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파이 한 조각 속에 담긴 온기
매주 정해진 요일과 시간.
어느새 나에겐 정확한 임무가 생겼다.
바로 영어를 배우는 학생이 된 것.
미국에 와서 늘 남편의 와이프로만 소개되던 나.
"남편 따라 미국 왔다."
이 한마디가 나를 설명하는 전부였던 시절.
그때의 나는 마치 딸린 무처럼 존재하는 듯 했다.
하지만 보스턴에 이사 온 이후,
나는 온전히 나로 존재하고, 어딘가 분명히 속해 있는 나만의 영역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그전까지, 남편이 박사 생활을 하던 중부에서는
내 삶은 사실 이도 저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남들은 나를 신혼, 새댁이라 불렀지만,
나는 그런 단어에 속해 있다고 느끼지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혼 생활과 미국 생활에 점차 익숙해지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크게 개의치 않게 되면서부터—
나는 진짜 “나”로, 주어진 하루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때부터,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피상적이거나 타의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비로소 온전히 나의 의지와 애정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시작된 것 같다.
나는 본래 사회적인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별 탈 없이 사람들과 어울렸고,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진짜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단순히 미국인 사이에 있는 동양인이라서가 아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마음을 터놓기 어려웠다.
그래도 나보다 열 살 넘게 어린 동생들과는
제법 즐겁게 어울렸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깊은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데에는
분명 버퍼링이 오래 걸리던 시기가 있었다.
아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또렷하게
학생들에게 문법을 알려주시는 선생님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눈발이 심하게 날려 수업이 휴강되었을 때에도,
선생님의 어지러움증이 심해져
수업이 취소되었을 때에도—
오히려 더 아쉬워한 건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보내온 진심 어린 이메일을
통해서도
우리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을 전해주곤 했다.
그렇게 세 번의 수업이 스킵된 후,
어렵사리 다시 만난 그녀의 얼굴엔
보기만 해도 아팠을 퍼런 멍자국이 선명했다.
어지러움증으로 넘어져 생긴 상처인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보였다.
작은 체구지만 늘 씩씩한 그녀답게.
그녀의 귀에는 오늘도 아이스크림콘, 가지, 달걀프라이 같은 위트와 즐거움이 담긴 이어링이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확고했던 그녀의 취향을
지금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의 수업 방식도
때로는 격 없는 유머와 엄격한 수업 방침을
유연하게 넘나들었다.
한국에서 배웠던 딱딱하고 긴장되던 영어 수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 참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는 문법 수업이라 하면
다소 지루함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문법 시간은
그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렸다.
이 시간은 단순한 문법 공부가 아니라,
새로운 언어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과정이 되었다.
내 수업 동료들은 나와 비슷한 또래들도 많지만!
자녀를 따라 손주를 돌보러 온
미국 생활 10~20년 차의 미국짬이 가득 찬 외국인
주부, 할머니, 학생 등 다양하다.
우리는 매 수업마다 랜덤으로 팀을 맺고 대화를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의 삶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그 덕분에, 나는 내 관심사에 없던 세계도 마주한다.
그리고 새로운 대화를 위해 사전 조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이방인의 삶을 깊이 이해하는 선생님은,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넘어,
어떻게 배워야 삶에 진짜 유용할지, 그리고 서로 내밀하게 연결되어 살아갈지- 알려주려 늘 진심를 다한다.
그리고 그중,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체리나무를 도끼로 베고도 솔직하게
고백했다는 유명한 일화.
사실,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는
후대의 창작된 이야기지만, 그가 정직한 지도자의
상징으로 남게 된 건 확실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선생님이 굽어진 어깨를 펴고,
작은 손으로 묵직하게 축 쳐진 가방을 연다.
수업에 나온 체리나무 이야기를 보고,
그녀가 만들게 된 홈메이드 체리파이였다.
"여러분을 위해 만든 체리파이예요!"
사실 그녀는 지난주에도 만들어 오려고 했지만,
오븐 시간을 잘못 맞추는 바람에 태워버려서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지러움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우리를 위해 두 번째 체리파이를 구웠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외에,
과연 나도 누군가에게 이토록 열정적일 수 있을까?
처음 만났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녀의 변함없는 열정에
나는 매번 감탄한다.
그리고 그녀의 다정함과 헌신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나는 다짐하게 된다.
실은.. 무료 수업이라 쉽게 빠질까 고민할때도 있던,
나는 이 수업을! 허투루 다니지 않겠다고.
그녀의 시간을 존중하는 만큼,
그녀의 열정에 발맞춰 나도
영어 공부를 정성껏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다정함에 깊게, 뜨겁게 감동받은 사람이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세계가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오늘의 다정함을 마주한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밝은 통로가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이런 마음쯤은 품고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