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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가는대로 Feb 12. 2024

보고자가 주도하는 보고

보고는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대화를 잘 이끌어 가시는 편이신가요?

여러분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 편이신가요?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시는 편이신가요?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시는 편이신가요?

여러분은 상대방의 의도를 잘 알아채는 편이신가요?


보고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의 채널이자, 의사 결정의 기초 자료가 되는 중요한 업무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구성원들 중에 보고는 리더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본인은 자료 수집이나 실험과 기본적인 자료 정리만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보고와 회의로 인해, 보고가 주 업무가 아니라 보조 업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말 안 하면 귀신도 모른다고 했는데, 보고나 회의가 없으면 여러분들이 한 일이 제대로 인정받거나 평가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회사에서 일은 평범한 것 같은데, 말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것 같다면, 상사에게 본인이 한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잘 전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보고가 중요합니다.


보고된 내용을 보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다음 할 일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고는 기본적으로 서로의 준비된 자료를 바탕으로 생각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특히 보고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보고를 보고자 중심으로 대화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대화의 시작은 듣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화를 잘 이끌고 가는 사람은 상대방의 작은 몸짓,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갑니다. 보고의 시작도 보고를 받는 사람, 다르게 표현하면 그 회의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보고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무슨 목적으로 보고를 지시했을까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정확한 의도를 모르겠다면, 가장 좋은 것은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직접 지시를 받아도 정확히 알기 어려운데, 다른 사람을 통해서 지시를 받았다면 그 의도를 사실 알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보고의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접 확인이 어렵다면,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감은 잡아야 합니다. 저는 보고 지시를 받으면 앞뒤 상황을 먼저 확인합니다. 어떤 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그 전후의 주제는 무엇이었는지, 과거에 유사 내용으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등을 확인합니다. 여기에 과거 피보고자는 이야기할 때 어떤 부분에 더 관심이 있으셨는지도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보고는 당연히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지만,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전달해야 대화가 쉽게 이어집니다.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가가 가장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관심을 적절히 이끌어내는 지도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사원시절에 새로운 시설 투자를 위해 업체로부터 받은 많은 자료와 해당 시설이 왜 필요한지를 정리해서 당시 연구소장님께 제 상사와 함께 보고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연구소장님은 나는 잘 모르겠으니, 공장장님에게 검토를 받고 오세요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장장님께 찾아갔습니다. 그때 공장장님의 첫 질문은 운영비는 얼마가 듭니까였습니다. 저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잔뜩 야단을 맞고 다시 보고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은 투자만 담당하시는 분이 아니라 운영이 더 중요한 분이라 초기 비용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운전 비용이 중요했을 텐데 저는 전혀 경험이 없어서 당시는 그분이 무슨 질문을 하실지 예측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일의 진행을 위해 스스로 보고하기로 결정했다면, 보고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명확해야 합니다. 오늘 친구와 한잔 하려고 할 때 배우자에게 허락을 받고자 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평소에 한잔하고 들어가는 것에 매우 관대한 배우자이고, 그날이 특별한 날도 아니라면, 그냥 오늘 한잔하고 갈게라는 말로도 충분하겠지만, 평소에도 술 때문에 다툼이 있었는데, 게다가 특별한 날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술자리를 미루고, 집에 선물을 사서 들어가는 것이 최고겠지만 말입니다. 아무 이야기나 막 하다가 불쑥 나 오늘 늦어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오늘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고,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정말 나는 어쩔 수 없어서 내일은 꼭 일찍 들어갈 테니 오늘 하루는 좀 늦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 편이 그래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보고도 그렇습니다. 투자 승인을 받을 것인지, 과제 연장이 목적인지, 성과를 자랑하고 싶은 것인지,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자료도 그 목적에 맞춰서 만들어야 하고, 모든 이야기의 흐름이 결국에는 보고의 목적으로 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실험 결과를 리뷰하고, 다음을 어떻게 갈지를 의견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봅시다. 먼저, 지금 단계에서 결정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려움이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보다 잘 풀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잘하고 있는 것도 언급되어야겠지만, 잘하고 있는 것을 강조하다 보면,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이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강조할 것과 그냥 넘어갈 것을 정하는 것입니다. 자동차용 전지 개발을 하는데 사이클 수명은 특성이 좋은데 저장 수명이 문제라면, 잘 진행되는 사이클은 하나의 그래프로도 충분할 수 있지만, 이슈가 있는 저장은 다양한 고민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 목적인데, 잘 된 것을 모두 나열해서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는 보통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 자료를 보면 이야기하고자 하는 흐름에 상관없이 했던 일을 모두 나열하고 처분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보고자가 정말 내용을 잘 알고 있어서, 자료에서 중요한 것을 찾아내고 방향을 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보고자가 논의의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보고를 끌고 가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고서를 만드는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부담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엑셀을 그냥 보면 되지, raw data를 보면 되지 왜 이쁘게 정리를 요구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보고의 목적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30분이던 1시간이던 논의시간 안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답변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피보고자가 가장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보고서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적어보십시오. 그리고, 해당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지를 정리해 보시고, 필요한 자료들을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정리하면 됩니다. 가끔은 꼭 필요한 자료인데 빠진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료를 찾아 넣거나, 실험을 추가로 해서 그 내용을 채우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그 자료를 가장 유사한 것이라도 넣어야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가지고 있는 자료가 무엇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해당 자료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고의 결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가지고 있는 자료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 먼저 얻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스토리라인을 짜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더 많습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은 필요한 자료가 빠졌다고 그 내용을 무시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자료를 누락시키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원하는 목적에만 집중해서, 결론과 다른 결과를 뺀다면 제대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의사 결정이 잘못된다면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습니다.


보고가 없이도 일의 흐름을 파악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위자와 함께 일하고 계시다면 매우 복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매번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선택과 결정의 근거가 바로 여러분이 하는 일이고, 그 일을 정리해서 알려주는 보고가 됩니다. 결정권이 없는 위치에 있더라도, 매번 나는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가까이는 다음 보고서를 작성할 때 방향이 좀 더 확실해질 것이고, 길게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갔을 때 보다 빠르고, 명확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보고는 정해진 주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입니다. 대화입니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의 생각을 강요받는 자리가 아닙니다. 처분을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라,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자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피보고자가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피보고자가 원하는 주제에 집중해야 합니다. 새로운 주제라면 관심을 먼저 끌어내야 합니다.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의 목적에 따라 흐름을 가지고 만들어져야 합니다. 자료는 보고 받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져야 하지만, 주도권은 보고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다면 보다 정확한 의사 전달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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