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주 조용한 아이였다. 일어나서 국어책을 들고 소리 내어 읽을 때면 두근두근 내 심장의 소리까지 들리던,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선생님이 무언가 심부름시켜 주시기를 기다리면서, 또 한편으론 두려워하던 그런 아이.
한 번은 선생님이 과학실에서 뭘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받았다. 3, 4학년정도였던 것 같다. 과학실은 컴컴했고, 나무창틀에 가득한 유리창은 그곳을 더 냉랭하게 보이게 했다. 그걸 찾다 찾다 못 찾았다. 그리고 난 그 컴컴한 과학실에 주저앉았다. '아, 선생님 심부름을 못했어.' 하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있었다. 그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혼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혼났으면 기억이 났을 테니까.
그때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의 심부름은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드는 마술과 같은 것이었다. 출입금지인 선생님들 회의실도 가고, 다른 반에도 가고, 교무실에도 가고.. 그렇게 낯선 곳에 가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걸까?' 하는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심부름을 시킨다.
- 아이들 안전을 위해 교실을 비울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교실을 나갔다 와야 하는 간단한 일은 아이들에게 부탁한다.
- 교실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시성비를 위해 아이들에게 일부를 부탁한다.
- 가끔은 너무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의 힘을 빼기 위해 없는 심부름을 만들어서 시키기도 한다.
- 아주 많은 걸 가져와야 할 때 도와달라고 하며 함께 다녀온다.
그래서 예전에는 결혼배우자로 손꼽히던 초등학교 여교사가 요즘은 남편에게 심부름을 너무 많이 시킨대서 순위가 뒤로 밀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조금은 이해되어 웃음이 난다. 지금 막 자려고 누운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난 당신에게 심부름을 많이 시키나?"
"허, 아니 적당해."
남편이 적당하다고 답하기 전 몇 초 침묵이 있었다. 뭐 그 뜻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심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일은 너무 많다.
교대에 다닐 때만 해도 알 수 없던 일, '선생님이 이것도 하시나?'하고 놀라는 일 투성이다.
특히 종량제쓰레기봉투 묶어서 밖에 내다 버리기..
가끔 퇴근길에 보면 예쁜 치마와 핸드백, 그 다른 쪽 손에 일회용 장갑을 낀 채 종량제봉투를 들고나가는 여자선생님을 볼 수 있다. "아, 어울리지 않아~!" 내가 말하면 서로 웃는다.
교실 쓰레기통 주변은 늘 지저분하기 마련이라 아무리 역할을 정하고 나누어도, 내 눈에 불편하면 결국은 내가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통 주변을 쓸고, 종량제봉투를 묶고 갖다 버려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먼지가 가득한 쓰레기통을 물로 닦는다. 예전엔 청결의식이 가득한 아이가 몇 있어서 알잘딱깔센~ 정리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더러운 데 가까이 가지 않고, 나서서 봉사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쓰레기통이 가득 차면 실내화 신은 발로 꾹 눌러서 자리를 만드는 아이가 몇 있었지만 요즘은 거의 없다. 위로 버리기만 해서 쓰레기 사이사이 아주 공간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만히 보면 요즘 아이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청소'와 '청결', 그리고 '절약'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만 해도 로봇청소기가 청소하고, 더구나 쓰레기통 정리는 부모인 내가 하니까 아이는 그 일을 잘 모르는 것이다. 요즘 부모님들은 그런 일, 청소와 관련된 일은 아이들에게 잘 시키지 않는다. 요즘 부모라면 아이들은 공부하고 예쁜 일만 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하지만 어렵지는 않은 심부름을 시킨다. 그때그때 "이거 도와줄 사람?" 하면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온다. 하지만 잘 도와주는 아이가 반복되다 보면 아이들끼리는 샘을 낸다. '선생님이 쟤만 좋아하시는 거 아냐?'이런 마음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매일 1명씩 '도우미'를 정해서 그날의 심부름도 그 사람이 하고, 그날 발표하는 것도 그 아이부터 한다. 골고루 기회를 준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도우미지만 최근에는 아이들이 이걸 또 어려워하는 것도 같아서 방법을 계속 고민 중이다.
한 아이는 도우미 했던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오늘은 내가 도우미가 된 날이다. 도우미가 하는 일은 힘들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 쉬운 일이었다.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우기를 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엄청나게 긴장되고 또또또 떨렸지만 결국 해냈다. 나는 물통에 물을 담은 뒤 반으로 돌아갈 때 복도에 물이 쏟아질까 봐 아주 천천히 걸었다. 반에 도착해 책상에 물통을 내려놓으니 ‘두근두근’ 떨렸던 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우리 반 모두가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가서 친구와 책을 읽으려고 자리를 정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아, 우리 반에 가서 칠판에 아직 못 온 친구는 도서관으로 오라고 칠판에 써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반으로 가서 그 말을 쓰고 있는데 등골이 서늘해져서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 뒤로도 계속 무서워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서관으로 갔다. 도우미가 되어보아서 재미있는 추억도 생기고 무엇보다 뿌듯한 경험이었다.'
도우미에게 심부름시키는 건 주로 연구실 프린터기에서 뭔가 가져오는 것, 고장 난 태블릿을 과학실에 가져다 드리는 것, 일기장이나 독서록, 수학 익힘을 나눠주는 것, 다른 반으로 무언가 배달하는 것... 아주 여러 반으로 배달할 게 있는 날은 여러 명이 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선생님 저 2학년 1반에 가고 싶어요.""어, 거긴 왜?""제 동생이 있어서요." 이렇게 서로 원하는 반에 가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아이 입장에서 평범한 날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아이들의 설렘, 도전 정신과 교사의 필요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초등학교 교실에서의 심부름, 하지만 이 추세로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예전보다 너무 바빠서 쉬는 시간에조차 학원 숙제를 하느라고 바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 마치면 아주 급히 나가곤 한다. 예전 내가 학생때 하던 교실 바닥 대걸레질, 창틀 청소, 유리창닦이, 쓰레기봉투 버리기는 어느새 내 몫이 되었다. 교실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심부름도 교실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자잘한 일들로 교사는 많이 지치기도 한다. 연 1회 교실청소나 유리창 청소, 선풍기 청소, 블라인드 청소는 다 학교에서 관리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행히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청소는 학교 측에서 해주고 있다.
'건물관리를 받는 학교는 청소도 따로 해 준다던데 그럼 교사가 쓰레기봉투는 버릴 일이 없는 건가?' 하며 새로운 방식을 두리번거려 본다. 자기 자리 청소도 아직 잘 못하는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치고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는 가에 대해 매일 생각이 많다. 청소나 심부름이 소중한 경험이었던 나의 옛날만 기억할 수는 없고, 바뀌어 가는 현실 속에서 이젠 또 이런 일들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 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