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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룡 Jan 14. 2024

할머니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할머니는 내가 취직을 해서 입사한 해에 돌아가셨다. 내가 취직이 확정되었을 때 할머니는 춤을 추셨다고 한다. 30년이 지난 이 세월에 나는 할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다. 어려서 할머니는 화롯불 위에 덥혀진 된장찌개에 밥을 비벼 주시기도 하고, 밭에서 금방 딴 꼬부라진 오이(이게 참 맛있다.)를 손에 쥐어 주셨었다.


분명 시골에서 평생을 농사를 지어오신 분이었음에도 할머니는 고우신 분이셨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분명 할머니는 자그마한 손주를 너무나 귀여워하셨을 것이고, 사랑하셨을 것이다. 어려서의 기억으로만 할머니에 대한 나의 감정을 끌어내기엔 어려움이 있겠으나,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보여준 사랑에 반의 반, 아니 티끌만큼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청난 눈물이 끝없이 쏟아졌다. 눈물을 쏟아 내면서도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저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그렇게나 슬펐다. 그때 나는 지금까지 내가 태어나서 흘린 평생의 눈물보다 훨씬 더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그 이후에 장인 어르신 돌아가셨을 때를 빼고는 내가 눈에서 흘러넘치는 눈물을 보인 적은 없다. 내 기억 속에 살아계시는 할머니는 지금의 내 나이와 별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어린 손주가 얼마나 이뻤을까?


후회가 밀려온다. 어려서 할머니에게 좀 더 재롱도 부리고, 더 안기고 했어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마도 나는 어려서도 그리 살갑진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호상이라 했다. 호상이라니? 죽음 앞에 세상에 호상이란 게 있을 수는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참 고우신 분이셨다. 곱게 늙으셨다고 해야 하나.. 곱게 늙는다는 것은 마음이 그렇게 따라 주지 않으면 곱게 늙어지지가 않는다. 내가 늙어가 보니 알겠다. 그렇게 곱게 늙으셨다. 그런 할머니의 생각이 지금 이렇게나 마음에 일어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유전자를 따지자면 아마도 나는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의 유전자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만약 유전이란 것이 정신적 유전도 있다고 하면 - 아니 있겠지. - 나는 할머니를 더 많이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재작년에 한국에 들어갈 기회가 있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갔다 왔었다. 후회와 아쉬움과 많은 감정들이 섞인 말들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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