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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지 않기 위해 한다.

시작은 산후우울증

by 이지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다 합치면 10년 차, 출산하고 육아한 지는 1년 5개월, 일과 육아를 4개월째 병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튜브 브이로그 채널 운영, 독서모임 2개 운영, 기록 모임 참여, 경제 신문 공부와 경매 공부, 브런치 글 연재까지. 틈이 나는 시간들을 나만의 활동들로 채워가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가끔은 ‘도대체 난 뭐가 되고 싶어서 이러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딱히 돈이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승진을 위한 일도,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아이를 키우면서 이상한 고집과 오기가 생겨 시판 이유식 대신 ‘뿐이 이유식’ 책을 사서 그 스케줄 그대로 만들어 먹이고, 지금은 어설픈 ‘한 그릇 유아식’으로 아이의 저녁을 어찌어찌 때우고 있는 상황이다.


‘일하는 엄마들 다 시판 먹이던데, 좀 내려놓고 하지 그래.’라고 말하는 지인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얘기 들으면 더 포기하기 싫어져서 지금도 소고기 가지 덮밥을 만들고 사골국을 끓이고 있다.



생각할 틈을 주지 말자.



이 다짐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출산 후에 오롯이 내 시간은 단 한순간도 없다는 것을 조리원에서 돌아와서야 알아버린 나. 3시간마다 우유를 줘야 한다고 해서 난 정말 3시간씩 쪼개서 잠을 잘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웬걸. 먹이고 트림 시키고 아이를 눕히면 그새 1시간이 갔고, 이유 모를 용쓰기에 벌떡벌떡 일어나서 아이를 살피다 보니 집에 온 첫날은 1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그야말로 ‘멘붕’이 왔고, 설상가상으로 호르몬까지 널뛰면서 극도의 우울감과 절망감이 몰려왔다. 아이가 예쁘기보다는 도망치고 싶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를 물건 맡기듯 넘기고 안방으로 들어가 혼자 울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지낼 수만은 없었다. 무표정으로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본 남편은 그다음 주에 바로 육아휴직을 신청했고, 가장 힘들다는 100일을 같이 버텨주었다. 남편의 휴직으로 혼자 산책을 나갈 수 있게 되었고, 밤샘을 자처해 준 남편 덕분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하루 1-2시간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 주었고 나는 꼬박꼬박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하고, 스타벅스에 가서 책을 읽었다.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것이 그 자체로 위대하고 끝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지만, 그땐 그저 ‘육아만 하는’ 사람이고 싶지가 않았다. 공부하고, 책 보고, 신문 보면서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어떻게든 이어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해 ’ 저도 여기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어요!‘라고 막 괜히 알리고 싶었다. 지금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순간들을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뼛속까지 문과생이자 똥손인 내가 유튜브에 ‘이지라이프‘라는 계정을 만들고, 아이폰 기본 카메라로 내 일상들을 촬영해 ‘블로’ 어플로 허접하게 편집한 첫 유튜브 영상이 작년 6월 탄생하게 되었다.


‘나도 여기 있다!‘고 이 세상에 신고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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