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3-펫로스,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당신이 울지 않으면 다른 장기가 운다
-헨리 모슬리경
"햇빛도 많이 쬐시고 움직이세요. 그리고 달리기가 꼭 도움이 될 거예요." 진료를 마친 한의사 선생님의 확신에 찬 말이 내게는 실낱같은 희망이 되었다.
이쁜이를 떠나보내고 나서 나는 계속 밥을 잘 먹지 못했다. 가슴이 아픈 것은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지만 속이 꽉 막힌 듯 울렁거리고 좀처럼 소화를 시키지 못해 자꾸 말라갔다. 흰 죽만 먹어서는 도무지 업무를 할 힘이 없어서 고민 끝에 환자 회복을 위해 먹는다는 유동식 드링크를 주문해 끼니에 얹어 챙겨 먹고서야 버텨 낼 수 있었다. 상실은 그렇게나 힘이 드는 일이었다. 마음만이 아니라 몸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너: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한 거야? 가뜩이나 몸이 힘들었을 텐데 무리가 되지는 않았어?
나: 조금씩 달리기를 하면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았어. 슬픔을 덜어내는 데에.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잃었다는 비탄 속에 머물러 있기 보다...애도하며 마음이 상실을 끌어안으려 애쓰는 동안 몸이 지탱해 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어. 마침 함께 달려준 선배가 있어서 용기를 내어 시작할 수 있었지. 믿을 만한 의사 선생님의 조언도 있고.
너: 원래는 작년부터 마라톤을 같이 준비하려던 그 선배 말이지? 결국 이번에 마라톤을 함께 나갔고.
나: 맞아. 선배와 카톡으로 러닝앱 기록도 공유하며 조금씩 뛰었어. 목표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덜컥 마라톤도 신청했고. "일 년 중 하루는 이웃을 위해 뛰자!"는 슬로건, 그리고 '화상환자와 소아장병증 환아'들을 위해 기부하는 대회라는 것도 마치 인연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 이쁜이가 염증성 장질환(IBD)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으니까.
내게는 무언가 목표가 필요했던 것 같아. 다른 말로 하면 희망 같은 것. 다시 몸을 일으킬 희망,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바라는 것을 위해 그래도 노력할 방법이 있다는 희망. 마른 들판에 확 붙어올라 퍼져나가는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던 이쁜이의 병세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던 무력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이렇게 조금씩 달리다 보면 내 건강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램 같은 것.
너: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그때 한창 달리기 책이며 유튜브를 보곤 했었지. 듣고 보니 슬픈 감정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몰입할 게 필요했던 것 같네.
나: 맞아. 마라톤 하는 재활의학과 의사 정세희 교수님의 <길 위의 뇌>를 읽고 철인 3종 경기에 나갔던 진서연 배우의 후기 인터뷰 영상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마라톤 준비를 잘할 수 있을까, 이 달리기가 어떻게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 그러면서 알게 되었어. 내 몸이 나를 대신해 울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너: 당신이 울지 않으면 다른 장기가 운다는 그 얘기 말이지?
나: 응, 맘 같아선 하루 종일 엉엉 울고 싶은데, 그렇게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회사에서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치다가 이쁜이 생각에 울컥할 때 빨개진 눈시울을 비비고 꾹꾹 눌러 담고는 집에 오는 게 다반사니까. 진서연 배우의 인터뷰 중에 달리기를 할 때 숨이 차오르는 것과 울음이 터져 나와 꺽꺽대는 것과 우리 몸은 비슷하게 느낀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지.
실제로 5km 반환점을 돌고 계속 달릴 때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느꼈어. 마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한강의 윤슬 위로 파랗게 퍼져나가는 5월의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숨결 세포 하나하나를 씻어주는 청명한 공기가 상쾌하기 그지없어 나도 모르게 느끼는 행복감과 함께 느끼는 깊은 그리움이, 굴다리에 그려진 강아지 벽화에 마음이 아려오는 안타까움이, 달리면서 내딛는 한 스텝 한 스텝에 뚝뚝 묻어났어. 그 여운이 며칠 동안 이어졌지. 피니시 라인에 들어오니까 주최 측에서 한아름 간식을 안겨줬는데 봉지에 들어있던 소보로빵을 꺼내서 나는 참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어. 무언가를 주저 없이 그렇게 감사하게 먹을 수 있었던 건 꽤 오랜만이었던 것 같아.
"회복은 의사가 처방해 주는 약이 아닌 삶에 있다."는 말을 <길 위의 뇌>에서 읽고 밑줄을 쳐놨었다. 치료받지 못할 경우 사망률 70%에 이르는 헤르페스 뇌염을 겪은 이후 지속적인 재활을 통해 회복해 나가던 환자를 보며 위로받은 정세희 의사 선생님의 억수로 운 좋은 날의 이야기 부분이었다. 나도 그렇게 꾸준히 살아내는 매일이 내게 회복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며 한 걸음씩을 달렸다.
사랑하는 이쁜이의 조약돌처럼 동글동글한 머리를 다시 만져보고 싶다
촉촉하고 하고 맨질맨질한 코에 콩! 하고 코를 맞대는 코뽀뽀를 하고 싶다
이런저런 그리움이 가득 차오를 때면 힘들다는 사실 자체에 너무 무거워하지 않기로 했다
힘이 들어도 괜찮아
힘이 들더라도
조금씩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