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보람되지만 소모적이고, 감사 인사를 듣지만 욕을 먹기도 하는 금융 상담가

by 이지



"그래서, 된다는 거예요 안된다는 거예요?"

"고객님, 현재 상황에서는 신규 대출이 너무 많아서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 나라에서 나같이 어려운 사람들 채무 탕감해 준다던데... 아니에요?"

"조건에 해당되는 분들은 지원을 해드리지만, 그게 아니라면 조금 어렵습니다."


아침부터 한바탕 씨름을 또 했다. 상담 시간은 30분. 내방 고객의 힘겨운 인생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시간이다. 상담이 잘 마무리가 되고, 신청 요건이 되어서 업무가 진행이 되면 안도의 눈물과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만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어디 가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어려워 내 앞에서 온갖 얘기를 다 풀어놓고 떠난 자리에는 한 층 더 닳아 없어진 '감정 노동자'가 남아 있다.


처음 금융 상담과 관련된 일을 시작한 것은 2017년, 한국 나이로 스물일곱 살 때였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갈빗집을 운영하셔서 나에게 '소상공인'이란 우리 부모님 같이 성실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우리 부모님처럼 하루하루 휴가도 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항상 친절한 사람들.


그게 날 더 힘들게 했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대출, 채무와 관련해 만나는 자영업 사장님들은 달랐다. 인생이 너무 고달팠고 몸은 여기저기 아팠으며, 자주 화가 나고 마음속이 짜증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연할 수도 있다. 금전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얼마든지 행복하고 친절하고 여유 있는 사장님이셨겠지. 장사도 안되고, 코로나 같은 알 수 없는 질병이 창궐해 가게 문을 닫기 일보 직전이 되고, 경기는 안 좋은데 물가와 최저임금은 속절없이 오르는 이런 현실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사장님들이 누가 있을까?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내 앞에 앉아서 종이를 던지고, 왜 안되냐고 우기고 소리 지르는 사장님들은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마치 내가 호빵맨이 되어 호빵을 떼어 주다가 점점 없어져버리게 될 것만 같다. 다행인 것은 나의 눈빛은 갈 길을 잃었지만 코로나 이후 일반화된 '마스크' 덕분에 무표정인 나의 얼굴이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고객님, 힘드시죠. 아이고... 어떡해요, 저희도 해드리고 싶은데... 오늘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목소리는 최대한 안타깝게, 눈빛은 아련하게. 하지만 이미 상처받은 나의 몸과 마음은 지쳐버리고 말았다. 모 대기업 ARS 안내 음성 멘트처럼 '나도 누군가의 딸'인데.


'저도 감정이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급하게 아이스커피 한 모금 마시며 눌러 없앤다. 그리고 바로 쉴 틈 없이 창구를 열고 다음 상담을 시작하면서 화가 잔뜩 난 사장님의 잔상을 지워내려고 노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