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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Oct 30. 2022

무엇이 혁신과 창의성을 갉아먹는가

조직에 소리 없이 스며들어 구성원을 병들게 하는 요인 - '두려움'

어떤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의(definition, 定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앞서 간단히 설명했다. '정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공'이라는 물체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구체에 가까운 모양이면서, 그 구체의 특성에 알맞은 특정 형태의 놀이나 운동에 사용 가능한 무언가를 '공'이라고 부를 것이다. 놀이나 운동에 사용할 수 있더라도 구체가 아닌 형태의 물체를 '공'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고, 구체의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놀이나 운동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역시 '공'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떤 단어를 이야기했을 때, 그 단어에 대해 대중의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공통된 의미를 부여해 놓는 것이 '정의'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는 일종의 '약속'이다. 이 약속이 명확해야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간에 오해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혁신'과 '창의성'을 막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개념들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독창성, 창의성, 혁신의 개념

여러분은 '혁신', '창의성', '독창성'이라는 개념들에 대해 어떤 정의를 하고 있는가. 평소에 자주 듣고 사용하던 단어들이라 익숙하긴 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과거 디자인씽킹에 대해 공부하면서 만나 뵙게 된 홍익대 나건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교수님 본인조차 이 개념들에 대한 어떤 학생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해 좌절했던 일화와 함께, 그 후 오랜 기간 동안 이 개념들에 대해 연구하신 교수님의 결론을 들을 수 있었다. 나 교수님을 통해 확인한 3가지 개념에 대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조화하여 아래 그림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나건 교수님의 개념정의를 바탕으로 필자가 구성해본 이미지
[나건 교수님의 '독창성', '창의성', '혁신' 정의]

 '독창성(Originality)'은 '상상력(Imagination)'과 유사한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무언가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생각'.

'창의성(Creativity)'은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혁신(Innovation)'이란 '창의성을 바탕으로, 실행에 옮겨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즉, 실제로 비즈니스에 접목시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품(Product) 또는 서비스를 만들고, 그로 인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


이 세 가지 개념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새롭게 한다는 점(Make something new)에 있다. 차이점은 그로부터 창출하는 가치(Value)의 크기에 있다. 가치라 함은 Input 대비 얼마만큼의 Output을 낼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 기업에서는 이를 '비용'과 '이익', 즉 '돈'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Input과 Output에는 돈과 무관한 무형(無形)의 것들도 포함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개념 정의를 전제로 하여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 입장에서 보았을 때, Input 대비 상당한 Output을 창출하는 '혁신(Innovation)'이라는 개념은 조직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반드시 내재화해야 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수많은 기업들의 가치체계(미션, 비전, 핵심가치) 안에 '혁신'이라는 단어가 대부분 포함되는 것 또한 기업의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이론적으로든 본능적으로든 이를 알거나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 그토록 내재화하길 원하는 '혁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창의성은 혁신행동의 선행요인으로 다른 어떤 요인보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혁신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리더의 지원은 창의성을 혁신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상황적 요인이 된다"고 한다. (참고 : 이문선, 강영순. 창의성과 혁신행동의 관계와 집단특성의 조절효과. 조직과 인사관리연구,27(1),0-0. 2003년)



창의성은 어떤 환경에서 최대한 발현될 수 있는가

혁신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창의성'은 어떤 환경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발현될 수 있을까? 창의성이 서로 다른 것들을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 한다면, 먼저 융합하여 섞을 '재료'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섞을 재료 자체가 많이 있어야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지 수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재료가 많아야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물의 가지 수가 많아진다.(이미지 출처 : Pixabay)


기업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라 함은 곧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양한 '경험'들일 것이고, 많은 재료(아이디어)들을 섞어 만들어진 결과물들(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수 역시 많아야 혁신으로 이어질 소수의 최종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기업에서의 혁신은 구성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도록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안하고 논의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조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구성원들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야 그 경험들을 융합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산해 낼 수 있고, 대량 생산된 아이디어들 중 많은 아이디어들이 버려지고 걸러진 후, 창의적인 아이디어 몇 가지가 남게 되고, 그중 소수의 아이디어만이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 기여하여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이 혁신과 창의성을 갉아먹는가

그렇다면 구성원의 창의성을 막는 요인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어떤 요인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동기를 약화시키거나,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시할 의욕을 꺾는 것일까. 앞에서 말한 '창의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환경과 상반된 환경'이 제공되는 경우 창의성을 저하시키게 되지 않을까. 즉 구성원들이 조직이나 리더의 관리 또는 통제하에 움직여야 함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자율성이 제한되는 환경, 그리고 조직 또는 리더의 보복이 두려워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없거나 자신의 의견을 용기 내어 제안하더라도 무시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경이 구성원들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갉아먹는 요소가 되리라 생각한다.


