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이도 읽어댔다.

by 구자룡
참 많이도 읽어 댔다.


참 많이도 읽어 댔다. 눈에 보이면 읽고, 눈에 띄면 사서도 읽고, 빌려서도 읽고, 지하철에서도 읽고, 침대에서도, 식탁에서도그저 읽어 댔다. 정말이지 무진장 읽었다. 원칙, 슈독, 온워드, 텐배거, 일본전산의 독한 경영수업,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사업을 한다는 것,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 탐스스토리, 미중전쟁, 열정이 이긴다, 신경 끄기의 기술, 나일강의 죽음, 사피엔스, 네이버는 어떻게 일하는가, 이순신의 제국, 생각의 힘, 하버드 협상 수업, 해저터널의 음모, 회랑정 살인사건, 지금 만나러 갑니다, 트라이던트, 당신 없는 나는?, 칼의 노래, 삼성의 임원은 어떻게 일하는가, 거짓말을 먹는 나무, 지옥의 문, 매일 아침 써봤니?, 창조경영 구글, 제4차 산업혁명, 기사단장 죽이기, 1Q84, 그릿 등등 등등...


몇 달 동안 참 많이도 읽었다. 장르도 없고, 규칙도 없고, 그저 보이면 읽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왜 그렇게나 읽어 댔는지.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당시에 나에게 일어났던 상황을 나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단순히 시간을 채워가기 위해서 일 수도 있었다. 누구나 어려운 상황이 되면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돌파구를 찾는다. 피해 가려는 꼼수 일 수도 있고, 용감하게 극복해 가려는 의지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술로 풀어가고, 어떤 사람은 여행으로 풀어가고, 어떤 사람은 운동으로 풀어가고, 다들 나름 내로 풀어가는 방법이 있다. 나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술로 풀기는 어렵고, 설사 술을 마신다 해도 술로 풀고 싶지는 않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만약 내가 술을 마실 수 있고, 술로 풀었다면 악순환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나는 책들에 감사한다.


모두가 다 - 거의 예외 없이 - 고만고만한 어려움은 모두가 안고 산다.


처음엔 생각도 없이 그저 손이 가는 대로 읽어 댔는데, 읽다 보니 책들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다는 거다. 화려해 보이고, 다 가진 것 같아 보이고, 나만 어려운 것 같고, 나만 힘든 것 같지만, 모두가 다 - 거의 예외 없이 - 고만고만한 어려움은 안고 산다. 심지어는 살아오면서 쌓아왔던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고, 가슴이 에어지는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이를 극복했다거나, 극복해 가는 방법을 서술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꼭 내 이야기를 작가가 대신 써 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도 있다. 어떤 경우엔 그저 어려움만을 서술한 책들도 있다. 그런 책들을 읽고 위안을 삼기도 한다.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어렵고 불행한 사람이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식의 위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상 자기 합리화를 목적으로 책을 읽게 되면 상황 자체가 내 탓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어떤 가수가 성공을 했다고 하면, 우리는 그 가수의 성공과 그 가수가 살아온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축하해주어야 한다. 이게 맞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때론 그 가수의 부모님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그 부모님이 음악계에서 성공을 했던 안 했던.. 그럼 그렇지 그러니 노래를 잘해서 성공하지라고 지레짐작을 한다. 목소리를 타고났고,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했다면, 그럼 그렇지 그러니 성공 안 할 수가 없다고, 나는 그런 걸 타고나지 않았으니 성공할 수가 없다고 스스로가 자기 합리화를 시켜 버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그래서는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기 어려워진다. 악순환이 지속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절실함을 만들어 내야 한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극복 스토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가만히 보면 이래선 안 되겠다부터 시작이 된다. 소설의 주인공이던 실제 스토리의 당사자건, 작가건 어느 순간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극복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토리의 내용은 다를 지라도 순서는 얼추 다 비슷하다. 주인공이 (용서할 사람들 용서도 하고) 뭔가 생각을 바꾸고 일어서려고 하면 주변에선 다들 안된다고 한다. 심지어는 상황도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여기서 무너지지 않는다. 주변의 열화(?)와 같은 부정에도, 생각을 바꾸고, 무엇인가 작은 거라도 실제로 실행하고, 꾸준하게 지속하고, 그러다 보니 임계점을 맞게 되고, 임계점을 넘어서면 뭔가가 조금 이루어지고, 이후 대박으로 이어진다. 여기서의 대박은 우연의 대박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의 산물, 필연의 대박이다.


극복과 성공을 위한 프로세스는 정해져 있다. 그 프로세스를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단순하다. 그걸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렇게나 오랜 세월을 프로세스에 익숙해져 있고, 복잡한 프로세스도 얼마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익숙해지도록 훈련이 되어 왔음에도, 이렇게나 단순한 프로세스를 그냥 지나쳐왔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이 프로세스를 따를 필요도 없었고, 절실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절실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절실함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