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새벽에 나는 자몽 껍질을 벗긴다.

by 미떼 Jul 18. 2024

벗긴다. 라고 먼저 늘어 놓았지만

사실 나는 항상 자몽을 깐다. 라고 간편하게 말한다.


자몽을 까는 시간은 항상 새벽이다.

아무도 없는 편이 집중하기가 편하다는 것은 누구든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부엌의 전등만 하나 켜 놓은 식탁 위에 준비물은 단촐하다.


반찬 냄새가 배지 않은 밀폐용기와, 자몽 껍질을 버릴 음식물 쓰레기 봉지 하나.

칼은 아직 채 익지 않은 자몽일 때에만 살짝 칼집을 내기 위해 사용한다.


자몽은 잘 익은 상태와 익지 않은 상태가 아주 다르다.

맛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껍질을 벗길 때 항상 느낀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주 잘 익은 자몽을 깔 때이다.


자몽의 두꺼운 겉 껍질을 벗기면, 바로 안의 하얀 껍질이 마치 실크처럼 손 끝에 감긴다.

과일의 온도와 상관없이 그건 아주 따스한 감촉이다.

부드럽게 벗겨지는 겉껍질을 조금 더 손질하고 커다란 과육을 반으로 쪼개면,

과육이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수분이 송글송글 맺히며 슴슴한 향기가 스민다.

자몽의 향기 보다는, 벌들이 꽃에서 꿀을 딸 때 실컷 맡겠구나 하는 그런 냄새.


반으로 나눠진 자몽은 이제부터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미 견디다 못해 살짝 터져 있는 과육의 중심부를 손톱으로 살짝 잡아당기면

쉽게 과육의 한 면을 벗길 수 있다.

그대로 알맹이를 들어올리는데, 이때 절대로 힘을 주어 잡아당겨서는 안된다.

살짝 살짝, 살살살살.......과육이 들어올려지면 옆면에 남아있는 하얀 껍질을 뜯는다.

그러고 나면 드디어 하나의 자몽이 내 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사실 이 한 덩어리를 한 알이라고 쉽게 부르고 싶지만, 

알다시피 자몽은 규칙적으로 옹골지게 모아진 수많은 알갱이들이 모여져 있다.


연어나 캐비어의 뱃속을 가르면 이렇게 비슷한 덩어리를 볼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보다보면 징그러워 입맛이 떨어지지만

살짝 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는 자몽의 알갱이들은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다.


그건 아마 눈이 시원해지도록 상큼한 과육의 색깔 때문일 것이다.

사과하면 빨강, 바나나하면 노랑, 하고 생각나는 색깔이 있지만

자몽은 그저 자몽색이다.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그 중간에서, 밀근하고도 산뜻한 빛깔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그 색상에 착 감겨들어간다.


사실 자몽의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그 무시무시한 생김새와 크기 때문이다.

귤처럼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닐만한 크기도 아니며,

바나나처럼 겉껍질만 벗기면 바로 보드랍게 술술 넘길 수 있는 과육도 아니다.


두꺼운 겉을 벗겨내는 것도 힘들어보이는데, 

질긴 속껍질까지 벗겨내며 실컷 지저분한 작업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상큼한 알맹이가 나온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도 없는 새벽의 주방을 작업실로 택하는 것이다.


내가 자몽을 깐다는 것은 어딘가 나의 마음 한 구석이 모나게 접히거나

쭈글쭈글하게 젖어들어가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를 돌보고 싶을 때는 그저 단순하고 아름다운 행위가 필요하다.

무섭도록 집중할 수 있으면서, 허망하지 않도록 결과물이 남는 것.


그게 나에게는 자몽을 까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이는 아마도 아주 간단하기에 말을 시작하기가 아까웠던 것 같다.


자몽은 덜 익었을 때 까기가 더 쉽다.

좀 더 딱딱하기 때문에 형태를 완벽하게 유지하면서 속껍질을 깔 수 있다.

물론 그 편이 더 아름답고 성취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완벽한 형태를 가진 그것들만 모으기 위해 

속껍질을 벗길 때 탈락하는 알갱이들을 껍질과 함께 미련없이 버리게 된다.

보석처럼 빛나는 커다란 과육만 내 통 안에 남길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익은 자몽이 자꾸만 손 안에서 뭉그러질 때는 다르다.

완벽하지 않은 과육을 만지면서 나는 껍질에 남는 알갱이까지 통 안에 털어넣는다.

손으로 집어먹을 수는 없겠지만, 즙이 가득한 알갱이들을 숟가락으로 가득 퍼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완벽하지 않은 자몽은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예쁜 부분만 보이고 살고 싶어 아픈 날이 많았다.

첫 시작이 찜찜하고 부끄러웠으면 다음을 감춰버리는 일도 많았다.


완벽했던 날도 어딘가 갸우뚱한 날도 그냥 인생의 일부다.

자꾸만 뭉그러지는 날도 일단 계속 걷다보면 묵묵히 모아지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모든 날들을 밀폐용기 안에 모으고,

지저분하고 끈적한 잔해들을 치우고 향기나는 손을 대충 씻고

통의 뚜껑을 닫으며 그 날을 마무리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다음날 나의 후식이 생겨나 있다.

앞으로의 내 인생도 그랬으면,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