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쳐나가야 할 게 너무 많은 리더의 현실
요즘 리더분들의 상황을 보면, 예전에 비해 참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리더를 대하는 구성원들의 행동 패턴, 리더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 리더의 권위, 구성원의 다양성 등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리더로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분도 간혹 만나게 된다.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그리고 리더 그룹의 교육과 코칭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실무자로서 리더 분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과 인터뷰를 자주 해오고 있다. 리더에 따라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는 분도 있고, 반면에 견디기 힘들 정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도 있다. 그분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알게 되지만,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여러 어려움들을 타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리더의 모습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과거의 리더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관리형 리더'였다. 구성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구성원들이 수행해 오는 결과물을 검토한 후 피드백을 주었다. 구성원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결과물을 가지고 왔을 때는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서류뭉치를 던지며 나의 불쾌한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기분과 인격을 고려하지 않은 언행을 행사하기도 했다. 회의 시간은 리더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흘러갔고, 무언가 잘못되는 날에는 꾸중과 질책으로만 몇 시간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에 당연시하던 이런 모습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적으로 불거져 왔고, SNS 등이 발달하면서 자칫 이런 행동을 했다가 온라인상에 나의 언행이 퍼뜨려지면,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와 명성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반말도 하고 화가 나면 혼도 내고 했는데, 요즘은 말 한마디 편하게 하기 어렵다. 게다가 리더 스스로를 챙기기에도 벅찬데, 구성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들의 '성장'에 대한 도움까지 주어야 한다. 그들을 코칭하기 위한 나의 코칭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회의 시간이 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는데, 내가 말하는 시간보다 구성원들이 말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말을 안 하고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데, 막상 말을 시키면 구성원들이 말을 잘 안 한다. 그리고 신속한 업무 처리를 위해 빨리 지시하고 결과물을 가져오길 바라는데, (구성원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지시가 아닌 질문을 하라고 한다. 과거에는 연말 평가시즌이 되면, 구성원의 승진급 시기나 업무수행 성과 등을 고려하여 결과 입력만 하면 되었는데, 요즘은 연초 목표설정 회의와 면담부터 시작하고, 중간 면담, 성과 공유회, 평가 전 면담, 평가 후 면담 등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챙겨야 할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리더에게 기대하는 모습들]
구성원 존중의 언어와 태도
구성원의 성장 지원과 코칭
원온원(1:1 대화)
올바른 질문과 경청
고급 정보의 공유
평가 프로세스 고도화에 따른 실천 등등등...
이러한 리더십 환경의 변화는 리더들의 어깨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아직 이런 것들을 익히고 연습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리더들은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그동안 나는 과거의 리더들로부터 이런 것들을 경험해오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내가 리더가 되기 전에 이런 것들을 배우거나 실습해보지 못했는데, 내가 리더가 되니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국내 합계 출산율이 0.7에 다다랐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 경제가 고도화되며 경제활동 인구가 늘어나고,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시대변화를 겪으면서, 그리고 상승하는 물가와 교육비의 부담 등으로 인해 출산과 육아에 부담을 느낀 신혼부부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의학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등으로 인해 사람은 과거보다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고, 1980년 3.8% 정도 수준이었던 고령인구 비중은 2025년 20.6%, 2040년에는 34.4%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회사 안에서의 상황도 이런 사회적인 흐름과 유사하다 보니, 전체 연령구조를 보았을 때 고령직원의 비중이 점차 늘어가는 추세에 있다. 과거에는 각 조직 내의 리더가 그 조직 안에서 최고참(또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회사 내에 마련된 직책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고령자의 비중이 계속해서 늘어가고, 치고 올라오는 성장성 높은 리더 후보군들에게 기회도 주어야 하다 보니, 조직 내에서 연령이 가장 높지 않은 사람이 리더가 되기 시작했다.
