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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경훈 Aug 14. 2019

응급실 일기

내 어머니의 형제

내 어머니의 형제

1.
"외삼촌이 폐암이란다."

전화기 너머 어머니의 음성은 차분해서 더 슬펐다. 그러면서 소세포암(small cell cancer)이란  진단명을 덧붙였는데 의료인이 아닌 어머니에게는 생경한 단어였을 것이다. 그때는 본과 4학년(6학년, 의대 졸업반) 진급을 앞둔 겨울 방학이라 '수술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항암 화학요법에 잘 반응하나 내성이 빨리 나타난다', '뇌 전이(Brain metastasis)가 많다' 같은 단편적 지식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모두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앞서 말했듯 그때 나는 의대 졸업반을 앞둔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었고 기독교 의대생 단체의 수련회(그 단체는 여전히 건재하나 나는 이제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믿음을 거의 상실했다)에서 돌아오는 버스에 타고 있었다. 나는 함께 버스를 탄 친구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나만의 공간에 격리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분명히 같은 공간에 있으나 그들과 다른 차원에 있는 것만 같았다. 비교적 건강했던 외삼촌에게 폐암 선고가 내려진 것을 감정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외삼촌은 평소에도 기침을 자주 했으나 고등학생 무렵부터 시작한 흡연 경력을 감안하면 만성 폐쇄성 폐질환 혹은 기관지 확장증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다른 대부분의 암과 마찬가지로 소세포암 역시 진단하고 며칠 혹은 몇주 이내에 사망하는 질환은 아니다. 외삼촌은 의학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사례'에 가가운 임상 경과를 보였다. 외삼촌의 소세포암은 수술이 가능한 제한기(limited stage)가 아니라 수술이 가능하지 않은 확산기(extensive stage)에 해당했고 초기 항암 화학요법에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한동안 비교적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다 어느 새벽 명치 부분(epigastric area)의 심각한 통증에 응급실을 방문했고 복부 CT에서 췌장으로 전이된 종양이 발견되었다. 새로운 항암제로 다시 항암 화학요법을 시행했고 다행히 이번에도 반응은 좋았다. 그러나 외삼촌의 운은 거기까지 였다. 외삼촌은 경미한 두통을 호소했고 병원에서는 진통제를 처방했다. PET CT를 시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뇌 전이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후 외삼촌은 의식없이 발견되어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시행한 CT에서 뇌 전이가 발견되었다. 뇌압을 낮추기 위해 만니톨을 투여하고 방사선 요법을 시행했으나 외삼촌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항암 화학요법의 반응이 좋아 진단부터 사망까지 만 4년의 시간이 걸렸고 마지막 몇 주를 제외하면 또렸한 의식 상태와 일상 생활이 가능한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가족들에게 남겨진 차가운 위로였다.

외삼촌이 사망하고 벌써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으나 그의 죽음은 여전히 내게 큰 영향을 남긴다.

2.
15시간의 밤 근무 끄트머리, 퇴근까지 20분 남짓 남은 아침, 노인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왔다. 직접 걸어서 응급실 문을 통과했으나 '가까스로'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배우자로 추정되는 보호자가 부축하려 했으나 정작 환자는 팔을 저으며 한사코 거부했다. 응급실 침대에 앉은 그는 헐떡이며 숨을 고른 후에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손가락에 부착하는 센서로 측정한 산소 포화도는 90% 정도였고 혈압과 체온은 정상 범위였으나 100-110회 가량의 빈맥과 함께 24-25회 가량 빈호흡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언제부터 숨이 찼는지 물었다.

"한참 되었소."

'한참'이라.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에게 '언제부터 아팠습니까?'라고 물으면 '한참', '예전', '좀', '요즘' 같은 단어로 대답할 때가 많다. 환자와 보호자는 의료인이 아니니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표현은 모두 지극히 주관적이다. 사람에 따라 '요즘'은 며칠 전부터를 의미할 수도 있고 몇 달 혹은 몇 년 전부터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한참도 마찬가지여서 사람마다 몇 시간부터 몇 주 심지어 몇 년까지 그 표현이 나타내는 시간의 길이가 다르다. 그러니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인 나에게는 객관적인 단위가 필요하다.

