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나무 Mar 25. 2023

매일 새로운 파도를 타는 상담교사 #2

전문가 인터뷰 시리즈 2호-이정희 전문상담교사

학교와 교육청 지역사회가 함께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돕기 위해 마련한 Wee 클래스 상담실이 처음 문을 연 이래, 2023년 올해로 15년째를 맞이했습니다. 1편에 이어, Wee 클래스 일선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전문상담교사의 직업과 삶을 알아봅니다.


-2편-


> 조금 전에,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학부모님들의 상황에 공감이 되어서 오히려 단호하게 이런저런 방법을 제시하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잖아요.


o 네, 맞아요. “아, 엄마들이 이런 상황이어서 못 하는구나”. 그런 깨달음. 그래서 오히려 더 말을 하기가 쉽지 않고요, 때로는 상담을 받는 아이에게 더 공감해야 하는데, 엄마들에게 공감이 더 잘 되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래서, 특히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할 때는 나름의 선긋기를 하고 있죠. 이런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답니다.


> 네, 아무래도 학부모로 오는 분들이 대부분 어머님들이시니, 엄마로서 나의 공감지수는 올라가는데, 상담교사로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o 그렇죠. 엄마가 되어보기 이전 과는 또 다른 노력을 해야 하고요. 또, 아까 제가 저 자신이 상담을 위한 도구라고 말씀드렸는데, 제 안에 있는 내가 모르고 있었던 또 다른 나, 연약한 나를 보고 분석하고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딸에게 고맙죠. 한 편으로는 미안하고. 직장맘으로서… 지금보다 더 잘해 주고 싶은데, 못 해 주는 것도 있고요. 제가 학생들을 상담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 아이를 더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정말 사실 잘 못하고 있답니다. 상담을 하지만, 아이한테는 상담사가 아니에요. 엄마예요.

출근 전, 아이에게 맛난 건강비빔밥을 차려 주고픈 엄마예요

> 이게 참 마음에 와닿는 말이네요. 그렇죠. 엄마로 다가가는 거죠. 상담교사라는 직업이 아닌. 아이도 그러기를 원하지 않을까요?


o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아이에게 상담교사의 역할도 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아무래도 상담을 공부한 ‘엄마’로서 좀 더 나은 엄마이기를 (제 자신에게) 기대한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거. 좀 더 잘하고 싶은데 말이죠. 그렇지만, 가족들이 제가 상담사로서의 이 길을 걷는데 저에게 주는 많은 자극들이 참 좋은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존재만으로도 저를 성장하게 해주는. 또 딸이 사춘기가 되면 엄청 큰 어려움과 함께 또 성장하겠죠. (웃음)


> 또 다른 파도가 몰려올 앞날을 예견하고 계시군요.^^ 제가 또 궁금했던 점은 ‘상담’이란 것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는 것이었는데요.


o 그러니까, 저는 상담이란 ‘누구나 받으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은 삶을 살 때, 그 생의 주기에 있어서 각자 어떤 갈등이나 문제를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도 다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일을 만난 그 순간에 나 혼자 힘으로만은 할 수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해보면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죠. 담교사가 마술사나 해결사 역할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말해 줘요. “네가 이미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선생님은 너를 돕는 사람이야.”라고요. 상담교사란 이렇게 ‘조력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꽃망울이 피어오를 때가 있듯이, 상담에도 때가 있는 듯해요

o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상담을 받는 것은 ‘누구에게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상담의 적기는 누구나 다르다’라는 측면도 있답니다.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거나 불편했다는 경험담들도 있는데요, 제가 상담을 받은 경험을 돌아봐도, 어떤 상담을 받았을 때, 그 상담사님들의 역량차이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만큼 그 상담을 필요로 했던 저의 때가 있었지 않았나 해요.

예를 들면, 학교 상담실에 오는 학생들은 비자발적 청소년 상담자인 경우가 많은데, 제가 슈퍼비전을 받을 때, “선생님, 왜 이렇게 애를 쓰고 있어요?”라는 피드백을 좀 많이 받았어요. 아이들에게 “상담 계속 받으러 와야 돼”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꾸준히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게끔 하고 싶다는 저의 생각과 노력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누구에게나 ‘상담의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좀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있죠.


> 그렇군요. 선생님께 있어서, 상담은 “나에게 00이다”라고 말한다면 무엇일까요?


o 음… 상담은 “나에게 치유와 성장, 그리고 수용이다.”

