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벌어온 시간만큼 살지 못했다. 그는 50년간 닥치는 대로 일해왔고, 한 직장에 정착한 후로 34년을 보냈다. 그의 결혼 생활 중에는 단 한 번의 이직도 없었다는 뜻이 된다. 3년도 근속해 본 적 없는 내게 34년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단 1년도 빠트리지 않고 그의 세월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왔다. 또래보다 유난히 말랐던 소년은 고도비만을 경계해야 하는 청년이 되었고, 성격이 괄괄하고 눈매가 사납던 사내는 숱이 적고 왜소한 중년이 되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어딘가 조심성이 늘고 말수가 많아졌다.
올해 정년을 맞는 그는 분명 축하를 받아야 했음에도 그저 쓸쓸해 보이기만 했다. 직장에서는 정년 후에도 1년을 비정규직으로 남게 해 준다고 했지만, 그는 당장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처럼 서운하고 허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월급이 줄었다며 멋쩍게 웃거나, 퇴근 후에 방안에 누워 잘 나오지 않거나, 이제 곧 백수라는 자학개그를 던지곤 했는데, 그의 아내는 그럴 때마다 그를 다독이면서도 그의 헤픈 소비습관을 하나하나 짚어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비정규직이라고 은근 무시당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나도 그가 직원들 눈치 보면서 꾸역꾸역 버티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는데, 힘들면 언제든 그만두라는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가 비정규직으로 벌어들일 일 년의 시간을 보상할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그는 나를 30년이나 먹여 살렸는데, 나는 단 일 년도 배상할 능력이 없다니. 자식으로서 배임죄를 선고받는다고 해도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별 내색 없이 괜찮다고 말할 사람이라는 걸 잘 안다. 그는 따뜻한 말을 건네는 데는 영 재주가 없어서 의도와 다르게 종종 내 신경을 긁고는 했지만, 자식에게 선뜻 자신의 시간과 돈을 내어주면서도 계산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지만, 그에게서 사랑이 무엇인지는 배웠다.
하지만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와 별개로, 내가 어떠한 형태로든 그의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나는 복리로 쌓여가는 빚 같은 게 아니었을까. 덜어내고 덜어도 줄어들지 않는 부채처럼, 나에 대한 의무가 그를 너무 무겁게 하진 않았을까 싶다. 만약 내가 그에게 그런 빚이었다면 그가 벌어온 세월을 온전히 상속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 갚아야만 사라지는 빚으로,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아버지의 세월을 한 숟갈 한 숟갈 퍼먹으며 자라온 만큼, 내 몸 구석구석에 흐르는 핏줄기에 다 갚을 수 없는 짙은 사랑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