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할머니가 떠오르는 나무라 그냥 눈물이 났다.
지난 5월의 묵혀두었던
브런치 서랍장을 열어보았다.
어느 날인가 마음들을 두서없이
적어두었는데,
꺼내기 복잡해서 다시 넣었던 이야기다.
매일 걷는 찰스강 그린웨이- 산책길에서
보내는 시간은
만난 그 순간부터
매일이 감동이었다. 매일 다르게 펼쳐지는
하늘과, 나무의 색, 그 안에 강줄기는 쉼 없이 흐르고-
그 안에는 작고 귀여운 온갖 동물들이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마음이 힘든 날에는 댐 앞에 앉아 물줄기가
힘차게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돌아올 때도 많다.
외할머니가 갑작스레
입원하시고, 돌아가시고.. 떠나보내는
시간은 겪어보지 못했던 쓰나미 같은 감정들로
마음이 슬프고 어려웠다.
그 안에는 염려, 불안, 죄책감, 후회, 연민, 슬픔
온갖 심정이 뒤섞여있었다.
할머니가 응급실에 가셨단 소식을 듣고
가만히 넋을 놓기도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기도 했으며
꺽꺽대며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아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엄마의 말씀에, 작년 미국에 올 때쯤
할머니가 "다음엔 한국에 언제 올 거야?
언제 볼 수 있어?"
연신 물으시던 그 마음이 계속 밟혔기 때문인가 보다.
그때 미세하게 느꼈던 감정들,
언제나 마음속에 품었던 불안한 마음들,
결혼 후 미국에 살면서 일 년에
한두 번씩 들어갈 때마다
부디 건강하시기만 바랬던 나의 바람들이
영원히 지켜질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염려하며 예상했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황들에
큰 슬픔은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 날 거듭 찾아왔다.
당장 달려갈 수 없는,
현실을 또 지켜내야 하는 나의 삶이 있기에
정말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다.
산책길에 마주했던,
다른 꽃나무보다 유난히 눈에 들어오고
먼저 꽃을 급하게 피워내었던
어느 핑크빛 꽃나무를 보며
할머니가 좋아하는 이 아름다운 꽃들을 담아내어
(할머니는 내가 첫 직장에 들어가 사드린
오렌지 니트를 가장 아끼며 십수년간 매 겨울
입으셨다. 그리고 사계절 내내 늘 진분홍색의 가디건을 즐겨 입으셨으며, 손주사위를 만나는 날엔-
꼭 분홍 립스틱을 곱게 바르고 계셨다.)
보여드리고 싶다고 부디 다시 회복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며 지냈는데-
그리로부터- 일주일 만에 외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애도의 기간 동안
더더욱 내 슬픔과 대조적으로
이 핑크 꽃나무는 그야말로 솜사탕처럼
풍성하게 만개했고, 슬프게도 정말 아름다웠다.
외할머니의 발인날,
공교롭게도- 할머니를 떠올리던 꽃나무 근처에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던 아파트 계약서를
쓰게 되면서, 나는 감사하게도 우리 할머니나무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도 내가 많이 보고 싶으셨나보다.
여기에 집을 구하게 하셨으니..
이런 생각들이 절로 들었다.
(보스턴에서 원하는 집 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오늘 새벽 조깅길에도
나는 우리 할머니를 만나고 왔다.
꽃은 모두 떨어져 지금은 그린빛의 나무가 되었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성품처럼-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늘도 되어주고
동물들의 집이 되어주며
그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헥헥 거리며 뛰는데 할머니 나무 근처,
휠체어에 앉아계시던
어느 90세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나에게
따습게 인사를 해주시며,
운동을 하는 나에게 엄지 척을 해주셨다.
늘 나에게 응원해 주시던 우리 할머니처럼 말이다.
오늘따라 우리 할머니가 참 많이도 그리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