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지나니 허무하고 속상한 이 시대의 K-부모들
“채무가 너무 오래되어서 조회가 안되네요. 채무가
어디 있는지 찾아오셔야 할 것 같아요. 예약이 많이 밀렸는데 급하시니까 내일 아침 9시에 맞춰서 오시면 바로 해드릴게요. “
어떻게든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자신의 불안한 경제적 상황을 해결하고 싶은 6-70대 K-부모님들. 신용불량자가 된 지는 이미 오래라 정상적인 금융 거래를 언제 해봤는지는 기억을 되짚어봐야 할 정도고, 10년도 넘은 채무들은 신용정보조회표에 조회조차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래도, 내 통장으로 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어도, 일용직으로 일당 받아가며 그 돈으로 애들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켰다. 신용은 망가졌을지언정 적어도 우리 애들한테는 떳떳했고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그렇게 열심히 키워 장성한 아이들은 하나 둘 부모 곁을 떠나가버리고, 남은 건 조회도 안 되는 빚뿐. 독촉도 이제는 없어서 다 끝났겠거니 싶어 통장 하나 만들면 귀신같이 알고 압류되어 쓰지도 못하게 된다. 속상한 마음 어디 털어놓을 때도 없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우리 K-부모님들이 결국 내 앞으로 찾아온다. 그리고는 누구에게도 못한 말들을 미주알고주알 터놓고 울음을 꿀꺽 삼킨다.
‘자식들 다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결국 애들 다 결혼해서 보내고 남은 건 빚밖에 없어요.’
괜히 내 맘이 뜨끔한다. 나도 사회생활 시작하고 결혼한 이후로는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경제적 사정이 어떤지 사실 전혀 모르는데 우리 엄마도 내 앞에 앉아있는 고객처럼 어디 가서 울면서 상담받는 건 아니겠지?
신기하면서도 애잔한 건 모든 K-부모님들의 결론은 ‘그래도 자식들에게 짐 주지 않고 내가 해결한다’라는 것이다. 서러운 마음에 이런 데 와서 속마음 얘기는 털어놔도 그렇다고 해서 자식들에게 도움 받겠다는 건 또 아니라는 것. 세상 허무하고 속상해도 그게 부모의 맘인 것이다.
상담이 끝나고 괜히 엄마 계좌로 10만 원을 보내본다.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라고. 이렇게 또 내 속 편하자고 잔꾀를 부린다. 앞에 있는 고객에게는 어려운 부모 돕지도 않는 ‘몹쓸 자식들’이라며 위로하면서도 내가 그 몹쓸 자식이라는 걸 알기에 상담을 하면서도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내가 과연 부모님 뻘 되는 고객들을 그렇게 위로할 자격이 있을까? 또 상념에 빠진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말 못 할 일 같은 건 없겠지?‘ 그런데 더 슬픈 건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난 또 내 남편과 자식 챙기느라 엄마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거라는 게 눈에 훤하다는 것이다. 회사에선 세상 너그러운 친절한 직원이지만 나도 결국엔 K부모 속도 모르는 몹쓸 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