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6-펫로스,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개를 사랑했노라, 그러길 참 잘했노라
내가 꼭 찾을게, 그런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을.
-노견일기 작가 old dog 정우열 (인스타그램)
"이쁜이가 우리 집에 온 게 최선이었을까? 다른 집으로 입양되었으면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장례를 마치고서 한동안 엄마는 계속 물어보셨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마음에, 설령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어떻게든 네가 더 이 세상에 존재해 주길 바라는 간절함은 매한가지여서 나도 그 질문이 먹먹하게 가슴을 두드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2016년의 추운 겨울날, 크리스마스를 1주일 앞두고 회사 근처 보호소의 덜컥대는 유리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던 그날의 만남을 떠올리면서 이제는 주인의 온기가 없이 고요히 놓여있는 강아지 쿠션을 바라보는 내내... 이동장에서 꺼내자 기쁨의 꼬리춤을 추며 뱅글뱅글 돌던 녀석의 첫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너: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기로 그렇게 결심한 밤이었어, 그렇지?
나: 한밤중에, 새벽에 혈압이 60 이하로 떨어져서 응급콜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길 반복했지. 전화기를 손에 쥐고 제대로 잠을 못 자는 나날들이 계속되었어. 크리스마스 이브날부터 시작된 구토는 며칠 동안 멈추지 않았고, 먹지 못해서 점점 말라가는 이쁜이를 보며 신정 연휴를, 휴일들을, 주말들을 계속 보내야 했지.
너: 축하해야 할 많은 순간들을 슬픔으로 보내는 게 더 마음이 무거웠겠다.
나: 계속해서 약속되어 있는 기쁨의 시간을, 삶 속의 여유를 빼앗기는 느낌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 재발하지 않았다면, 약이 조금만 들어준다면, 다시 먹을 수만 있다면 이 시간들을 지킬 수 있을 텐데라는 바람과 희망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주르르 흘러 바람에 날려가듯 사라져 버리는 것 같고...
너: 그래도 농담도 하고 그랬다, 우리. 면회하고 나서 이쁜이 방석도 보러 가고.
나: 털 빠지고 우주인 넥카라 한 모습이 꼭 해리포터의 도비 같다고. 아련하면서도 귀엽다고 했지. 그렇게라도 조금 웃어야 우리도 숨 쉴 수 있잖아. 매캐한 연기처럼 엄습하는 두려움 속에서 후~하고 한 번 유머로 숨구멍 틔워 주는 거지.
그리고 이쁜이가 다시 집에 돌아오면 새로운 방석을, 계속 링거를 꼽고 있던 목을 좀 더 편하게 받쳐 놓을 수 있게 미끄럽지 않은 방석으로, 담요로 준비하자고 마트에도 들리고.
너: 그리고 털실도 샀잖아. 마음 가라앉히려고 수세미 뜬다고.
나: 그러니까. 집중해야 할 무언가가 필요해서. 마음을 담아 한코한코 희망을 떠가고 싶어서. 반짝이는 밝은 색으로 한아름 구름 같은 털실들을 사 왔지.
너: 그래... 계속 슬픔 속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돼. 계속해서 슬퍼해야만 하는 것 아니야. 간간이 떠오르는 기쁨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괜찮아. 그렇게 해 주어서 오히려 고마워.
20년간 함께한 반려견 풋코를 떠나보낸 <노견일기> 정우열 작가님의 웹툰 속에서 '이제는 개가 없는 삶'을 산다는 말이 마음에 내려앉았다. 상실. Loss. 그 존재가 없는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떻게 하면 이 상실을 피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반복되는 질문과 함께 제자리를 맴돌았다. 이건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말한 '부정'의 단계야라면서, 이 단계가 넘어가면 나는 조금 숨통이 트일 수 있을까에 대한 또 다른 희망도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그래서 네가 보낸 기억은 제자리 꼬리춤처럼 계속 내게 떠올라 속삭여주고 있었던 걸까. 처음 만난 순간의 기쁨을 기억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