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돕기 위한 위(Wee) 클래스 상담실이 처음 문을 연 이래, 2023년 올해로 15년째를 맞이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위(Wee) 클래스 일선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전문상담교사의 직업과 삶을 알아봅니다. 이번 주제는 총 2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은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ㅇ안녕하세요, 저는 2007년부터 위(Wee) 클래스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문상담교사 이정희입니다. 상담교사로 일 한지 어느덧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상담에 대한 공부를 한창 하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의 변화가 마치 늘 새로운 파도를 타는 것과 같아서, 매일 새로운 파도를 타고 있답니다. 언젠가는 이 파도를 즐길 수 있는 상담교사가 되고 싶네요.
✔️ 아하, 매일 타는 이 상담 현장의 파도를 언젠가 즐기고 싶은 소망이 있으시군요.
2023 올해는 어떤 파도를 타게 될까
✔️이렇게 파도 타는 삶을 사시기까지, 선생님께서 원래 어떤 전공을 공부하셨는지 제가 좀 궁금한데요. 그리고, 어떻게 처음에 상담 교사가 되기로 결정하셨는지도 궁금하고요.
ㅇ저는 원래 고교시절 국문과를 가고 싶었기 때문에, 제가 최종적으로 입학한 대학교 외에는 다 국문과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원했던 국문과에 합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입학원서를 내러 갔던 저의 모교의 학풍과… 캠퍼스 분위기랄까요? 그 느낌이 너무나 좋아서, 결국 이 학교를 가기 위해 ‘영어교육과’를 선택하게 됐어요. 마침, 제가 교사에 대한 꿈도 있었고, 가족들도 좋아했고요.
그런데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전공하는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제게 너무나 어려운 거예요. 비록 전공 공부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대학교 신문사 동아리 활동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기자도 되고 싶었거든요. 제 별명이 ‘이기자’ 였어요!
✔️ 음, 선생님의 신문사 동아리 활동이, 진로/직업 상담 이론 중에 크롬볼츠의 ‘우연한 기회 이론’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거 같네요. 국문과에 가고 싶었던 것이 학생 기자 활동으로 이어진 것처럼 말이죠.
ㅇ하하, 그 ‘우연’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더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는 그렇게 시작한 신문사 동아리 활동을 대학 4학년 1학기까지 하고 국장까지 지냈답니다. 저의 대학 생활의 전부는 신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4년 동안 최선을 다해 기자활동을 한 저의 결론은요, “아, 나는 기자와 맞지 않는구나!”라는 거였어요.
'기자'라는 삶의 장(Chapter)를 덮고 상담교사로.
✔️그렇군요, 어떤 면에서 기자라는 직업이 내게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셨나요?
ㅇ일단, 저에게 마감을 지키는 것 자체가 참 힘들었어요. 저희 학교는 동아리실에서 밤에 글을 쓰고 있으면 보안 때문에 밖에서 문이 닫히곤 했고, 그러면, 아침까지 갇혀서 글을 써야만 했죠. 그렇게 쓴 글을 다음날 인쇄소에 가서 신문형태로 낼 수 있게 배열하는 일을 하면서 3~4주에 한 번씩은 밤을 새우곤 했거든요. 이렇게 밤샘 마감을 지키는 것이 제게는 너무 고된 일이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큰 고민거리였던 건, 제가 기사를 쓰려고 인터뷰를 하는 분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그분들께 너무 공감을 해 버려서, 저 자신의 논조가 있는, 신문사의 입장이 있는 비판적인 글쓰기를 잘 못한다는 거였어요.
ㅇ예를 들면요, 당시 논란이 되었던 학교 주차비 문제로 담당자를 만나러 갔는데, 그분이 설명하는 학교 측 입장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학교 신문사 선배들이 제 글을 감수할 때면, ‘너의 생각은 없느냐’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상대에게 공감을 하다 보니, 나만의 논리를 끝까지 펴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결국, 4년이라는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기자의 삶’은 그렇게 정리를 했지만, 그 시간을 보냈던 것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의 다음 스텝인 상담교사 역할을 할 때 가장 큰 디딤돌이 되었다고 봅니다.
✔️꿈을 좇아 열심히 노력해서 개척한 길을, 결국에는 가지 않기로 선택했음에도 후회가 없었다는 말씀이시군요.
ㅇ네, 맞아요. 그래서, 제가 학교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도, “한 번 해 봐. 해 봤는데 이 길이 네 길이 아닌 것을 이것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경험도 없어.”라고 이야기해 줘요. 제 경우가 그랬으니까요. 기자를 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해 본 후에, ‘이건 내게 안 맞는 옷이구나!’라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미련이 없었어요.
✔️시도해 본 경험을 통해, 나와 맞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네요. 그렇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상담교사라는 직업의 길로 들어오시게 됐나요?