"한참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며칠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몇 달일 수도 있죠. 철두철미하게 정확한 시간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대략적이나마 3-4일 혹은 1-2주처럼 제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그러자 환자는 1달 전부터 숨이 찼다고 얘기했고 보호자는 이내 '사실은 1년 전부터 숨이 찼다'고 정정했다. 환자는 이전에 진단받은 질환은 없었고 탄광처럼 먼지나 매연이 많은 장소에서 일하지도 않았으나 10대부터 담배를 피웠고 일흔을 넘어서도 끊지 못하고 있었다. 청진기를 귀에 걸고 환자의 폐음을 확인하자 천명음(wheezing, 천식 같은 만성 폐질환에서 들리는 쌕쌕거리는 소리)이 들렸다. 낙관적으로 판단하면 환자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일 가능성이 높았다. 쉽게 설명하면 만성 폐쇄성 폐질환은 천식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데 천식이 선천적인 질환이라면 만성 폐쇄성 폐질환은 후천적으로 폐가 받은 손상이 원인이다. 그런 손상의 원인은 폐결핵부터 먼지나 매연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까지 다양하나 사실상 흡연이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한다. 그래서 환자에게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 있을거라 판단했다.

나는 비강 카테터(nasal catheter)를 이용해서 분당 2리터의 산소를 공급하도록 지시하고 흉부 X-ray와 기본적인 혈액검사를 시행했다. 환자의 호흡곤란을 감안해서 X-ray 촬영실까지는 휠체어를 사용하도록 했는데 예상대로 흉부 X-ray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전형적인 소견에 가까웠다. 나는 기관제 확장제 분무 치료를 시행했고 그 무렵 낮 근무를 담당하는 응급실 전담의사가 출근했다.

평소라면 환자를 낮 근무 응급실 전담의사에게 인계했을 것이다. 물론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한 환자와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나 급격한 악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환자는 근무 시간이 끝나도 응급실에서의 치료가 일단락되고 해당 임상과에서 입원장을 발부할 때까지 내가 담당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환자는 그런 질환에 해당할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급성 악화로 판단하기에는 호흡곤란과 환자가 호소하는 답답함이 심했다. 흉부 X-ray 역시 급성 폐렴 같은 병변이 명확하지는 않았으나 종격동(흉부 X-ray의 중앙 부분에 위치하며 대동맥, 기관, 식도, 심장이 여기에 해당한다)의 모양이 조금 특이했다.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에서 관찰되는 종격동 확장(mediastinal widening)과는 달랐으나 너무 두껍고 경계가 고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환자를 인계하지 않고 직접 진단하기로 결심하고서 흉부 CT를 시행했다.

