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문제: 안락사의 고뇌

내가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5-펫로스,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by 포도나무
"하나님,... 좀 더 시간을 주셔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하여 주시고"_안수현, <그 청년 바보 의사>-p15

"이쁜아 이쁜아 언니는 절대로 너를 안락사 시키지 않을 거야. 전신마비가 되어도 TV에 나온 쭈동이네처럼 내가 널 돌볼게! 괜찮아 뇌경색이면 어때. 이쁜아..."

꿈 속에서 눈물범벅으로 되뇌이다가 깨어난 새벽녘. 나는 또롱또롱한 눈빛으로 내 품에 가만히 안겨서 언제나처럼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이쁜이에게 말해주었다. '네가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나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혹시 너무 힘들어서 무지개다리 너머로 가고 싶으면 이쁜이가 알려주렴. 나는 잡은 손을 놓지 않을게.'


호전과 악화, 투약과 용량 조절, 스테로이드 리바운드를 반복하던 중에 이제야 조금씩 회복세를 타고 있구나 싶었던 즈음에 사랑하는 강아지에게 찾아온 혈전과 뇌경색 증상. 희망을 품고 자가면역질환 염증 처치를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 전문 병원에서 발견한 2cm 가까운 간문맥단락혈전 앞에서 우리 가족은 청천벽력,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락사에 대한 고려는 그전에도 조금씩 언급되었다. 그때마다 우리 가족은 말했다.

치료를 계속할게요.


나: 그래서, 약속한 거야. 쭈동이처럼 돌봐주겠다고. 할 수만 있으면.

너: 쭈동이 말이구나. 어릴 때의 홍역 후유증으로 사지마비가 되었지만 보호자의 지극정성으로 매일 산책도 하고 나중에는 특수 휠체어로 조금씩 걷기도 해서 감동을 주던 강아지 말이지.

나: 그래, 이쁜이가 낫기만 한다면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해도 내가 어떻게 든 해 줄 거야라면서 마음을 다잡았지만,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이쁜이 모습에 그럼 강아지가 너무 힘든 것 아니냐는 누군가의 이야기, 안락사를 생각한다면 말해 주시라는 병원 측 이야기에 너무 당황스러웠어.

너: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 고통을 줄여 주는 것에 대한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잡고 있는 건 보호자 욕심, 집착 아니냐는 핀잔 섞인 말도 들었을 테고.

나: 우리도 이쁜이가 고통당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지.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하기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기도 하잖아. <그 청년 바보 의사>에도 나온 것처럼 환자와 한 순간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은 가족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강아지는 말로 의사표현을 정확히 할 수 없잖아. 우리는 녀석에게도 계속 기회를 주고 싶었어. 살고 싶은 만큼 살 수 있는 기회.


너: 얼마 전 기사에서 읽었던 아밀로이드증을 앓고 있는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보호자의 이야기가 떠오르네. 수차례에 걸친 수혈과 점점 쌓여가는 치료비로 인한 부담, 완전히 나을 가망은 없는 현실. "그래도 억울이가 살고 싶으면 어떡해!"라며 구조했던 고양이를 품었던 이야기 말이야.

나: 그래,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어. 이쁜이가 살고 싶으면 어떡해!라는 생각. 그래서 기회의 문을 닫을 수는 없었지. 그리고 이쁜이는 정말 병원에서 '기적이에요'라고 할 만큼 처치와 부작용 위험들을 잘 버텨내었어. 녀석은 끝까지 먹어보려고 애썼거든. 리 가족은 쾌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유지하면서 '지금보다 좀 더 오래' 같이 함께 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


너: 안락사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나: 유튜브에서 가망 없이 암 판정을 받은 강아지들에게 마지막으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주거나 놀이를 해 주면서 안락사를 진행하는 보호자들의 눈물 어린 모습도 봤고, 또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수정이도 신부전으로 인한 대사산증이 왔을 때 찾아간 응급실에서 안락사를 권유받았지. 하루 밖에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면서. 그때 집에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고, 고작 하루 밖에 더 못 살 건데 안락사를? 하루의 고통이라도 덜어주기 위한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지. 정답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은 그랬어.


너: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그러니까 보호자로서 가장 힘든 건 뭐였던 것 같아?

나: 왜 사람은... 결말이 정해져 있어도 쉽게 죽음을 논하지 않는데 동물에게는 그 부분이 너무 쉽게 논의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 한 순간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당사자인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이잖아.


상실의 마음을 달래려고 찾았던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에서 낭포성 섬유증을 앓고 있는 두 자매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폐에 쌓여가는 점액질을 잘 뱉어낼 수 있도록 밤새 도닥여주는 시간들과 고통이 존재하는, 남들보다 짧은 평균 수명이어도 계속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왜 사람에 대한 기준과 동물에 대한 기준이 달라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했었던 같아. 동일한 '생명'인데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존재의 '지금, 여기'에서의 죽음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극심한 압박과 부담감, 책임감.

그 결과가 어떠하든 그 선택에 대해 무엇으로 위로를 삼을 수 있을까?

...

끝이 정해져 있는 경주를 한다고 해서 경주를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그것이 생의 경주라면 더욱 그렇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날들이 계속된다.


하지만 1년 간 강아지 치매로 고생하다가 다발성장기부전으로 밤새 신음하던 고모댁의 노견을 안락사로 보내주어야 했던 그날의 아침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한 번이라도 더 가족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고 병원이 아니라 품에서 떠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안락사 권유를 훼훼 뿌리치고 집에 데려온 나의 첫째 강아지 수정이. 마지막으로 그토록 좋아하던 산책을 같이 가자고 리드줄을 흔들어 대었을 때 아파서 낑낑 대면서도 쫑긋쫑긋 세우던 두 귀와 강아지 별로 떠나기 전에 녀석이 품에 안겨 지그시 바라보며 빙긋, 웃어주는 것만 같았던 간에 대해, "괜찮아 이만하면 됐어. 그동안 많이 애썼어"라고 가에 들리는 것 같던 속삭임에 대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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