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작별: 닳고 닳은 슬리퍼

이제는 놓아줄 때

by 진이

무얼 버리고자 마음먹으니 버리고 싶은 게 한가득이다. 무엇을 살까만 고민하던 내가 무엇을 버릴까 고민하고 있다니. 사람 일 알다가도 모른다. 언젠가 읽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꽂아둔 책? 선물 받고 1년 넘게 쓰지도 않는 바디워시? 뭘 버리지 고민하다가 안 입는 옷부터 버리자 하고 나가려는데, 진짜 버려야 할 게 여깄었구나. 바로 4년을 신은(4년을 신은 것도 지금에서야 인식한) 내 뉴발란스 슬리퍼.


전 직장도 아닌 전전 직장 동료들이 선물해줬던 그 슬리퍼는 계절에 상관없이 늘 나와 함께했다. 내가 그 슬리퍼를 유달리 좋아해서일까? 그렇지도 않다. 그냥 신었다. 편하니까. 슬리퍼를 신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늘 신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딱히 이유는 모르겠다. 눈에 보였고, 가장 쉬웠고, 딱히 안 신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게 나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되어 있었나 보다.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늘 그 아이보리색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밖에 나가곤 했는데,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들 단체카톡방에 늘 그렇듯 큰 의미 없는 일상사진을 보냈더니 '오늘도 진이 슬리퍼네요. 죽을 때까지 신겠어요'라고 말했다. 아 내가 이 슬리퍼를 매일 신구나. 그때 알았지. 그러고 나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분명히 아이보리색이었는데 낯빛이 회색빛으로 바뀌어서는 '제발 저를 좀 버려주세요'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그 회색 슬리퍼를 나는 또 주야장천 신었지.


매일 하루에 하나씩 버리겠다는 결심이 아니었다면, 오늘도 나는 그 슬리퍼를 신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진짜 버릴 만 하긴 했다. 이 정도면 뉴발란스에서 상을 줘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 아니구나. 오히려 예상한 소비기간보다 오래 신어서 매출에 감소를 일으켰으니 블랙컨슈머인 건가?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에는 숨겨진 공신이 있다. 동생 경빈이가 자기는 안 신는다며 널디 검정 슬리퍼를 줬다. 워낙 힙에 살고 힙에 죽는 스타일이라 자기는 이걸 신을 수 없다며(특정 브랜드를 비하한다기보다는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해 주시길) 나 신을 거면 가져가라고 했다. 그날 워커를 동생 집에 신고 갔던 터라 귀찮았던 나는 널디 슬리퍼를 신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워커는 동생 집에 있다. 가져가라고 난리다.


그날 이후 계속 그 슬리퍼를 신었다. 참 까다로워 보이는데 의외로 누가 뭘 주거나 버리면(?) 별생각 없이 잘 쓰는 편이다. 취향이 확고하지만, 그렇다고 내 취향이 아닌 것을 굳이 배제하지도 않는다. 내 취향이 아닐 뿐 꼭 내 취향일 필요는 없다. 적다 보니 그게 내가 생을 살아가는 방식 같기도 하다. 보통은 다 취급하고, 애정하고, 함께할 수 있다. 물론 취향은 확고하다. 그리고 나는 내 취향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취향과 처한 상황의 괴리로 잠시 취향을 접어둔 걸 수도 있겠다. 인생이란 끝없는 지연과 바람일까? 모르겠다. 적다 보니 박애주의 맥시멀리스트가 "아무거나 다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도 아니라고요!"라며 괜히 머쓱해서 소리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새로운 대체재가 생겨 오랜 시간을 함께한 슬리퍼를 버릴 수 있게 됐다는 씁쓸한 이야기다. 대체된다는 것은 유일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것은 보통 개체별로 고유성을 띄는 인간 존재에게 부정 감정을 야기한다. 그래서 내가 씁쓸한 게 아닐까 잠시 고찰해봤다. 그렇지만 각자에겐 각자의 때가 있는 법이다. 새로운 애착 슬리퍼를 획득해서 잘 신고 있고, 시기적절하게 내 슬리퍼도 보내줬다고 본다. 내 슬리퍼들도 본디 쓰임에 맞는 황금시절을(?) 나와 함께하고 있을 뿐이다. 내 수많은 시절에 존재했던, 하다못해 홍대 지하 클럽에 가서 검은색이 되는 수모를 겪고도 함께해줬던(물론 너에게 선택권은 없었겠지만), 아이보리색이었던.. 슬리퍼야! 잘 가라.


말 그대로 닳고 닳은.. 슬리퍼

사진을 크게 해서 보니 더 가관이다. 왜 진작 너를 보내주지 않았는지 물건을 가질 줄만 알고 관리하거나 버리지 못하는 나를 반성한다. 내 검은색 슬리퍼에게 한 번 더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정말 놓아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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