흉부 CT 결과는 불길한 예상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흉부 X-ray에서 종격동의 모양이 특이했던 이유는 종격동에 인접한 폐에 종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폐와 왼쪽 폐 모두 종격동에 인접한 부분에 종양이 있고 오른쪽 폐의 경우 종격동 주변 뿐 아니라 늑골을 침범한 종양도 확인되었다. 흉부 CT만으로 종양의 정확한 종류를 단정할 수는 없으나 악성종양, 이른바 폐암이라 불리는 질환인 것은 거의 확실했다. 양쪽 폐 뿐 아니라 늑골까지 침범한 것으로 미루어 초기는 아니었다. 의사의 완곡한 표현으로는 '상당히 진행된 상태', 일반인에게 좀더 와닿는 표현으로는 '말기 폐암'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휠체어에 탄 환자를 진료용 컴퓨터 앞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흉부 CT 결과 여러가지 문제가 확인되었습니다. 일단 가벼운 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자분에게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 있습니다. 천식과 비슷한 질환으로 태어날 때부터 있는 문제로 발생하는 천식과 달리 살면서 폐가 상처를 입고 생긴 흉터로 발생하는데 환자분의 경우는 흡연이 원인입니다. 완치 가능한 질환은 아니지만 잘 조절해서 살면 아주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환자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가벼운 문제' 다음으로 언급될 '심각한 문제'가 무엇일지 어느 정도 예상하는 듯 했다. 나는 흉부 CT에서 종양이 의심되는 부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대동맥과 기관지, 심장에 인접한 부분에서 혹이 관찰되었는데 단순한 혹이 아니라 악성종양 가능성이 높습니다. 악성종양은 암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환자분은 폐암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CT만으로 100% 단정할 수 없어 조직검사를 비롯한 추가적인 검사를 거쳐야 폐암으로 확정할 수 있으나 양쪽 폐 뿐만 아니라 갈비뼈에서도 종양으로 의심되는 병변이 관찰되어 진행된 폐암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전히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환자는 담담했고 보호자의 눈가에는 작은 눈물이 맺혔다. 나는 보호자에게 부탁해서 전화를 통해 환자의 자녀에게도 CT 결과를 통보했다. 지금 당장 수도권 대형병원이나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해도 입원이 가능할 가능성은 낮고 그렇게 며칠 일찍 암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별다른 의미가 없음을 설명하고 우리 병원 호흡기내과에 입원해서 보존적 치료를 하며 진료의뢰센터를 통해 수도권 대형병원 혹은 인근 대학병원 암센터 외래를 예약하는 것을 권유했다. 환자, 동행한 보호자, 전화로 연결된 자녀 모두 내 의견에 동의했고 나는 호흡기내과 의사를 호출했다.

3.
아버지, 외삼촌 그리고 나는 모두 독서광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탐욕스럽게 책을 읽는다' 혹은 '미친듯이 책을 읽는다'는 점만 비슷할 뿐 나머지 부분은 뚜렸히 구분되는 개성을 지녔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수재로 단순한 학습 능력으로는 외삼촌과 나를 압도했다. 그러나 대인 관계에 능숙하지 않고 지나치게 고집 센 외골수이며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은 강하지 않았다. 반면에 모험심 강한 부잣집 도련님인 외삼촌은 고등학생 무렵부터 반항기 넘치는 대담한 행동으로 유명했으며 대학에 입학해서는 이른바 운동권이 되었다. 그러나 굳은 의지를 지닌 냉정한 혁명가보다는 낭만적인 모험가에 가까웠고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재치있고 재미있는 말을 던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즐겼으나 그보다 강렬하게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은 없었다. 이른바 '개천에서 난 용'으로 표현되는 가난한 집안의 수재에도 해당하지 않고 모험심 강한 부잣집 도련님과는 더욱 거리가 먼 나는 아버지의 학습 능력도 지니지 못했고 외삼촌의 낭만적이고 대담한 모험심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독서량만큼은 아버지와 외삼촌을 합해도 나를 넘어서기 힘들만큼 많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도 강렬하다. 또 나는 아버지만큼 고집세고 집요하며 외삼촌만큼 반항적이다. 싸움 자체에 관심이 없는 아버지와 그저 상대를 움찔하게 만드는 것으로 만족했던 외삼촌과 달리 나는 어떤 싸움도 거리끼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는 아버지보다 외삼촌이 좋은 대화 상대였다. 재미있게도 외삼촌은 학생 운동권 생활을 끝내고 목사가 된 후에도 교회에서는 쉽게 드러내지 않았으나 진보 성향이 강했고 과거의 나는 다소 보수 성향으로 '진보주의자의 도덕적 우월의식'을 위선으로 몰아 공격하길 좋아했다. 덕분에 외삼촌과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랐고 정치적 견해도 늘 달라서 그런 대화에서 한번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삼촌은 내게 아주 소중하고 가까운 존재였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훌쩍 넘었으나 나는 여전히 그를 떠올리며 그가 내게 남긴 영향을 돌아볼 때가 많다.

그날 아침 퇴근 시간을 2시간이나 넘긴 무렵까지 응급실에 머무르며 그 폐암 환자가 입원하는 것을 지켜본 이유도 외삼촌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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