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초보의 기내식 러브스토리
나는 기내식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비행기는 타 본 적이 있지만, 저가항공이었던 이유로 기내식은 접해 보지 못한 탓이다. 여행 블로그를 보면 다른 내용보다 기내식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막상 받아보면 정말 별 것 없다지만, 받아보지 못 한 자는 언제까지나 별 것으로 느껴지리라.
2017년 친구와 함께 했던 방콕행 비행기에서 간편 기내식을 먹어보게 되었다. 친구는 별 감흥 없어 보였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신세계였다. 기내식이라니! 방콕행은 주먹밥, 인천행은 바나나와 요플레 등의 간식 상자였지만 감동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평소엔 눈길도 안 줄 음식일 텐데 이상하기도 하지.
다음 해 비행기에 다시 오를 기회가 생겼다. 작년의 감동을 배로 느껴보겠다는 마음으로 정식 기내식을 먹을 수 있는 대형 항공사를 예약 후 한껏 들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인천에서 이륙한 후의 기내식은 비빔밥 또는 생선 튀김이었다. 두 가지 모두 절대 내키지 않는 선택지였는데, 그나마 덜 싫어하는 쪽인 생선 튀김을 골랐다. 조금은 바삭하겠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눅눅한 튀김옷을 입은 '모양만 튀김'인 생선에 실망하고 말았다. 마치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느낌인 데다가 설상가상 비행기 멀미로 반도 먹지 못했다. 탕수육 소스같이 새콤달콤한 소스, 눅눅한 튀김, 같이 나온 쌀밥 모두 입 안에서 껄끄러웠다. 같이 나온 빵만 겨우 다 먹은 후 남은 비행시간 동안 깊은 시름에 빠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기내식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이유가 있구나, 하늘 위 음식이 그렇지, 촌뜨기처럼 기내식에 설레 하다니 멍청이 같으니라고.
돌아오는 비행기는 새벽 출발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메뉴는 간단했다. 흰 죽 또는 오믈렛. 저녁은 굶어도 아침은 굶을 수 없는 내 위장은 그래도 먹고살겠다며 오믈렛을 외쳤다. 보나마다 급식 같은 단단한 계란찜이겠지! 이젠 속지 않는다구. 그렇게 두 번째 기내식이 등장했다.
엥, 그런데 구성이 굉장했다. 폭신한 계란 오믈렛에 부드럽게 구운 감자, 그리고 짭짤한 소시지. 행여나 모자랄까 봐 자리 잡고 앉은 빵과 버터. 후식으로 과일컵과 요플레까지 착착 준비되었다.
당근과 양파가 더해져 돌돌 말린 오믈렛은 부드럽고 담백했으며, 감자와 소시지는 입 안이 심심할까 봐 다이내믹한 짠맛과 감칠맛을 더해주었다. 빵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면 요플레와 과일로 깔끔하게 식사를 마무리지을 수 있는 구성. 아마 그날의 탑승객 중 내가 제일 맛있게 먹지 않았을까.
새벽 5시, 만족스럽게 소시지와 계란을 씹으며 뻔뻔한 생각이 들었다. 인천발 비행기에서는 내가 운이 없었나 봐, 하마터면 기내식한테 실망할 뻔했잖아,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