'생명존중 캠페인: 모든 생명은 소중해' ⓒ이정희 상담교사

> 그럼, 선생님은 어떤 상담교사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o 인터뷰 사전 질문지를 받고, 그 부분을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상담교사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서. 처음 제가 이 길에 들어섰을 때는…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내가 말로 설명하기보다 내 삶과 행동으로 제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게 사랑의 통로가 되는 상담교사가 되고 싶고요, 그래서 때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아침에 하는 묵상시간을 통해 회복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바라는 건, “아, 나 힘들 때 상담받을 만한 거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해도 되는구나, 그리고 나는 내 상황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런 ‘(문제를 겪고 있는) 내 존재가 수용받을 수 있구나’에 대한 좋은 경험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는 것이 제가 상담교사로서 바라는 점 이에요.


> 상담을 통해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것을) 받을 수 있구나’를 인지하게 된다는 것이 참 중요한 부분인 것 같네요. 요즘에는 그래도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상담’을 자발적으로 받는 분들도 많지만,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거부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선생님 말씀처럼, 그저 나의 존재가 때로는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고 그럴 때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것이고 이런 삶이 수용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어려움이 생겼을 때, 적절한 때를 놓치지 않고, 삶의 위기를, 그 파도를 잘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o 네, 그러면 좋겠어요.


> 선생님께서 15년 전에 처음으로 상담교사 일을 시작하셨는데, 그럼 그때 상담을 받았던 중학생들이 자라서 이제 지금 상담교사가 되고 싶어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이럴 때는 어떤 조언이나 격려의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o 하하. 올해 진짜로 저의 제자가 교생실습을 오게 돼요. 제가 직접 상담한 제자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저는 ‘굉장히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상담교사로서의 업무도 힘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상담이라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려면 시간과 물질적인 비용이 정말 많이 들거든요. 학생들을 위한 심리 검사지 하나를 해석하기 위해서도 별도의 특정 자격증을 따야 하니까요.

얼어붙은 마음에 생명의 물을 흘려보내는 건, 힘든 일이예요

o 또, ‘상담’과 ‘교사’의 일 자체가, 점점 교육기관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은 알려주고 싶어요. 제가 볼 때 요즘은, 특히 부모와 교사 사이의 신뢰 관계가 많이 깨진 것 같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참 어려움이 많죠. 그래서 상담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노파심이 있습니다. 환상은 가지지 말았으면 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은요, 아까 저에게 ‘상담’이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셨잖아요?


> 네, 맞아요.


o 그때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어요. ‘상담’은 제 가슴을 뛰게 한다고요. 저는 아직도요, 상담에 대해 배울 때, 너무너무 가슴이 뛰는 마음이 있거든요. 평생 동안 내가 나를 보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싶고.

또, 상담을 할 때는 나 스스로 (나의 전 존재가) 도구가 되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인생의 주기마다 나의 상황마다 계속 변하고 성찰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하며 성숙할 수 있는 이런 ‘상담’이란 분야에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주는 기쁨과 행복이 있어요.


그리고 상담자는 분명 ‘조력’하는 사람이지만, 또 내담자와의 변화와 성숙 역시 하나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그 만남에서 오는 기쁨이 있어요. 한 사람의 성숙과 성장을 바라보는 것. 때로 긴장관계로 경험하지만, 그 만남 안에서 같이 성장해 가는 것, 우리가 ‘지금 여기 (here and now)’ 만나는 그 자리에서의 기쁨이 있답니다.

얘들아, 사랑한다! 꼭 와라! 언제든!  ⓒ이정희 상담교사

> 그럼, 선생님. 이번에는 상담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꼭 해 주고픈 말이 있으시다면요?


o 네, 아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사랑한다. 꼭 와라. 언제든.” 이 세 마디 말을 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부모님들께는요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을 믿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상담 신청해 놓고 친구랑 화해해 버려서 상담실에 오지 않는 ‘노쇼’가 있을 정도로, 애들은 금방 다시 잘 지내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상황 자체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모가 너무 즉시 개입해 버리면, 아이들에게는 성장의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도 한다는 걸 아셨으면 해요.


> 음, 중요한 포인트네요. 선생님,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참 감사하고요, 늘 상담 (내담자 인터뷰)을 하시다가,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받으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o 뭐랄까, 좀 뿌듯했고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지난 15년을 돌아보니까 그것도 좋은 경험이었고.. 그리고 아직…. 삶을 압축해서 말하긴 어렵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네요.^^


> 저도 선생님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후배들에게 이 길은 정말 힘든 길이라고 말해 주겠지만, 그래도 ‘상담’을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뛴다는 이정희 선생님이 매일의 파도를 헤치며 걸어가는 수용과 성장의 물길을 통해, 우리 학생과 학부모님들에게도 생명의 물이 흘러가기를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끝 -

작가의 이전글 매일 새로운 파도를 타는 상담교사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