때문에 리더는 본인보다 나이가 많거나 근속연수가 긴 선배들을 이끌어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고령화되어 가는 인구 구조의 변화가 자연스레 기업 인력 구조에도 영향을 미쳐, 과거 피라미드형 인력 구조가 항아리형 인력 구조로 점차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다. 조직 내 고령직원의 비중이 점차 늘어감에 따라 자연히 보직 없이 실무 경력이 쌓인 고령 실무자들과 과거 일정 보직에서 리더 역할을 했지만,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일선에서 물러난 고령직원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인재개발원의 김희봉 박사님은 그의 논문 <초고령화 사회의 리더십 이슈에 관한 탐색적 연구: 조직 내 비보직 고경력자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2024), 리더십연구, 15(3), 125-143.>에서 '비보직 고경력자'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본 논문의 내용 중 일부를 필자가 개조식으로 재구성함)
[비보직 고경력자들이 조직에 요구하는 것]
새로운 업무부여
구체적인 지시
명확한 성과목표 제시
프로젝트 기반 업무부여
도전적 과제 부여
[비보직 고경력자들이 관계적인 측면에서 기대하는 것]
개인의 경험과 사례등에 대한 소통
멘토 및 업무 코치로서의 역할
인적 네트워킹 형성
[비보직 고경력자들이 개인적인 측면에서 요구하는 것]
역량개발 기회 부여에 대한 기대
열정 부여 방안
박탈감 최소화
자존심 보호
[비보직 경력자들의 강점]
문제해결경험
전문성
전체적인 그림이나 방향에 대한 높은 이해도
핵심을 파악하고 업무의 흐름이나 분위기를 잘 파악
다양한 인맥
조직이나 업무에 대한 암묵지
대체로 원만한 성격
[비보직 경력자들에 대한 문제의식]
형평성이 결여된 업무분배로 인한 업무과중
느린 업무속도
팀 업무에 대한 관심 부족
자기중심적인 요구
리더 분들 대상으로 설문이나 인터뷰를 해보면, 단연코 가장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보다 선배인 실무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아무리 조직에 직책이 있고, 리더와 실무자와의 관계라 해도 장유유서 문화가 뿌리 깊게 내려있는 우리나라에서 선배를 휘하의 실무자로 두고 일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배 실무자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어려운데, 이 분과 다른 주니어 직원들 사이의 갈등까지 생기면 진퇴양난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중요하거나 공수가 많이 들어가는 일들이 주니어 직원들에게 몰리면서 업무 가중화 현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주니어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이런 상황이 리더 입장에서는 가장 겪기 싫은 상황 중 하나로 꼽힌다.
잘 따르는 주니어급 직원들로만 구성된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도 쉽지만은 않을 텐데, 선배들을 실무자로 둔 리더의 무게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인구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현재를 살아가는 리더들은 지금 이미 이 이슈의 주인공이 되어있거나, 그들에게 곧 들이닥칠 가까운 미래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저성장 고물가 시대가 계속되면서 기업들은 점점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과거에는 각 팀의 리더들에게 인력 및 예산 관리 등에 있어서 꽤 넓은 범위의 재량권이 주어졌지만,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긴축 정책과 비용 효율화의 움직임은 기존에 각 리더들에게 분산되어 있던 권한들을 중앙(인사, 재무와 같은 기획 관리 부서)에 집중해 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과거의 리더들은 본인이 가진 막강한 권력을 무기로 구성원에게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성과 창출에 대한 의무와 관리 책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점점 권한이 없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리더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구성원들에게 발휘할 당근과 채찍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구성원들의 업무 추진 속도가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을 때 그들을 독려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 써먹을 수 있는 수단들이 점점 손에서 떠나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다양한 금융사고와 직원들의 횡령사건들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기업들은 우리 회사에 이런 법률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준법과 감사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리더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업무를 가중시키는 효과로 이어진다. 일상의 업무 프로세스에서 새롭고 진취적인 아이디어의 발굴과 실천보다는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체크하는 데 소모하는 에너지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보려 할 때, 고려하고 체크해야 하는 리스크의 가지 수는 훨씬 많아진다.
