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의가 달라진 적은 없다.
우리는 행복의 틀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니 이미 만들어져 있다. 우리 사회는 행복의 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한다.
처음으로 행복의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철학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틀 안에서 행복한지가 궁금해졌다. 나는 행복하다. 하지만 나의 행복은 만들어진 틀 안에서만 이루지지 않는다. 틀 안에서의 행복도 있을 것이고, 틀 밖에서의 행복도 있을 것이다. 틀 밖에서의 행복은 우리 사회에서 인정되지 않지만 서도..
행복 (幸福)
[명사]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런 정의가 나온다. 이게 뭔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낫고 정확한 정의를 찾기도 어려울 듯하다.
돈은 이 정도 있어야 하고, 직업은 이 정도 되어야 하고, 집은 이 정도, 가정환경은 이 정도, 학력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고 등등. 우리 사회는 행복의 틀 자체가 아주 견고하게 짜여진 듯하다. 그런데 이 틀 밖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한다. 스스로가 행복하다 하고, 실제로 행복 함에도 불구하고, 틀 밖에서의 행복은 그런 척하는 거라고, 강한 척하는 거라고, 행복할 리가 없다고, 치부해 버린다. 틀 안에서의 행복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틀 안에 정확하게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몇 % 나 될까?
코로나로 재난지원금을 지원하기 위해 소득 수준을 칼같이 분류를 했는데, 그 기준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 행복한 사람이 10%나 되겠나? 내가 살고 있는 지역(해외)의 사람들에게 이 기준을 들이댄다면 행복한 사람들이 2%도 안될 것이다. 분명히 내 주변 사람들이 불행하게 보여야 하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행복지수는 우리보다 훨 높다.
실은 나 자신 역시 알게 모르게 이런 틀을 만든 세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행복이란 건 그런 틀이라든지 기준이라든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아간다. 행복은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사람으로 비롯됨이 최소한 85%는 되지 않을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신을 행복의 틀 안에 넣으려 하지 말라는 말이다. 얼마만 있으면 행복할 텐데라는 둥 말이다. 그 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자신이 그 과정에서, 그 순간에서 행복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얼마가 만들어졌을 때의 행복은 더 커지지 않겠나? 성취감이란 느낌을 더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