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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림 Dec 29. 2023

아니, 왜들 그리 크리스마스에 진심이세요?

크리스마스가 주는 행복 자유이용권을 온몸으로 누려야 하는 이유

겨우내 느끼는 내 감정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권태로움』이다.


엄동설한 차가운 바람이,

어딜 가든 회백색 똑같은 풍경이,

뉴스를 틀면 나오는 우울한 가십거리들이,

아무리 꽁꽁 싸매도 옷틈새를 비집고 안으로 들이닥친다.

소위 계절 탄다고 말하는 가을이 너무 짧은 탓인지, 권태에서 비롯된 무력함과 우울감은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이어졌다.


권태로움이란 마치 일상의 불만같은 데에서 올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도 않다. 권태는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에서 오기 때문이다.


비슷한 말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누가 갑자기 이유 없이 직접 구운 쿠키를 나눠준다면 무척 기쁘겠지만, 아무도 나에게 쿠키를 안 준다고 딱히 불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갑자기 병을 얻으면 굉장히 힘들겠지만, 건강하다고 해서 딱히 기쁜 건 아니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딱히 불만족한 건 없는데 행복할만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고물가 시대는 천원의 행복인 붕어빵 3개 중 1개를 앗아 갔다. '노키즈존'이나 '맘충'같은 뉴스 단골 단어들을 보면 아기라는 선물이 세상에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아 부모가 되는 것이 망설여진다. 열심히 일해 연금을 따박따박내도 내가 60살이 될 쯤엔 연금이 고갈된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작은 행복도, 큰 결실도, 미래의 안정감도 무엇하나 쉬이 얻어지지 않았다.


마치 행복에 조건이 걸려 있는 것 같다. 배 곪지 않을 정도로 사는 것도 나름 복이라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자극 없는 일상이다. 몸은 쾌적하지만 마음이 텅 빈 생활의 단조로운 일상이야말로 권태의 시작이 아닐까.


그래서 특히나 겨울같이 우울하고 단조로운 계절에는 선물 같은 일이 필요하다. 크리스마스처럼 말이다. 지금의 크리스마스는 마치 산타클로스가 온세상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만든 기념일처럼 여겨진다. 그렇지만 사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의 탄신일이다. 나처럼 무교인 데다가 산타도 믿지 않는 어른이라면 12월 25일 성탄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람 많은 크리스마스에 딱히 뭘 하진 않는 편이다. 하지만 올해는 하도 권태롭다보니 크리스마스를 챙겨볼까 싶어 12월 24일 레스토랑 예약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내가 알아본 식당은 죄 마감이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최소한 겨울이 시작되는 12월 1일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가까스로 뇨끼가 유명한 모 레스토랑 예약에 성공했지만, 그마저도 쉽지만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들뜨기 시작한다. 12월만 되면 반짝이는 성탄절 장식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주변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를 빌미로 안부를 물어보고, 길거리에서 철 지난 캐럴이 울려 퍼지길 기대하고, 빨간색과 초록색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옷을 입으며 기뻐한다. 크리스마스 홀케이크를 미리 예약하고, 함께 케이크를 먹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어둡고 추운 날씨에 발을 동동 구르며 베이커리 앞 긴 대기줄에 서있는다. 다들 왜 이리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걸까?


아마 다들 나처럼 인생 권태기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는게 아닐까 싶다. 크리스마스는 그저 빌미일 뿐. 더이상 감흥 없는 보통의 날에서 벗어나 딱 하루만큼은 오색빛이 찬란한 거리거리에 성탄빛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다행히 평소엔 야박하기 그지없는 세상도 이날만큼은 특별한 이유없이 그저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만으로 행복 자유이용권을 턱턱 끊어준다. 그 덕분에 우리는 12월이 그렇게 추웠음에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한달 내내 따뜻함을 느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비록 크리스마스보다 새해가 더 가까운 날이지만 나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있다. 즐겁게 살려면 뭐라도 지불해야 할 것만 같은 각박한 현대사회 속에서 온세상 사람들을 하나된 것 같이 행복하게 만드는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이다. 그게 바로 일상이 권태롭고 지루수록, 행복할 이유를 하나 더 늘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12월 내내 누려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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