정리해 보면, 리더들의 권한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그들이 떠안아야 할 책임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리더들을 인터뷰해 보면,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에 대해 많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제한된 업무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업무 중간중간 체크하고 제출해야 하는 행정 업무가 많아지고 있다는 의견들이 많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 비유해 보자면) 과거에는 병사들을 이끄는 리더에게 창과 방패를 손에 쥐어주고 전장에 내보냈다면, 지금은 창과 방패를 반납하게 하고 온몸으로 화살을 맞아가며 앞장서 나아가게 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렇게 치른 전쟁이 패배하면, 책임은 당연히 리더의 몫으로 돌아간다. 리더 입장에선 서글픈 현실이다.
조직은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기업은 매출을 올려 수익을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고, 이 안에 있는 각 조직들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일이 밀리고 잘 안 풀릴 때면, 다 함께 야근하며 불철주야로 일의 속도를 밀어붙이기도 했다. 주중에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다면, 주말도 흔쾌히 반납하고 출근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노동환경이 점차 개선되고, '워라밸'의 중요도와 관심이 높아지면서 야근과 주말 근무를 당연시하는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기존의 문화가 남아있는 기업들은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에 안착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캠페인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노력들을 시도한다. 오히려 쾌적한 워라밸 환경을 가진 기업들은 이를 좋은 인재를 유인하는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사회의 트렌드가 이와 같이 흘러가다 보니, 제한된 기간 안에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리더 입장에서는 속이 탄다. 기존의 일은 계속 밀려있는데,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해야 하고, 직원들의 성장과 워라밸도 챙겨야 하니 말이다. 지금의 속도로는 마감 기한까지 일을 다 못 끝낼 것 같은데, 당분간은 다 같이 야근을 하면서라도 업무 추진 속도를 올려야 할 것 같은데, 오후 6시가 되면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업무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면,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기에 혼자 남아서 밀린 업무를 마저 하게 된다.
가끔씩 구성원들은 이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우리 팀장님은 야근하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
정해진 업무시간 안에 일을 효율적으로 마치고 퇴근하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구성원일 수 있는데, 업무시간에 일을 다 못 끝내서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을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일 것이다. 당연히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리더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밤에 같이 남아 자신을 도와주는 지원군으로 느껴지고, 심리적으로 의지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옳은 것이든 틀린 것이든 말이다. 요즘 리더는 성과 창출과 구성원의 워라밸이라는 답이 안 보이는 딜레마 속에서 오늘도 헤엄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재를 살아가는 리더들은 상당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 묵묵히 그들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겉으로는 무쇠와 같이 단단한 척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을 수도 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리더들을 통해 보아도, 평상시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웃으며 다니고,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조금만 대화의 깊이를 올려보면 문드러지고 있는 그의 멘탈이 보일 때가 있다. 실제 리더들을 대상으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어본 설문에서, '흔들리는 멘탈과 감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등의 답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노력하는 리더들을 많이 본다. 그들은 단기적인 성과 창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인이 어떤 리더로 성장해 가야 하는지 방향을 탐색하고, 그 과정에서 구성원의 성장과 같은 긍정경험을 높이기 위해 본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끝없이 고민한다. 그들의 주된 고민은 '어떻게 다양한 세대의 구성원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구성원을 어떻게 하면 잘 성장시킬 수 있을까', '구성원의 동기부여를 잘 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성과창출의 만족감을 구성원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등이다. 고민의 방향이 구성원을 향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배움은 책을 통해 얻을 수도 있고, 교육이나 코칭을 통해 얻을 수도 있고, 다른 리더나 후배들로부터 얻을 수도 있다. 사방에 널려 있는 배움의 수단들을 통해, (이미 리더의 자리에 오른 분이라면 충분히 훌륭한 역량을 가지고 계실 텐데)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자신만의 강점을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준비해서 내어 놓으면, 그 바쁜 업무 수행 중에도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달려온다.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배움의 의지가 강한 리더 분들 중에도 아직 구성원들의 신임이 부족하거나, 업무 성과가 잘 나지 않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끝없이 변화와 개선의 노력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이 당장은 아니지만, 1년, 2년, 해가 지나가면서 하나씩 맺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리더가 뛰어난 리더라 생각하나요?
여러분이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나는 주저 없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리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현재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완성형 리더로 성장해 간다.
※ 상기 뉴스 이미지 출처
- 뉴시스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1018_0002925669
- KBS뉴스 :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84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