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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바토 May 02. 2020

중요한 건 마음의 평온

나에 대한 상대의 불만을 인정하기 어렵다

  서서히 다가오는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갇혀가고 있었다. 모든 게 잘못된 것 같고 부질없다 느껴지고 내가 한없이 한심해지는 그런 어느 날이었다. 차가운 맥주캔을 들었던 손이 얼음장이 되듯이 어디든 쉽게 동조되고 다 맞는 말 같지만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해 못하는 것이 잘못인 것처럼 나는 한없이 초라한 느낌에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르다 생각 없이 보던 티브이 속 나온 노래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한참을 울다 방을 정리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깔끔해져 가는 방을 보며 내 기분도 조금 더 개운해졌다.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맞으며 크게 숨도 들이켜보고 내쉬고 몸이 가벼워진다. 청소기를 밀고 방을 닦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 마음도 언제든 이렇게 쉽게 비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작은 갈증에 티백차를 하나 꺼내 들고 뜨거운 물을 붓고 향을 음미했다. 한결 더 개운해졌다. 따듯한 차를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며 온기가 온몸에 퍼지는 걸 느꼈다. 입, 식도, 가슴, 배. 천천히 흐르고 있다. 그 열기가 몸 구석구석 퍼지길 바라며 한 모금 더 마신다. 두 번 세 번 더 마실 수록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창밖에 새소리가 들려오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들려오는 소리에 내 숨소리가 더 고요해지고 난 스르륵 잠이 들었다.


  간만에 다가온 어둠에 며칠을 누워 지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발버둥 쳐봤자 제자리일 것 같은 느낌. 한동안 괜찮았는데 꾸준히 하던 운동의 약발이 이제야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무리하게 정신을 혹사시킨 탓인가 원치 않던 것을 거절 없이 해서일까. 내게 익숙한 언어 사용량보다 과다한 사용으로 목이 건조하고 날씨도 건조해 쉽게 지쳤나 보다. 더 이상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움직이려니 모든 게 청량하다. 바람도 습도도. 내 기분은 날씨 탓이었나. 아직 들려오는 새소리가 날 꼭 산속에 데려온 것 같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아본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아직 늦지 않았어. 날 더 강하게 해주는 경험이야. 피하지 말자.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충동을 이기지 못해 뱉게 된다. 결국 그 상처가 나에게 향한다는 걸 알지 못하고. 조심했는데.... 이기적인 마음에 내가 틀렸다는 생각, 내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중요한 건 결국 평온함인데. 그 말들로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진다. 다시 평온을 만들기 위해 화살을 상대에게 누게 된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난 결백해. 하지만, 결국 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평온이 조금씩 찾아온다. 아직 많이 모자라는구나. 인정하면 편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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