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적어보고 크게 숨 한 번 쉬어보자

회사에서만 쓰는 ‘감정 노트’

by 이지



‘금융’과 ‘상담’ 그 사이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바로 내 감정이 소모될 때인 것 같다. 대면 상담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대부분은) 어려운 상황 속으로 들어서야 하고, 그 안에서 충분히 공감해 드리며 한 편으로는 정확하고 신속하게 업무 처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가슴속이 답답하고, 마치 내가 내방하신 분의 일을 직접 겪고 있는 것 같아서 일이 끝나고 퇴근을 하면 그렇게 진이 빠질 수가 없다. 흔히 ‘기 빨린다’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일 듯싶다.


그러다 한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되었는데, 직장 생활 10년을 이어가면서 하게 된 루틴 중 하나로 ’ 감정 노트‘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감정 노트? 그냥 평소 쓰는 일기에다가 털어놓는 것으론 부족한 건가? 생각하며 영상을 보다 보니 나에게 너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바로 로이텀 A6 사이즈의 노트를 주문했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나의 ‘감정 노트’. 이 노트는 거의

회사에 두고 다닌다. 일을 처리하는 중간중간 어찌할 수 없는 지침과 무력감, 때로는 화와 억울함, 슬픔 등 다양한 감정들이 휘몰아칠 때 이 노트를 꺼낸다. 그리고 마구마구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 내려간다. 나중에 살펴보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오늘 OOO 손님이 암진단을 받고 절망하며 내방했다. 미성년 아이가 둘인데 나도 모르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면서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이 분을 우리의 업무나 제도로 도와드릴 수 없는 상황이 애석했다.‘


‘왜 다짜고짜 화를 내는 거지? 나는 친절하게, 예의를 갖춰서 상담하고 대화를 나누고자 했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가? 결국 본인이 자초한 일에 대해 내가 지원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순간부터 나를 몰아세웠다. 내가 왜 다른 사람의 금융 채무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


이 ‘감정 쓰레기통’을 웬만해서는 다시 읽어보진 않는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다시 들춰보지 않는 것처럼. 처음으로 이 글을 쓰면서 거의 다 써가는 노트를 쭉 훑어보는데 ‘참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사정이 있구나’ 싶으면서도 글씨체에서 느껴지는 나의 분노와 안타까움들이 느껴져서 왠지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늘은 직장인들 모두가 환영하는 금요일. 나도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일을 마치고 퇴근할 수 있게 될까? 오늘은 또 ‘감정 노트’에 어떤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게 될까? 이 노트를 서랍에서 꺼내는 날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모두 맘이 평온해 이런 ‘감정 털어놓기’ 같은 일이 필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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