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자연식물식이라고 알아?
영혼의 다이어트 메이트 석이 말했다. 회사 선배가 자연식물식이라는 걸로 두달 동안 5kg를 뺐단다. 매끼를 모두 과일을 먹는 것인데 배부를 때까지 먹을 수 있으며 과일이라 꽤 맛있대서 자기도 해볼까 고민하고 있다며. 솔깃함과 동시에 의심이 들었다. 나의 수많은 다이어트 식에서 탄수는 적이라고 배웠는데, 과일은 미친듯한 당을 갖고 있지 않나? 그리고 단백질은 어떡하지. 단백질 안 먹으면 대사량 낮아지는 것 아닌가?
- 회사선배 엄청 독하긴 하긴 했어. 결혼식 뷔페에서도 과일만 먹더라. 근데 컨디션도 엄청 좋고 자기는 만족한대. 음식 생각도 의외로 많이 안 난다던데.
자연식물식이라. 그렇게까지 효과를 봤다니. 한번 속는 셈 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3일간 과일야채만 먹은 날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설태가 끼지 않고, 아침이 개운했던 기억도 한몫했다. 아침 코로나로 구내식당도 문을 닫아 도시락을 싸다니던 시절이라 큰 어려움도 없었다. 과일만 싸가면 되니까 더 간편하겠다. 석이 알려준 자연식물식 유튜브를 하나씩 구경했다.
진짜 과일만 먹고 어떻게 살지. 영상을 봐도 의심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주로 보던 다이어터 유튜브들을 보며 채소섭취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채소과일로 계속 '버틴'다는 느낌을 받아들이는 데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도 음식을 정말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직 내 안에 짙게 남아있는 다이어트 = 단백질 섭취에 대한 두려움은 결단을 계속해서 미루게 했다.
이때 영상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단백질 섭취로 근육이 생기면 사람들은 헬스장이 아닌 식당에 가있어야 합니다.'
오, 설득 완료. 하지만 음식을 버리는 건 아까우니 시킨 닭가슴살만 다 먹고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일주일이면 소진되니 그동안 자연식물식 유튜브를 좀 더 정독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진짜 아무 과일이나 막 먹어도 되는 것인지, 진짜 과일만 먹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 그래도 맛있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데.
영상에서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열매를 먹는 존재이며,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이 없어지자 사냥을 하고 다른 것들을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들은 고도의 기술이 많들어낸 '과잉영양'을 가진 음식들이라며. 가공된 식품은 음식을 더 많이 먹게 하고 또 계속 먹게 한다는 것이다.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도 결이 같은데, 자연으로부터 인체를 설계한 방식대로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찔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보기로 했다. 나에게 음식이란 아직 생존보다는 사회적 교류와 즐거움의 영역이 더 컸지만 진짜 과일식을 하면 몸이 어떻게 변할지 너무 궁금했다. 간헐적 단식과 더불어 하면 좋기에 아침은 물, 점심은 과일식, 저녁은 현미밥/감자에 샐러드&나물을 주로 먹었다. 마침 여름이라 먹을 수 있는 작물들이 아주 많았다. 깎지 않아도 되는 자두, 복숭아, 바나나 등을 돌려가며 점심에 먹고 저녁에는 후추를 뿌린 감자를 깻잎에 싸 먹기도 했다. 김치라는걸 포기할 순 없었다. 다만 섬유질 섭취를 매우 늘렸고, 모든 양념에 기름을 제한했다. 회식이나 약속이 있으면 다음날은 점심을 굶었다. 몸이 소화능력을 회복하는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7월 한 달간의 자연식물식이 이어졌다. 첫 주에는 배가 고팠다. 생각보다 한 번에 먹히는 과일의 양이 작았던 것이다. 어쩔 때는 30분 만에 배가 꺼지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 동물은 배고픔이 디폴트 값이라는 유튜브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꼬르륵 소리가 너무 심하면 민망하므로.. 씹는 과일식을 점심에 먹고 3-4시쯤 갈아온 과일주스를 한잔 먹는 것으로 방지했다.
2주가 지나니까 몸이 적응되는 것 같았다. 붓기가 매우 많이 빠졌고 활력이 도는 느낌이었다. 여태 내가 알고 있었던 '배부르다'의 느낌이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했다. 평소 느꼈던 배부름은 배가 부른 것이 아니고 더부룩한 것이었음을! 여태까지 내가 먹고 있던 음식들이 나에게 얼마나 안 좋았는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가끔 과자가 먹고 싶어서 한두 개 집어넣으면 너무 달고 짜게 느껴졌다. 감자칩 한 봉지는 앉은자리에서 순삭이었는데 어쩐지 다 비우지 못했다. 약속도 많이 줄었다. 저녁약속으로 일반식을 먹으면 다음날 굶어야 했기 때문이다.
'쌤! 요즘 안색이 왜 이렇게 좋아요?'
자연식물식 한 달 차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몸무게는 3~4kg가 빠져있었다. 몸은 가벼웠고, 뇌는 맑았다. 식사 후 밀려오는 만성적인 졸음도 사라졌다. 살이 빠지니 자연스럽게 근육량도 같이 감소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심하게 빠진 수준도 아니었다. 희열의 순간. 빡세게 한 보람이 있었다.
자연식물식은 생각보다 힘이 들지도 않았다. 시간에 맞추어 매끼 계량된 양의 탄단지를 챙겨먹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동물성 단백질 소화가 더딘 나는 닭가슴살을 꼬박꼬박 챙겨먹는것에 부담을 느끼곤 했는데, 자연식물식은 양껏 먹어도 소화 흡수에 무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제철과일은 너무 맛있었다. 마음껏 맛있게 먹고난 후 느껴지는 기분좋은 배부른 감각과 또 시간이 지나면 느껴지는 배고프다는 감각. 허기와는 달랐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다이어트를 찾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