지" 싶어서 그냥 말을 안 해버리는데..
남편도 나에게 표현을 잘 안 해주니 불만만 많고.."
그 뒤의 우리의 대화는 '우리가 먼저 남편을 칭찬하자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우리가 남편에게 먼저 하자' 쪽으로 아주 바람직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무척 궁금하다.
이 저녁 모두의 가정에서 펼쳐질 그 댓글의 주인공이 시작한 여러모양의 나비효과가.
"남편 팔아(?) 다음 메인에도 등극하고 브런치 작가로 신고식도 제대로 했으니 치킨은...
얼굴 예쁜 자기가 사!"
아 이런 거구나. 별로인게 맞네.
이럴 때 쓰는 예쁘다는 말은..
하지만 바보같이 그래도 난 좋았다.
나의 남편의 '예쁘다'는 오직 나에게만 쓰는 단어임을 아니까.
서로간의 신뢰 안에서 사용하는 '예쁘다'는 말은
그냥 그 단어 그대로 설레고 칭찬으로 들린다.
나도 30대 때는 남편에게 매일 짜증을 부리고 트집을 잡고 불만이 하늘을 찔렀었다.
그런데 긴 시간 나의 어린 시절의 빈 그릇을 채워주고 기다려준 남편, 남편의 급한 성격을 기다려준 나.
쌍방의 노력으로 우리는 40대부터 로맨틱하게 사는중이다.
영화 '어바웃타임'중에서
남주의 여동생 키켓이 동거남과 술을 마시고 다툰 후 운전을 하고 사고가 나서 입원한 장면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