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2- 펫로스,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_신약성경 로마서 12장 15절
이쁜이를 떠나보내고 두 달 남짓 지났을 때였다 패딩 없이 길을 걸어 다녀도 춥지 않고 트렌치 코트에 스카프를 흩날리며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찬바람에 볼이 아려서 깨지기 쉬운 유리컵처럼 느껴졌던 매서운 겨울이 끝나고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녹색 순들 사이로 조금씩 따사로운 봄볕이 들었다
'이 봄을 너와 함께 맞이 하고 싶었는데..'
'화단에 코를 박고 막 돋아나기 시작한 풀내음을 맡으며 다시 산책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계절은 여 보란 듯 돌아왔지만
8년간 당연하게 같이 봄을 맞이하던 나의 강아지는 곁에 없다는 사실이 여실한 현실로 내게 다가와 마음을 휘적여 놓았다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모호하게 푸륵푸륵 터지며 끓어오른 죽처럼 애끓는 내 마음에 푹! 하고 손잡이가 긴 나무주걱을 꽃아서 휙휙 마구 휘져어 놓은 듯이.
그때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을 위한 자조모임 소식을 접했다 무지개별을 여행하는 강아지를 모티브로 한 동화책을 함께 읽으며 추억하는 자리라고 했다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스토리에 올라온 그림이 따스해서 책을 읽고 싶었고 이 슬픔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숨통이 트일 것 같아서 신청서를 보냈다
너: 펫로스를 겪은 이들의 자조모임이란 어떤 거였어?
나: 어떤 거였냐고? 마음껏 함께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고... 울어도 되는 자리였지
그래서 힘이 되는 자리
너: 힘들다고 말하면 이해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거네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나: 맞아..! 펫로스로 힘들어하는 나는 가족이었던 소중한 존재를 잃은 것이지만
그 아픔을 이해받지 못할 때가 왕왕 있지
고작 '동물'이 죽었을 뿐인데 유별을 떤다거나 슬픈 건 알겠는데 공감은 안 간다거나 다른 강아지를 데려오면 되지 않느냐거나
그건 '관계'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해ㅡ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서로의 존재에 길들여져 왔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거든
그리고 반려동물이라는 존재 자체와 생활 속에서 단 한 번도 관계를 맺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이런 반응들 때문에 왠지 내가 보편적이지 않은 감정을 느끼고 있나?라는 무안함도 같이 느꼈지
너: 음.. 그래서 더 슬픔이 오래가고 힘들 수 있겠네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이라니 왠지 더 서글프다
나: 내 경우는 특히 연초에 부서변경으로 인해서 새로운 동료들과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다 보니 더더욱 툭 터놓고 말하기도 어려웠어
그전의 동료들은 이쁜이가 입원하고 응급상황에서 수혈할 때부터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좀 더 공감해 줬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
자조모임에서는 뭐랄까
"응 이거 우리 다 아는 맛이야"라는 공감대가 푸근한 이불처럼 나를 안아줬다고나 할까
거기에는 잔잔한 슬픔이
그리고 아기자기한 삽화와 전시된 그림처럼
봄꽃이 터지는 것 같은 웃음이 함께 있었어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때 우리 강아지가, 우리 고양이가 참 이뻤어요 라면서
서로에게 귀 기울여주고 반응해 주는 시간
같이 안타까워해주는 시간들이 나를 위로해 주었지
누군가의 아픔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만큼 큰 위로는 없는 것 같아
당신의 슬픔은 정당해요
슬퍼해도 괜찮아요라고 해주는 것
너: 많이 울었어? 거기에 가서?
나: 글쎄... 생각보다 많이 울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이렇게 이해받을 수 있는 곳에서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집중했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못 잇는 사태(?)를 막으려 나름 다잡은 건 아닐까..?
아! 그건 진짜 좋았는데...
그 누구도 이제 그만 울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돌아가며 이야기하는데 울음이 터지면 휴지는 건네줘도 우는 건 그대로 놔두니까
너: 음... <감정 레스토랑>이라는 책에 보면 주인공 지움이가 그동안 너무 벅차서 애써 부인했던 '슬픔'을 안 느끼려고 애쓰고 꾹꾹 눌러 담기보다 충분히 잘 느끼고 그 다음에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나오잖아. 자조모임이 그걸 도와줬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 결국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이 버팀목이 되어준 셈이야 내 슬픔은 같이 받아주면서 내 존재가 눈물에 쓸려 내려가지는 않도록 잡아준 거야.
한동안 나는 펑펑 울고 싶은데 도무지 울 수가 없었다
존 볼비의 애도 4단계에 나오는 것처럼 슬픔이 극심해서 무너질까봐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마비(무감각) 되고 만 걸까도 생각했다
그러다가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갑자기 목놓아 울고 싶기도, '내 강아지가 죽었다고요!!'라고 외치고 싶기도 했다
내 마음이 상처로 사막같이 쩍쩍 갈라져가서 단비가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눈물 구름이 보이지 않을 때 대신 끌어안고 울어주며 마음을 적셔준 교회 친구들, 자조모임에서 이름도 모르는 채로 처음 만났지만 아픔을 툭 터놓고 들려준 이들 덕분에 나는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슬퍼할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애도의 시간 속에
격랑 하는 슬픔 속에
머물러도 되는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