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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율 Sep 28. 2020

완벽하진 않지만 이렇게 살고 싶어

환경문제는 우리의 문제였다

<완벽하진 않지만 이렇게 살고 싶어>

 

혜율


벌써 7월이다. 이번에 논문 주제를 정하지 않으면, 기나긴 학교 생활의 종지부인 12학년으로 넘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주제 선정기간은 진작에 지났다. 그동안 몇 가지 후보를 추려보았지만, 잠깐의 흥미일 뿐 긴 호흡으로 끌고 갈 만큼은 아니었다.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 주제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가득 안고, 유리는 페이스북을 뒤적였다. 한숨을 푹 내쉬며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아래에서 위로 움직였다. 그러다 멈칫. '이게 뭐야?' 유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작은 핸드폰 화면 속에는 커다란 굼벵이 같은 괴물이 일렁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쓰레기를 잔뜩 머금은 바다였다. 파도가 칠 때마다 그 괴물은 방파제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스윽 다가갔다가 뒤로 빠지기를 반복했다. 유리는 흠칫 놀란 마음을 누르며 다시 한번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렸다. 그러다 멈칫. 이번에는 거북이다. 분명히 바다거북인데, 피노키오 바다거북도 있었던가. 코가 길쭉하다. 자세히 보니 거북이 코가 아니라 거북이 콧구멍에 꽂힌 빨대다. 입을 벌리고, 피를 흘리고 있는 거북이의 모습은 유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유리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의 일이라면 더욱 마음이 아팠다. 모르는 동물을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귀여워하지도 않지만, 동물의 피해 소식을 들을 때면 유난히 가슴이 아팠다. 초등학생 때 플랜더스의 개를 읽었을 때도 파트라슈가 죽는 장면에서 펑펑 울고서는 다시는 그 책을 펼치지 않았다.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동물이 죽는 것은 대부분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다. 억울하게 죽는 사람보다 억울하게 죽는 동물 이야기가 더 가슴 아픈 이유는 동물은 말도 못 하고 죽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거북이 사진은 유리를 움직이게 했다. 유리는 앞에 놓인 노트북을 펼쳐 재빨리 검색하기 시작했다.

‘쓰레기 문제’, ‘쓰레기 거북이’, ‘바다 쓰레기’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결정적인 자료를 하나 찾았다. <플라스틱 지구>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였다. 쓰레기 문제가 다른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전보다 더욱 놀라는 자신을 보며, 내심 다른 나라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마음 한 구석 안심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세상에 니 바다, 내 바다가 어딨어." 유리는 부끄러운 마음에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여름, 서핑을 배우기 위해 바다에 몇 시간 동안 떠있으면서 쓰레기를 피해 다녔던 것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내심 이기적이었던 순간을 부끄러워하며 유리는 계속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다녔다.



'플라스틱 프리'

'제로웨이스트'



그날부터 유리는 이전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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