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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거운물 찬물 Nov 29. 2021

<옥케이, 벨라이스> 12부 화악산

개인의 서사로 우리의 삶을 비추다

한 달이 지나자 나에게도 쫄병이 왔다. 한양대 전자공학과 “권태우”, 생긴 것은 이봉원이었지만 행동은 여성스러웠다. 목소리도 굵었지만, 말투는 ‘여성여성’ 했다.    

  

태우는 특히, 신영준 상병한테 찍혀서 매일 대가리를 박고 맞았다. 그리고 내 동기 장명규가 전입을 왔다.

      

“이병 장명규”     


카랑카랑한 초딩 목소리였다.   

   

야~ 장명규, 넌 오늘부터 매일 레이돔 옆 산에 가서, 악~~ 소리 1시간씩 지르고 와!     


이현욱 병장이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명규는 매일 소리를 질렀지만 타고난 미성?은 바뀌지 않았고, 거의 매일 치약 뚜껑에 대가리를 박았다.


2달이 지나서 ”전광길“이가 신병으로 왔다. ‘디즈니 만화의 포수’를 닮은 딱 벌어진 어깨와 짧은 다리가 인상적이었다. 광길이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매일 대본 청소를 빨리 마치고 대본 옆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도와주십시오. 살아서 여기서 나가게 해 주십시오.”     


광길이와 명규는 거의 매일 레이돔 3층 안테나(레이다 판이 돌아가는 곳)로 끌려갔다. 큰 레이다 판에 매달려 있다가 한 바퀴 “뱅~” 돌아 오면 고참들이 각목으로 내리쳤다. 떨어지면 죽는다. 그래서 더더욱 악착같이 붙어있었다.   

   

3달이 지나자 나도 근무자 쫄병을 받았다. “남석우”, 머슴같이 생겼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아주 잘하는 믿음직함 친구였다. 석우는, 권형규 일병, 신영준 상병한테 근무장 막내라고 매일 터졌다.      


7달 후 “홍승훈”이 전입왔다.

연세대 기계전자학과를 다니다 입대한 놈인데 눈매가 매서웠다. 고참들은 차기 군기 반장으로 승훈이를 점찍었다. 나와도 친해 같이 근무서면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나도 드디어 일병을 달아서 몰래 수다 정돈는 떨 수 있다.          


# 주부     

      

나는 군대에 가면 훈련을 받고 용맹한 군인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군대의 현실은 달랐다. 종일 청소를 하고, 설거지만 했다. 찬 겨울에 찬물로 설거지를 계속해 손등이 갈라져 피가 흐르고 구부릴 수조차 없게 됐다.


휴가 나가서 고무장갑과 니베아 크림을 사 왔지만 장갑 끼고 설거지할 시간은커녕, 크림 바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크림을 바르자마자 또 설거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소용없었다. 그나마 일병이 되고 나서야 잠자기 전에 크림을 바르고 비닐로 싸 놓고 잘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에겐 군대 아버지가 있었다. 522기 H/F 특기 유광렬 상병! 아버지 기수란 딱 1년 차이가 나는 관계를 말한다. 유 상병과 같이 야근하면서 밤새도록 담배를 피우며 이런 저런 얘길 했다. 그 시간은 군대에서 보낸 뜻깊은 시간이었다.    

  

1년의 세월이 흘러 나도 아들 기수 윤상현 이병을 받았다. 꼬리곰탕집 아들이었는데 착한 아이였다. 나도 내가 받은 아버지의 사랑을 아들에게 물려줬다.      


하루는 휴가에서 복귀해 목동 관사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60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와 말씀하셨다.      


“화악산에서 근무하지? 화악산은 음기(陰氣)가 너무 쎈 산이야. 자칫하면 미치거나, 죽을 수도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     


난 그때 그 말씀이 술주정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섬뜩하다. 화악산 음기 + 레이다의 전자파!! 화악산에게 제대한 동료들의 거의 딸만 낳았다. 특히 레이다에서 근무했던 전자 내무실은 딸만 낳았다.      

 

참고 또 참고,
참고 또 참아,
 제대의 그들이 눈앞에 어리네.


2001년 2월 16일 그 날이 왔다. 


그 날은 32년 만에 폭설이 와서 영외자 상번차 도착이 늦어졌다. 대대장님께 제대 신고를 하고 연병장에 줄을 섰다. 우리 동기 4명 중 선임인 나는 마지막 말을 했다. 

     

“1998년 11월 화악산에 와서 받은 충격은 말로 하기 힘들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눈의 꽃으로 물든 이 곳에서, 겨울을 오롯이 세 번 나고 드디어 집에 갑니다."


"(울먹,ㅠㅠ) 사랑하는 전우 여러분 정말로 국방부 시계는 꺼꾸로 매달아 놓아도 갑니다. 몸 건강히 제대하십시오."


"필~~~~~~~~~~~~~~승.”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들은 쫄다구들에게 들려 짬통에 대가리를 박았다. 제야의 종소리를처럼


 

“댕~~~, 댕~~~~,댕~~~~댕~~~~”     



네 번의 타종이 끝나자 전대대원들이 몰려와 헹가레를 쳐주고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지난 30개월이 파노마라처럼 스쳐 갔다. 그 사이 상번차가 왔지만 우리는 걸어서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화악산 날다람쥐'처럼 뛰어서 내려갔다. 1200m 고지 쯤 내려와 뒤를 돌아봤다. 하얀색과 회색으로 그려진 화악산이 내 눈물에 흐려졌다. 


“안녕! 나의 화악산”
 
 “언제가 꼭 다시 올게. 잘 있어 화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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