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나무 밑이 시원하지
앙상함이 가득했던 가지에 이젠 초록 잎이 가득하다. 오래간만에 오른 산은 싱그러웠다. 산 아래 우거진 나뭇잎에선 바람이 불며 촉촉한 기운이 날 스쳐 지나갔다. ‘어서 와’ 하며 인사하는 느낌이랄까. 피식 웃음이 났다. 갑작스레 기온이 올라 초여름 열기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드문드문. 오르기 시작해선 아무 생각 없이 오르기에 집중했다. 정상까지 가자. 조금만 더 가면 돼. 뒤돌아서 집에 갈까. 이왕 시작한 거 정상은 가야지. 오늘따라 집에 가고 싶은 유혹이 잔뜩 들었다. 발이 왜 이리 무거운지. 숨은 왜 이리 찬 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숨이 너무 차서. 벗고 나니 얼마나 시원하던지. 코라나는 이제 마음 좀 덜어도 되는 건가.
정상에 오르고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며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았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그 소리와 움직임이 주는 편안함. 바람이 불면 부는 데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다 맞고 흔들려도 나무인 나무. 나도 나무처럼 될 수 있을까. 그렇게 흔들리고 흘러내려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모순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변하고 싶지만 변하기 싫고. 어쩌면 두려운 것인가. 노력과 자연스러움 사이의 괴리랄까. 억지로 노력하고 얻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흐르듯이 이루고 싶다. 그게 무엇이든. 성취에 관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노력마저도 자연스러운 노력이 됐으면 좋겠다. 지침의 표출인가.
무언가 원하지 않은 상황도 속으론 그 상황을 원하고 있는 모습 속에서 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구나. 모두 진심이었으니깐. 그걸로 충분하다고 위안을 삼는다. 나무처럼 휩쓸려도 다시 제자리. 현재의 나로 만족하고 있는 것인가. 그건 또 아닌데. 나보다 키가 크고 커다란 나무는 알고 있겠지. 조금은 자랐다는 걸. 자랐겠지. 자랐을 거야. 아직 확실한 답을 내지 못한다는 건 미련이 남아있나 보다. 더 달리고 더 몰두하고 더 나아가 보고 싶다. 강풍이 아직 불지 않았다. 난 강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