창의성의 반대말은 '두려움'이다.
(홍익대 나건 교수)


나건 교수님으로부터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앞서 내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설명들을 이 한 문장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나의 행동, 나의 말들이 내게 부당한 인사조치나 또 다른 형태의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야말로 구성원들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갉아먹는 요소가 된다.


두려움 없는 조직

구글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구글 내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라는 실험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구글이 이 실험을 통해 알아내고 싶었던 것은, 어떤 팀이 최고의 성과를 내는지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즉 최고의 성과를 내는 팀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요인들이 그 팀을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 주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구글은 이 실험을 통해 똑같이 최고의 인재들로 구성된 팀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성을 가진 팀이 다른 팀에 비해 월등히 탁월한 성과를 내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 실험 결과 탁월한 성과를 내는 팀의 특징 5가지를 아래와 같이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1. 심리적 안정감(Psychological Safety)

2. 신뢰도(Dependability)

3. 구조&투명성(Structure & Clarity)

4. 의미(Meaning)

5. 영향력(Impact)


이 5가지 요인 중에서도 특히 심리적 안정감(Psychological Safety)을 가장 중요한 요인이면서 다른 4가지 요인의 근간이 되는 핵심 요인으로 꼽았는데, 이는 '조직 내에서 나의 의견을 솔직히 말해도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너무도 유명해진 책, 에이미 에드먼슨의 '두려움 없는 조직(2019)'에서는 심리적 안정감을 '인간관계의 위험으로부터 근무 환경이 안전하다고 믿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은 결코 개인의 성격적 특성이 아니며 리더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심리적 안정감이 제공되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고 설명하였다.



만약 조직 내에서 어떤 말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낼 때, 그 행동이 나에게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쉽게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즉 조직 내에 만연한 두려움은 직원들로 하여금 입을 닫게 만들고, 그렇게 침묵하는 구성원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산하지 않으며, 조직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조직 내에 뿌리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반대로 심리적 안정감으로 무장한 '두려움 없는 조직'의 구성원들은 마음껏 자신의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고, 창의성은 극대화되어, 혁신을 통해 엄청난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거대한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아이디어는 너무도 나약해서, 누가 째려보기만 해도 시들어버린다.
(크리베이트 박성연 대표)


리더는 본인이 만들어 내는 '암묵적 메시지'를 주의해야 한다

앞서 소개한 '두려움 없는 조직'이라는 책에서 에이미 에드먼슨이 이야기한 것처럼, 직원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리더가 어떤 성향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구성원들의 심리에는 리더가 하는 말과 행동뿐 아니라, 눈빛이나 말투, 표정 등의 신호(Sign)도 영향을 미친다. 오히려 이런 신호들이 리더가 하는 말과 행동보다 더 큰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회의 등의 공식 석상에서 발언하는 형식적인 말보다 뒤에서 지시하는 내용의 맥락이나 취지 등에서 리더 마음속에 내재된 '진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리더 분들이 가장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실수가 바로 '구성원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섣부른 예측'이다. '내가 공식 석상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으니, 뒤에서 특정 부서에 따로 지시하는 내용과 무관하게 구성원들은 내가 공식 석상에서 이야기한 것을 믿고 따라와 주겠지'하는 생각 말이다. 


오히려 구성원들은 공식 석상에서 하는 리더의 말보다, 뒤에서 내려오는 각종 지시와 무의식적 행동에 내포된 '암묵적 메시지'를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암묵적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조직이나 팀 내에 공기와 같이 떠다니며 구성원들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그들의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일하는 방식과 일에 대한 몰입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게 누적된 '암묵적 메시지'가 만약 부정적인(권위적이거나, 통제성이 강하거나, 불합리하거나 등등) 메시지였다면, 구성원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주게 되고 그들은 서서히 입을 닫게 되며, 창의성과 혁신성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송길영 작가)


2021년에 리더 분들을 위한 외부 전문가 특강을 준비하면서 모셨던 송길영 작가님의 당시 신간 제목이었다. 물론 책 안에 담긴 내용이 지금 쓰고 있는 글의 맥락과 일치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책의 제목이 당시 리더 분들께 제안드리고 싶은 나의 마음을 너무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어 놀랐었던 기억이 난다.

송길영 작가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과 친필 사인. 보잘것없는 실무자를 위해 신간을 들고 와 선물해주신 송길영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리더는 본인이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암묵적 메시지에 본인의 경영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실제 리더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구성원들은 여러분의 말과 행동을 통해 리더의 경영철학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때문에 리더는 본인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게 되고, 그로 인해 구성원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항상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


본인이 지속적으로 구성원들에게 주고 있는 '암묵적 메시지'가 곧 그 조직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조직에 창의성을 불어넣어 주느냐, 두려움이라는 병적 요인을 창궐하게 하느냐를 결정짓게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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