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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철 Jan 04. 2023

나의 하루를 잘 받아들이기

눈을 뜨자마자 책상 에 앉는다. 리랜서 6개월 차에 생긴 습관이다. 딱히 지런해서는 아니다. 전날에 해놔야 할 일을 안 해두었거나, 그날 업무를 일찍 끝내고 싶어서일 뿐. 하지만 머리가 돌아가기에는 아직 날이 춥다. 나는 밤새 전기장판 위에서 후끈해진 이불을 가져와 덮는다. 졸음기가 서서히 다가오지만, 이불을 내려놓지는 못한다. 머리가 돌아가려면 우선 몸을 예열할 필요가 있다.


노트북을 켜고 가장 먼저 하는  전날 업무 확인이다. 이 또한 꼼꼼해서가 아니라, 전날 해야 할 일을 미뤄둬서일 뿐이다. 전날의 작업물을 차트에 차곡차곡 기록해두고 피드백을 읽어 내려간다. 타게팅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든가, 글의 구조를 다시 잡아야 한다는 식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이런 피드백은 정신을 덜 차렸을 때 받는 게 오히려 좋다. 반항기 없이 수긍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좀팽이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잘 되라고 하는 얘기는 대 잔소리로 들린다.

나는 피드백을 곱씹으며 업무를 시작한다.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이다. 타닥타닥.'ㅁ'키가 빠진 노트북 자판 대신에 연결한 게이밍 키보드는 소음이 크다. 사무실에서 썼으면 눈치 꽤나 봤어야 할 정도가 아닐까. 얼른 노트북 수리를 맡겨야겠다고 생각해 놓고, 슬슬 익숙해지다 보니 대리점에 가는 날을 또 미루고 있다. 키보드는 딱히 올려둘 만한 자리가 없어서 다리 위에 올려두고 쓰는 중인데, 그 덕분일까. 허벅지를 누르는 키보드의 무게 때문인지 전보다는 자리에 잘 앉아서 일하고 있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 된다. 서른이 되어서도 어머니가 밥상을 차리게 만들다니. 불효도 이런 불효가 따로 없다. 하지만 당장의 생활을 끊어낼 수도 없고 밀린 업무를 바쁘게 쳐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차려진 밥상을 넙죽 받아먹는 수밖에... 가끔은 외식을 하거나 배달을 시켜 먹지만, 이 또한 머릿속에서 '건당 가격'으로 자동 치환되는 프리랜서의 생활은 밥 한 끼 사 먹기가 부담이다.

업무는 대개 두어 시쯤이면 끝이 난다. 그날의 컨디션이나 몇 시에 일어나냐에 따라 조금씩 오차는 있겠지만, 일반적인 경우에 그렇다. 그러고 나면 헬스장에 가는데, 동을 좋아해서도 아니고 살을 빼려는 것도 아니다. 굳이 목적을 정하자면 출석을 찍으려고? 운동이라도 안 가면 외출할 일이 거의 없는 나에게 내리는 특단의 조치다. 

운동이 끝나고 난 뒤의 한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주로 카페나 집에서 책을 읽는다. 얼마 전에는 이슬아작가의 책을 읽었고, 최근에는 은하철도의 밤이라고 하는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을 읽는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책이다. 사실 이 시간에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요즘에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게 좋다. 쓰려면 막막하고 힘이 드는데, 책은 가만히 앉아서도 술술 읽히니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읽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데, 그렇다고 해서 두어 시간 읽지는 않는다. 그 이상은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간을 가능한 재미있게 유지하고 싶다.


이 시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다음날의 업무를 시작한다. 사실 여유 부리기 전에 미리 해뒀어야 할 작업들이다. 하지만 이 시간부터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감을 앞둔 자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마감 노동자의 특성상 조금만 시간이 생겨도 쓸데없는 여유가 따라붙는다. 그러다 보면 금방 저녁이 되고 밤이 된다. 그러면 또 뒤늦은 후회가 따라온다. 이 시간에 미리 일할걸, 공부라도 할걸, 글이라도 쓸걸, 부업이라도 알아볼걸. 요즘 말로 껄무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의 하루는 대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때론 열심히, 때론 게으르게, 때론 행복하게, 때론 불안하게. 이렇게 생각하니 회사 생활을 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다만, '프리랜서라서 그렇다'라는 핑곗거리 하나가 늘었을 뿐.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결국 모든 문제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 '얼마나 노력하느냐'로 귀결된다. 일이든 사람이든 성공이든. 별거 아닌 생각이지만, 칩거생활 6개월 만에 몸소 깨달은 지혜다. 

나는 예전만큼 불안하지 않다. 어쩌면 이 또한 불안감에 적응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좀 더 단단해지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내 일과 내 시간과 내 사람과 나의 불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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