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작별: 영문 모를 출자금통장

왜 만들었지

by 진이

내 방에는 아주 크고 넓은 책장이 있는데, 아빠가 동생과 자취를 시작할 때 부산에서 트럭에 이고 지고 가져와주셨다. 그때는 쓸 데 없이 이렇게 큰 책장을 왜 가져오냐며 괜히 투정을 부렸으나, 그것은 선견지명. 아빠는 세상 온갖 것에 애정이 많아 웬만하면 사고, 모아두고, 버리지 못하는 큰 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7년을 함께한 이 책장은 각각 커다란 네모 8칸과 아래의 수납장 4칸으로 구성돼 있다. 나름대로 분류를해서 화장품 칸, 각종 서류 칸, 잡동사니 칸, 책 칸 등으로 나눠두었는데 정리를 하려고 보니 새마을금고 출자금 통장 하나가 눈에 보인다.


'출자금 58,287원'이라는 금액만이 달랑 한 줄 적혀 있는 통장.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학교 다닐 때, 돈을 모아보겠다며 금리가 높다는 아현 새마을금고에 가서 이 통장을 만들었다. 약 10년 전의 일. 그리고는 까맣게 잊었다. 물건은 그렇게 잘 모으면서 돈은 왜 모으지를 못할까? 문장 속에 답이 있다. 물건을 그렇게 잘 모으니 돈이 모일 리가 없다.


아무튼 작년 12월 초였나 아현 새마을금고에서 문자가 왔다. 정기총회 의결로 인하여 출자1좌 금액이 일십만 원으로 증액되었는데 2023년 12월 31일까지 출자 금액을 맞추지 않으면 회원자격을 박탈한다는 무서운(?) 내용이었다. 괜히 '박탈'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심에 내가 어마어마한 혜택을 잃게 되는 건가 싶어 새마을금고를 찾아갔다. 그런데 은행원 선생님께서 굳이 큰 돈을 넣고 모으는 게 아니면 해지하는 것이 낫다고 해서, 어차피 넣을 큰 돈도 없으므로 출자금통장을 없애고 용돈 5만 얼마를 받게 됐다.


그렇게 새마을금고와의 인연이 끝난 줄 알았는데 집에 실물 통장이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통장. 하필 새마을금고라서 초등학생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학교에 천 원, 이천 원씩 가져가서 새마을금고 통장에 저금을 했다. 이제 나도 20년도 더 지나서 가물가물하긴 한데, 반 친구들 모두가 새마을금고 통장이 있었던 것 같다. 서로 막 금액 비교하며 자랑하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이 내 저금력 최고였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 내 탄탄한 새마을금고 통장은 할아버지 덕분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학교가 끝나고 2층 할아버지한테 가서 인사하고 뽀뽀하면 할아버지는 늘 천 원을 주셨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물가상승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도 명절이면 오천 원, 많게는 만 원까지도 받았다.) 그때 학교 끝나고 할아버지한테 인사하고 뽀뽀하고 천 원 받아 길 건너 화신슈퍼마켙에 가서 과자 사먹는 게 하루 일과의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말이야. 나이를 먹을 수록 생은 복잡다단해지고, 단조로움이 주는 사소한 행복은 희끄무리해진다.


할아버지가 지금 내 새마을금고 통장을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내가 준 수많은 천 원들은 다 어디로 갔냐며 막내아들 첫째 손녀딸을 놀렸을까. 58,287원 이후로 멈춘 내 통장, 아니 이미 해지해서 그 돈도 어디로 간 지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사실상 종이조각에 불과한 통장을 보다가 문득 오랜만에 할아버지까지 떠올리고 이러나 저러나 고맙네.



내가 만들어놓고 사실 출자금통장이 정확히 뭔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나는 아마 그 당시에는 또 열심히 은행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것저것 세심하게 알아보고 만들었겠지 싶으니 의문을 갖진 않는 것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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