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1-펫로스,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너무도 큰 슬픔이 내 마음을 돌처럼 딱딱하게 만들어 버렸다_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p15
그날은 꽤 긴 황금연휴라 여행 가는 사람들도 많다는 1월에 찾아온 설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우리 집도 명절 분위기로 고소한 전냄새와 윷놀이, 아니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시리즈물 시청으로 왁자했을 한밤중에 나는 작은 국화꽃 옆에 고요하게 누워있는 녀석을 가만히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3.4kg 몸무게와 덩치가 말티즈 치고는 크다며 이제 노견이 되었으니 슬개골 관리를 위해서라도 다이어트해야 한다며 '우람 강아지'로 별명을 붙였던 이쁜이는 4개월 만에 절반 몸무게인 1.7kg, 수척하게 여위고 작아진 채였다
밖의 겨울 공기처럼 차가워져 버린 녀석의 몸을 조심스레 품에 안자 뜨겁게 끓인 찻물이 잔에 왈칵 넘치듯 꿀렁꿀렁 삐져나오는 흐느낌과 함께 굵게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이쁜이 몸 위로 그리고 이불 위로 툭툭 터져나가는 걸 보았다
두 팔로 녀석을 꼭 끌어안고 있어서 눈물을 닦을 손도 없었다
녀석과 이 땅에서 다시는 함께 호흡할 수 없다는, 다시는 생명으로 반짝이던 그 초롱초롱한 눈을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상실의 무게가 한밤중의 어둠처럼
무겁고 삐죽한 돌덩어리를 가슴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물리적인 아픔으로 심장을 짓눌렀다
너: 많이 아팠지... 많이 힘들었지?
나: 말로 표현할 수 조차 없어... 가슴이 빠개진다라는 표현이 실감이 났거든
명치 부근을 납덩이로 누르는 것 같고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것 같았어
그 통증은 그저 '슬퍼.. 마음이 아파'라는 감정적인 호소나 느낌이 아니고
상당히 실제적인 것이었어
너: 그래 오죽하면 '단장지애'라는 말이 있겠어
옛이야기에 새끼를 빼앗긴 어미 원숭이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새끼가 탄 배를 쫓아오다가 결국 쓰러져 나중에 살펴보니 창자가 다 끊어져 있었다는 실화에서 나온 표현이라잖아
소중한 것을 잃은 안타깝고 절박한 마음이란, 상실의 고통이란 그렇게 힘든 거니까
나: 이쁜이 장례식을 하고 나서 연휴가 지나고 출근을 해서 일하는 데 가슴이 너무나 묵직하고 아픈 거야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말 그대로 물리적인 통증이었고...
왜 고통이란 단어와 통증이라는 단어에
동일하게 '아플 통'자가 쓰이는지 알 것 같아
너: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나: 며칠은 버텨보려 했는데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어... 어떻게 해야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하다가 우선 찾아간 게 한의원이야 우리 동네 20년 차, 내가 학생 때부터 자리를 지켜준 한의원... 터줏대감 같은...? 그러고 보니 뭐랄까 신뢰하고 익숙하고 의지될만한 곳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한 것 같아
안 그래도 이쁜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밤낮없이 기도하며 간호하며 체력이 달릴 때 내가 진료받으러 가기도 했으니까...
결국 그때 말씀드린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아... 저런... 저도 19년 함께 하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 건넜을 때 많이 힘들었는데..' 하시며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이 내겐 보약만큼이나 위로가 되었어
너: 그래.. 맞아 누군가가 같이 아파해주고, 또 고통스러워하는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상실로 인한 슬픔에 잠겨있을 때 참 중요한 것 같아
나: 공감이 슬픔의 무게를 덜어주는 경험이었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슬픔에 황망해하고 괴로워하던 박완서 작가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 속의 글을 읽으며
'또 하루를 살아낼 일이 힘에 겨워 숨이 찼다' '온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라는 구절이
내 몸에도 고스란히 남겨진 감각세포 속
고통의 기억들과 공명하는 걸 느꼈어
나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
나도 '몸소' 겪어 본 일이야 하면서...
이쁜이 병간호를 하던 어느 날의 출근길, 바쁘게 종종걸음 치며 도착한 지하철역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바로 앞 역에서 심폐소생술 CPR을 해야 하는 응급환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열차가 지연된다는 내용이었다
예전 같으면 아, 조금만 빨라서 내가 먼저 떠난 차를 탔더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라거나 이러다 지각할까 조바심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속의 묵직함이 내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건 내 가족, 내 강아지의 생을 위한 바램이 고통하는 다른 이를 위해 가닿는 순간이었다
눈을 감고 멈춰 있는 플랫폼에 서서 간절히 기도했다
환자가 살아나기를, 건강하기를, 응급구조대원들의 처치하는 손길을 도와주시기를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생의 길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