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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바토 Sep 28. 2020

애들 싸움은 어른 싸움이 될 수밖에

팔은 안으로 굽으니깐

  내 아이가 한소리 듣는 건 내가 혼낼 때뿐이어야 한다.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혼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혼낼 일이 있을 때 예를 들면 남의 집을 내 집처럼 쏘다니거나, 냉장고를 함부로 열거나, 장난감을 함부로 할 때도 미리 얘기를 한다. 우리 집 아니야 함부로 다니면 안 돼. 냉장고 여는 거 아니야. 친구에게 물어보고 갖고 놀아. 난 그게 기본이었고 내 육아 방침이었다.


  우리 집에 친구가 놀러 왔을 땐 아무래도 우리 집이다 보니 친구들에게 편하게 지내라고 얘기한다. 괜찮아 원하는 데로 놀아. 그리고 나는 친구들이 편하게 놀아도 됐으니깐. 다치지만 않으면야 모든 괜찮았다. 그리고 친구의 아이에게 이러는 거 아니야 이야기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편하게 놀라는 말처럼 조심을 바란 적도 없었다. 다만 그 장난감 주인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 않은가? 만들어 논 레고가 썩 시원찮았어도 정성 들어 만든 거였을 수도 있지. 부서지면 속상할 수 있지. 화를 좀 오래 낼 수 있지. 부서졌는데 바로 하하호호 놀아야 하는가?


  나는 아이가 화내면 어느 정도는 화내는 데로 두는 편이다. 화도 내고 성질도 내야 좀 풀리지 않는가. 억지로 강요하면 화가 더 쌓이지 않는가. 싸울 때도 봐서 이건 심하다 싶지 않으면 둘이 알아서 풀라고 두는 편이다. 싸우다 보면 정든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서로 입장을 얘기할 시간도 필요하고. 중재가 안될 때 나서는 편이다. 가서 '얘는 이렇데 쟤는 이랬데' 이러고 서로한테 '양보해 누가 양보할래?' 이렇게 물어보면 아무도 안 나서지만... 약간의 보상을 제시하면 서로 양보한다고 난리다. 그 방법도 안 먹힌다 싶으면 장난감 압수. 둘 다 못 노는 거다. 그러다 보면 화도 식고 서서히 다가와서는 안 싸운다고 돌려달라 한다. 한참의 확인을 거치고 돌려준다.


  이 상황은 중재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고, 부서진 장난감에 속상해하고 있을 뿐이라 다음에 또 만들면 되지 하고 그냥 뒀는데 화를 계속 낸다고 자기 아이에게 사과하라며 화를 내고 가버렸다. 친구 입장도 이해는 한다. 기껏 놀러 왔더니 그거 부수었다고 계속 째려보니 곱게 보이진 않았겠지. 그 아이는 혼나다가 미안하단 소리를 못했다. 안 한 건지 못한 건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뭔 상황인지 난감하기만 하다. 뭔 이윤지 묻고 물어 겨우 들은 대답은 양육방식의 차이다. 친구로서도 별로였다니 더 할 말은 없지만.


  내 양육방식이 꼭 옳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았다. 내가 자라왔던 환경과 경험과 게으름?으로 쌓인 양육방식이었으니깐. 그런 얘기를 들으니 그렇게 문제가 많은가 되짚어 보게 됐다. 그리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을 또 실감하게 됐다. 그 말에 맘이 상하는 걸 보니 나는 나를 아끼는구나.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래. 난 잘하고 있어. 괜찮아. 혼자 위로를 해본다.


  친구와 노는 것부터 다시 짚어보게 됐다. 난 친구와 논다는 게 꼭 같은 장난감으로 혹은 같은 놀이를 해야 같이 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 같이 논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렸을 때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는 티브이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고 나는 책을 읽거나 친구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그냥 누워서 잘 때도 있었다. 눈 마주치면 얘기를 나누고, 같이 같은 놀이를 하기도 했다. 보드게임이나 티브이를 같이 보기도 하며 말이다. 편하게 하고 싶은걸 하며 노는걸 같이 논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안건?은 같이 놀아야 논거라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내가 투자? 한 장난감을 같이 놀자고 얘기하는 게 구걸이란 단어와 연결이 되는 것에 당혹스러웠다. 난 같이 놀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았을 뿐인데.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자랑이라 느꼈을지도 모르지. 근데 왜 맛있는 것 먹으러 가거나 놀러 간 사진을 올리는 건 내가 다 부러워해 줬는데 장난감 같이 놀자는 얘기도 그냥 같이 놀면 되는 거 아닌가. 손해 보는 일도 아닌데 왜? 내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인가.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알면서 매번 먹을 이유로 만나자고 한다. 나도 먹는 것을 좋아하니 거절하지 않지만, 꼭 먹을 일로 만나야 하는 걸까? 내가 안경 사야 되니 같이 갈까 물을 땐 알아서 사 느낌이었는데. 먹을거리가 없으면 어색할 수 있겠지, 배가 고플 수도 있겠지. 견과류나 과일보단 고탄수화물이 맛있지.


  안 맞으면 연락을 안 하는 게 맞다. 굳이 억지로 맞출 필요가 없지. 백번 공감하는 말이다. 나도 누군가와 애써 맞춰가며 살지 않았고 내 맘 데로 살고 있다. 그래도 일이 년 연락 한 사이를 한순간 끝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아프다. 어느 정도 대화로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상대방도 말을 꺼내기 어려울 테니. 안 맞는 건 안 맞는 것일까? 서로에게 수용 가능한 범위까지 차고 넘치면 헤어짐은 정해져 있는 순번 같다. 연이란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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