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충동이 심해 응급실에 다녀왔다. 조용한 공간에서 링거를 맞으며 누워있는 내게 주치의 선생님은 당장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니 동의입원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하셨다. 폐쇄병동. 듣기만 해도 답답하지 않나? 요즘은 안정병동, 보호병동 뭐 그렇게 불린다던데, 뭐 어쨌든 내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지만 동시에 치료가 꼭 팔요 하단 생각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며칠 안 지나 연락이 와서 병원으로 향했다. 필요한 짐을 들고 병실에 들어오니 내 물건은 모두 검사당했고, 가져간 펜들도 다 빼앗겨 버렸다. 내게 남은 것은 달랑 들고 온 스프링이 없는 노트 2권, 추울 때 덮을 담요 혹은 겉옷뿐이었다. 병원에서 나누어주는 색색의 펜들도 함께. 화가 났었나? 누군가가 내 물건을 뒤적거리는 것이 좋은 경험은 아니다만 화를 내거나 슬퍼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진행된 입원 절차는 낯설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니! 가끔 입원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며 탄식하곤 했는데, 지금부턴 나도 남들이 보기엔 똑같은 환자겠지 싶어서 조금 의기소침했던 것도 같다.
나는 몸 여기저기 잔병이 많은 사람이라 병원에 입원한 김에 협진을 통해서 검사를 받았는데, 그때마다 휠체어에 앉혀지고 몸에 벨트를 꽁꽁 두르시곤 했다. 아마 환자의 단독행동(도망간다거나)을 막기 위해 휠체어로 이동시키는 거 같았다. 솔직히 재미있었다. 낮은 시야로 바쁜 병원을 둘러보니 둥둥 떠다니는 피곤에 찌든 얼굴, 또 슬픔에 빠져있기도 한 얼굴들을 보았다. 평소의 나라면 바닥을 보고 걷느라 신경도 안 썼을 표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명이 태어남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 병원이구나 생각했다.
다른 병동과는 다르게 간호사분들께 저녁마다 사물함 검사와 약 복용 검사를 받는다. 간혹 외출을 다녀왔다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신을 해칠 물건을 가져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 하셨다. 약 복용도 치료와 큰 연관이 있기 때문에 늘 검사하는 것이라 하셨다. 약은 다 먹으면 입을 아 벌리고 삼켰는지 통과받아야 했다. 가끔 혀 밑에 넣고 먹은 척하는 사람을 쏙쏙 뽑아내는 간호사분이 대단해 보였다.
아침에도, 점심때에도, 저녁에도 짧은 복도를 계속 거니던 여자분이 기억난다. 저벅저벅 복도를 걸어 다니는 아주머니를 보고 많이 아픈 분인가? 생각했었다. 근데 정말 할 게 없었다. 2-3일 차부터는 나도 병원 복도를 저벅저벅 걸어 다녔다. 앉아서 글만 끄적이는 것도 무리가 있었기에 간호사실 앞에서 내가 머무는 호실까지 흐린 눈을 하고 걸어 다녔다.
나는 내가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음의 병을 만들어내기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충동으로 응급실에만 가도 의료진마다 이야기가 다른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자살충동에 대해 더 고만하고 더 환자에게 귀 기울여주는 게 필요한 거 같다.
병동의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친구들이었는데, 내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
글을 뭐라고 마무리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나와 같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