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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 May 24. 2023

로또 낙첨이라고 화를 내지는 않는데요

덕업일치가 되지 않은 건 화가 나요


“여보, 이거 당첨 확인 좀 해줘. 낙첨이야? 에이. 이거 언제 되냐?”

현금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아 자주 사지는 않지만, 가끔씩 로또를 구입하곤 한다.

요즘에는 로또 당첨 여부도 일일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 로또 복권의 QR코드를 스캔하기만 하면 끝이다. 1초 만에 나의 운명을 알 수 있다. 한 주 동안 행복회로를 돌렸던 그 상상이현실이 될 것이냐, 아니면 일장춘몽이 될 것인가. 보통, 아니 대부분은 후자다.


로또에 낙첨되었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물론 매주 거액의 로또를 사는 사람은 화가 날 수 있지만, 적어도 내 주변엔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고 우울해하거나 절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낙첨한 것이 내 탓이라며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로또니까 낙첨을 하더라도 “에이 아쉽네. 다음에 한번 더 사봐야지. “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왜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나에게 있어 일은 무언가 신성한 존재였다.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일을 좋아해야 하고, 또 좋아하는 일이기에 남들과는 차별화된 노력을 기울일 터이니, 반드시 잘할 수 있어야 하며, 그로 인해 나에게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줄 수 있는 그야말로 내 정체성의 총집합이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로또에 당첨되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것 같은 그 판타지스러움이 “일”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다. 아주 가끔 성취감이 들 때도 있지만 나는 내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피하고 싶을 때가 많고, 나랑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내 일에 대한 두려움과 미움이 번질 때마다, 좀 더 나의 성향에 맞는 일을 찾지 못한 나를 원망하고 스스로 화를 내곤 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서 재능과 성실함의 환상적 콜라보를 이루어내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이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는 건 그게 흔해서가 아니라, 로또만큼 드물어서 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정말 로또에 당첨된 거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조건들이 딱 맞아떨어져서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꽃 피울 수 있는 의사결정들이 내려져서 결국 그런 일을 하게 된 “로또 당첨자”들에게는 정말 축복할 일이다. 그들은 로또를 꾸준히 사 모을만한 노력과, 하늘이 내린 기운까지도 받은 사람들이다.


로또를 맞은 사람들을 부러워할 수는 있지만, 내가 로또에 당첨되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 화를 낼 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내가 노력을 더 하면 로또에 당첨이 되었겠지.’와 같은 허무맹랑한 스토리라인을 짜며 로또 당첨과 같이 내가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고, 벌이도 적당하며 명예로운 일(거의 유니콘과 같다)을 찾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왜 나는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했냐고, 뭐가 그렇게 두려웠냐고. (사실 그렇게 좋아하는 일도 없었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혹은 직업과 일을 택할 당시의 분위기나 주변 상황과 같은 불가피한 조건하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직업과 일을 조율해 나가며 “내 일이다!” 싶은 것들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적성과 다소 맞지는 않지만 퇴근 후의 나를 위한 경제적인 수단으로써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삶이 흘러가는 거처럼, 그렇게 최고의 일을 찾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로또 당첨이 안된 걸 , 뭐 어떡할 건데.


그나마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삶에서 로또를 몇 장 더 사보는 거다. 일 년에 한 번 살까 말까 하는 “일”의 로또를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더 사보는 거. 관심 있던 분야의 책을 읽어보고, 아주 가끔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직도 해보고, 정말 안 맞는 일이라고 느껴질 때 그 힘듦을 한 두 번만 더 넘어가 보고, 취미를 탐닉해 보고,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써보기도 하는 것.

그런 것들이 다 로또를 두어 장 사서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하는 거다. 가슴 따뜻하게 모아둔 로또가 5등이라도 당첨되면 본전이요, 3등이라도 당첨되면 땡큐다.


낙첨된다고? 그래도 그 기간 동안은 설렜으니 괜찮다고 스스로 얘기해주고 싶다.

세상은 로또에 당첨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꾸려가는 거니까, 이상할 거 없다고.



*사진출처@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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