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허한 마음을 달래볼 겸, 집 앞 마트에 나서 보았다만!
하필이면 오늘, 날씨마저 흐리멍덩하다.
아침엔 눈이 내리더니,
오후엔 추적추적 비까지 내렸다.
미국은 오늘 날짜로 설을 맞이했지만,
내 마음은 이른 새벽부터 어두운 먹구름이 낀 듯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풍성한 홍콩식 설날을 보내며 활기를 좀 되찾나 했더니만 이상하게도 거짓말처럼 기분이 다시 착 가라앉았다. 사실, 미국에 살다 보면 설날이란 사실조차 쉽게 잊어버리곤 하는데 말이다.
이유인즉슨 설 전날, 일 년간 동부살이를 함께하던 친언니네 가족이 귀국을 해서 떠난 탓이다. 가족을 떠나보내며 마음 한구석이 크게 뻥 뚫린듯하다. 사실, 언니네가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사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는데도, 같은 동부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향을 주고받았나 보다
나에겐 감정 시차라는 게 존재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살다 보니,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한국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시간이었고,
내가 잠자리에 들 무렵이면 한국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었다.
그래서, 때때로 서로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나누기 어려웠다.
소중한 관계임엔 변함없지만,
때론, 서로의 텐션이 너무도 다름을 느낀다.
시차 때문이라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같은 동부에서 살던 지난 1년간은 달랐다.
언니는 생전 처음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야 했고,
나는 남편의 도시락을 주말 제외 늘 새벽에 준비해 왔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레 온갖 마트 정보를 공유하고,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는 레시피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오늘도시락완료" 챌린지라도 하듯
서로의 도시락을 찍어 보내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었다.
사실, 우리 자매는 원래부터 지금처럼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다. 어릴 적엔 참 많이 다투기도 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각자 삶이 분주했다.
그리고 미국서 살기 전에 나는 가게를 하느라 명절과 주말을 반납하며 살았고, 언니는 워킹맘이자 의사로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느라 서로에게 연락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긴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 살면서는 필연적으로 서로 가까워졌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더 솔직하게 자주 표현하며 깊이 알게 된 것이다.
아마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서로를 깊이 이해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한국에서 연락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자주 카톡을 보내고, 통화를 하고,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며 살았다.
그리고 나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조카 둘이 있다.
그중에서도 1호는,
태어날 때부터 친정에서 함께 살아온 터라 내게는 조카이자 막내 동생 같은 존재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내성적인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언니를 따라 조카의 학교 첫 상담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떠나기 전 언니네는 보스턴까지 찾아와 주었다.
꿈같은 크리스마스 시즌 속에서
마지막 미국의 추억을 함께 쌓았다.
한국에서 만날 때보다 훨씬 더 특별했던 시간들이었다
이 모든 추억들이 내 삶의 소중한 레이어가 되어, 나는이 기억들로, 앞으로의 미국 생활도 견뎌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이별의 순간은 늘 덤덤하긴 어렵다.
하필이면 설날과 겹친 이별이라 그런지,
오늘은 더더욱 혼자 남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 아무리 피곤해도 씩씩하게 출석하던 영어 수업도
오늘은 당당하게 땡땡이쳤다.
그리곤,
언니가 미리 부쳐 보낸 손 편지를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MIT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자주 볼 수 있도록 냉장고 문에 붙여 두었다.
그렇게,
이제 한국에서 다시 일상을 시작할 가족들의 안녕을
조용히 기도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이 꿀꿀해서—
과자를 먹고 좀 힘내봐야겠다 싶어
집 앞 마트로 향했다.
올해는 과자를 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새해 계획이라는 게 늘 그렇듯,
아무 의미 없네...
나는 결국,
과자 두 봉지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그작, 우그작.
씹고 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언니네가 온다고 설레었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이별은 언제나,
익숙해질 틈도 없이 찾아오는구나.
단짠의 조합이 완벽해서 평소...
나의 최애 미국 과자라 늘 추앙하는데도.
오늘은,
아무 맛도,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의 시간.
도저히,
과자로 극복하기 어려운 하루인가 보다.
그냥 이런 날도 있기에-
두서없이 감정을 이곳에 흩날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