ㅇ제가 기자의 길을 떠나기로 결정할 때 즈음에, 휴학하고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외국 생활을 통한 자극이 있다 보니, 다시금 스스로 영어교육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전공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고, 교생실습을 나갔거든요. 그런데 그만 교생실습을 나간 지 2주 만에, 너무나 어이없게 넘어져서 발목에 금이 가는 사고가 나고, 발목 연골까지 문제가 되어 결국 졸업식 날에 저는 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동기들은 다들 취업준비하며 바쁘게 지낼 때, 저는 부모님께 식사를 의지해야 하는 3개월 간의 침상 생활을 했습니다. 다시 땅에 발을 대고 편히 걷기까지, 6개월 정도 걸린 거 같네요.
다시 걸음을 걷기까지 6개월, 그리고 필연처럼 찾아온 우연
당시에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자신감이 바닥으로 뚝 떨어진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때 마침, ‘우연히’ ‘전문상담교사 양성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아, 여기서 바로 그 ‘우연’이 등장하는군요!
ㅇ네, 맞아요. 제가 참여했던 이 양성과정은 이미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약 8개월가량 상담 관련 교육과 훈련을 진행하고, 수료를 하면 상담교사 2급 자격증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 공고를 보는데, 부모님께 제가 그랬어요. “나 이거 하면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이죠. 그래서 그때부터 침대에 누운 채로 양성과정에 선발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답니다. 이 양성 과정에 선발되기 위한 신청 경쟁률도 높았고, 더구나, 저는 강원도가 본가인데, 강원대 한 곳에서만 양성과정이 진행되었거든요. 다행히, 선발 시험을 거쳐, 결국 ‘전문상담교사 양성과정’에 합격을 했습니다. 마침, 제 힘으로 목발 없이 열 발자국 정도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최종면접을 보았어요.
ㅇ제 경우는 이렇게 ‘전문상담교사 양성과정’을 통해 상담교사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전문상담교사가 되고 싶은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말씀드리면, 제가 해당 과정에 입학할 당시처럼 이미 교사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리학 학부 전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전문상담교사를 배출하기 위한 양성과정 모집은 이후에는 개설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해요.
지금은 심리학 학사 취득 후,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서 양성과정을 졸업하면 전문상담교사 2급 자격증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기사에서는 상담심리교육대학원 양성과정이 몇 년 내로 폐지된다는 내용을 보았기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앞으로의 변하는 제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더 잘 알아보고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제 경우는 상담을 하면서, 학부 때 심리학이나 관련 분야 전공을 하지 않았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임용이 되고 나서, 3년 정도 후에 상담심리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과정을 수료했죠.
위 Wee 클래스 로고
✔️말씀하신 대로, 대학 신문사 기자에서 영어교사 지망생으로, 사고로 인해 다시 전문상담교사가 되신 일련의 과정이 정말 파도를 넘나드는 것 같네요. 그렇게 입직 후에, 일선에 계신지 10년이 넘으셨는데, 상담교사의 업무와 일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ㅇ네, 보통 상담 교사들은 대부분 위(Wee) 클래스라는 단위 학교에 있는 상담실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요, 여기서 Wee는 우리의 We와 Emotion과 Education의 앞 글자 E를 따서 합친 말이에요. 위(Wee) 클래스는 단위 학교, 그 위에 위(Wee) 센터, 그리고 위(Wee) 스쿨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상담을 받는 대상자는 주로 학생들이고, 또 학생의 보호자, 교사가 함께 협력관계로서 상담을 진행하게 됩니다.
✔️학생만이 아닌, 학생의 보호자와 담당 교사에 대한 상담도 진행하신다는 말씀인데, 그럼, 전문상담교사로서 선생님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구성되나요?
ㅇ상담 교사의 경우, ‘상담’ 업무와 ‘교육’ 업무를 함께 진행합니다. 우선, 상담 업무부터 이야기할까요?
상담내용을 기록하는 상담일지
저는 중학교에 있어서 1회 상담은 학생들 한 교시 수업시간과 동일한 45분으로 구조화되어 있어요. 예약제로 운영되는 상담을 하루 3~4 케이스 진행하는 것이 저의 바람이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는 하루에 5~6 케이스도 진행하죠. 예약된 상담 일정만 진행하는 건 아니고, 예약이 되지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일로 방문하는 ‘위기 친구들(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을 위한 짧은 조언 상담, 학부모전화 상담 등도 할 때가 있고요, 상담일지 기록이나 공문 작성 등 행정 업무도 필요한 부분입니다. 필요에 따라, 상담 학생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하기도 해요.
