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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노트 자동화와 역순 사고법

6장. PKM 방법론

by 아키비스트J

일을 없애는 사람


전편에서 조니 데시멀 시스템을 소개하며 이미커피 대표 이림 님의 가르침을 언급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이림님 도움으로 제 데일리노트 자동화는 한층 정교해졌습니다.


단순히 도구 사용법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왜 자동화해야 하는지, 무엇을 자동화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시대예보'시리즈로 유명한 송길영 작가는 AI 시대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진 그 업무를 할 분을 찾았잖아요. 이제는 그 업무를 없앨 분을 찾는 것이죠." 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계가 축약됩니다. 메모 습관과 자동화는 바로 그 축약을 설계하는 작업입니다.




제텔카스텐: 9만 장의 대화 상대


루만의 비밀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은 70권의 책과 400편 이상의 논문을 남겼습니다. 학계에서는 그의 생산성을 경이롭게 바라봤습니다. 비밀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텔카스텐(Zettelkasten)이었습니다.


제텔카스텐은 독일어로 '메모 상자'를 뜻합니다. 루만은 9만 장 이상의 메모를 이 상자에 보관했습니다. 읽고 수집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류했고, 이 지식의 그물망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만들어냈습니다.


루만은 자신의 제텔카스텐을 '대화 상대'라고 불렀습니다. 카드들이 서로 연결되며 예상치 못한 통찰을 던져주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메모와 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메모에 하나의 아이디어

제텔카스텐의 핵심 원칙은 단순합니다. 하나의 메모에 하나의 아이디어만 담습니다. 이것을 원자적 노트(Atomic Notes)라고 부릅니다. 왜 이런 제약을 둘까요. 여러 아이디어가 뒤섞인 메모는 연결하기 어렵습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만 담긴 메모는 다른 메모와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습니다. 레고 블록처럼 조립이 가능해집니다.


루만은 세 가지 유형의 메모를 구분했습니다.


일시 메모(Fleeting notes):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빠르게 포착합니다
문헌 메모(Literature notes): 읽은 내용의 핵심을 요약합니다
영구 메모(Permanent notes):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한 지식입니다


중요한 규칙이 있습니다. 메모는 반드시 자신의 언어로 작성해야 합니다.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설명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직접 설명하려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메모가 곧 이해의 증거가 됩니다.


계층이 아닌 네트워크

전통적인 노트 정리는 폴더와 계층에 의존합니다. 제텔카스텐은 다릅니다. 위계가 없고 특권적 위치도 없습니다. 미리 정해진 체계 없이 내부적으로 성장합니다.


루만은 두 가지 연결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첫째는 순차적 번호입니다. 관련된 카드를 물리적으로 인접하게 배치했습니다. 둘째는 명시적 참조 링크입니다. 전혀 다른 주제의 카드로 점프할 수 있었습니다. 이 구조를 읽다보니 뭔가 기시감이 느껴졌습니다. 노트를 계층적 트리가 아닌 분산 네트워크로 만든 루만은 사실상 하이퍼텍스트와 URL을 예견한 것입니다. 웹이 등장하기 수십 년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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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에 관한 글을 씁니다. 솔로프러너이자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며, 디지털 아카이브 컨설팅을 합니다. AI 시대 모두가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인지적 평등이 실현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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