ㅇ‘교육’과 관련해서는, ‘또래 상담’이라고 해서 학생들이 또래 친구들을 상담해 줄 수 있도록 교육하는 동아리 활동을 지도하는 것과 ‘생명 존중 캠페인’ 진행이 있어요. 특히, 학생들은 해당 캠페인을 통해서 ‘생명 지킴이’의 역할에 대해 배우고 자살 예방 교육이나 관련된 활동들에 참여하게 됩니다. 활동은 외부에서 전문가분들을 모셔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유익한 콘텐츠를 시청하고 독후감을 쓰는 것 등을 하기도 해요. 교육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캠페인이라는 것이 ‘생명 존중과 관련된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희망낙서’라는 활동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말을 적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희망낙서'
✔️제가 ‘상담 교사’라는 직업명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1:1 학생 상담’을 떠올렸는데, 알고 보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도 다양하게 진행하고 계시네요.
ㅇ네, 그렇죠.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활발하게 하지 못했지만, '집단상담’이 있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만이 아니라 학부모들도 대상으로 하고, 외부 기관과 협력해서 진행하기도 합니다. 의사소통과 자존감 향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학생, 그리고 청소년이라는 대상의 특성상, 아무래도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데다가, 자신의 선택이 아닌 학부모나 교사의 권유로 상담실을 찾게 되는 ‘비자발적 상담’이 많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는 상담 진행에 다소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교 상담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전에 도입된 외국의 경우에는 ‘청소년기 학생 상담’을 좀 더 전문적으로 세분화해서 다루기도 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요, 그거 아세요? 학생들이 상담 신청하고 ‘노쇼 (No Show)’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왜냐하면, 그 사이에 친구와 화해했거나 마음이 풀려서요.
✔️마음이 풀려서 상담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군요! 흐뭇한 웃음이 나네요. 선생님, 그러면요 지금까지, 상담 교사로서의 업무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는데, 선생님의 일상이라고 했을 때, 개인의 삶도 떼어 놓을 수가 없잖아요. 어떻게 일상을 꾸려나가시는지도 궁금하거든요.
ㅇ제 경우는 아침 시간이 그나마 ‘저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인 듯해요. 그래서 학기 중에는 아침 5시 반 정도에 기상해서, 30분 정도 달리기를 하고 30분 정도는 개인 묵상의 시간을 가져요. 나름대로의 자기 돌봄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떨 때는, 달리거나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지 않으면, 끝도 없이 상담 사례 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다 보니, 작년에는 감각을 통해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중요한 포인트네요. 감각을 통해 끊어내는 작업이란 것이.
ㅇ네, 내 발이 지금 땅을 딛고 있는 그 순간에, ‘지금 여기’로 좀 돌아오는 거죠. 지금 내가 달리고 있고 내가 먹고 있고 몸으로 느끼면서, 내가 상담한 사례와 나의 현실, 삶을 구분하는 데에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전을 읽는 독서 토론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참, 저는 커피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커피와 디저트를 ‘집중해서 먹는 것’과 책을 읽는 것으로 저를 돌보고 있어요. 책은 끊임없이 저를 돌아보게 하고 또 공부하게 하는 힘을 주거든요.
땅에 발을 대고 지금 여기(here and now)로 돌아오기
✔️그럼, 가족과의 일상은 어떠세요? 초등학교 자녀를 둔 워킹맘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ㅇ인터뷰 질문지를 미리 받았을 때, 사실 이 질문이 전 참 좋았거든요. 나로서, 엄마로서, 상담 교사로서 어떤 삶을 살고 있냐는 질문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러니까, 저에게 있어서, 상담을 할 때는 나 자신이 하나의 도구이자 악기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현재 지나고 있는 특정한 삶의 주기(시기)에, 지금 있는 저의 자리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는 위치, 상담교사로서 있는 위치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니까 말이죠.
ㅇ개인적으로, 저는 상담교사가 되었을 때, ‘엄마’라는 역할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학생들도 많이 만나지만, 학부모 상담을 할 때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 제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 나면, ‘상담’을 더 잘할 거라는 그런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니까요, 오히려 예전보다 엄마들에게 확신 있게 말을 못 하겠는 거 있죠. 제가 알고 있고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이전에는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 어머니!”라고 잘했던 것 같은데, 막상 제가 아이를 키우고 보니까… 학부모님들이 겪는 어려움과 상황이 공감이 되다 보니, 요즘엔 오히려 더 말을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보통 상담자가 꼭 갖춰야 하는 자질이 ‘공감’이라고 하는데, 상대방에게 더 많이 공감이 되다 보니 오히려 상담을 잘 못하겠다고 하시는 말씀에 ‘상담’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네요.
ㅇ음, 다시 말씀드리자면, 제겐 점점 더 겸손해지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이란 상대의 신발을 신은 것처럼, 상대의 입장을 수용하는 자세이지만, 그렇다고 상담자의 생각과 느낌까지 없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겸손한 태도는 더 나은 공감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니,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지게 된 것 자체가 공감을 배우는 과정이라 여기고 있어요.
매일 상담의 파도를 타며 공감을 배우고 있는 이정희 상담교사 인터뷰,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