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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거운물 찬물 Oct 24. 2021

<옥케이, 벨라이스> 11부 군대

개인의 서사로 우리의 삶을 비추다


#1468m 화악산 중봉 레이다기지


1998년 11월 23일 관사 대기실에서 밤새 뜬눈으로 지샌 나의 첫 자대생활이 시작되었다. 큰 트럭 시동소리가 들렸고, 말년 휴가를 다녀오는 병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너 몇살이니?"


"스물 세살입니다"


"나랑 동갑이네? 내가 너였으면 자살한다"


어느덧 영외자(간부)들이 속속 도착했다. 나는 얇은 휴가복에 단화(구두)를 신어서 더욱 추었다. 트럭 뒷칸에 오르자 황금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출발하듯이 트럭이 힘차게 움직였다.


해발500m에서 귀가 멍해졌다. 800m쯤 오르자 양수장 관리병이 로빈슨크로즈처럼 수염을 기르고 경례를 했다. 모든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굵은 체인을 트럭 바퀴에 설치했다. 난 손이 너무 시려웠으나 열심히 체인을 달았다. 1200m 양수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출발한지 1시간 20분이 지났고 새하얀 이글루같은 초소에서 위병(헌병)이 나와 우리 차를 세웠다.


"필승! 바리게이트 열겠습니다"


차에서 내려 본 첫 풍경은 그냥 "하얀색"이었다. 삐적 마른 상병이 내 더블백을 받아줬다.


"각오해라. 여기는 니가 듣던 군대가 아니다"


대대장께 전입신고를 하고 주임 원사가 부대를 구경시켜 줬다.


"집에 전화해 '아이젠'을 보내달라고 해라. 여기는 온통 눈, 얼음이라서 넘어지면 큰일난다"


그렇게 중요한 장비는 보금이 나와야 하지 않나?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부대소개를 마치고 신병 내무실에서 대기했다. 똑똑 창문을 두드려 열었더니 노란딱지 고참이 한마디 했다. 


"한번만 가르쳐 준다. 명심해! 개인 신상명세서를 내일까지 제출해. 글씨 포인트 8, 빽빽히 다써. 한번 가르쳐줬다. 각오해"


열심히 종이를 채웠고 다음날 아침 다행히 통과됐다. 식사 시간이 되자 고참이 날 부르러 왔다.


"앞으로 너 혼자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 반찬도, 식판도 모두 내가 줄테니 절대 질문을 하지마라. 자 어서 2분안에 먹어!"


자대에 들어서자 왕고참들이 깔깔이를 입고 깔깔대고 있었다. 나는 침상 끝에 걸터앉아 각 잡고 있었다.


"어이 신병 너 애인있냐? 사진 보여줘봐"


고참들이 나가고 일병 이하 고참들만 남자, 김 이병이 내게 말을 했다.


"너 군대 구타가 없어진 줄 알지? 천만에. 여기는 구타가 묵인되는 곳이다"


여기는 사람사는 곳이 못되는 구나
레이다기지가 가족같은 곳이라는 
훈련소 교관의 말은 거짓말이었네



저녁 식사 시간이 됐다.

김 이병이 나를 식당에 데려갔다. 식당 입구 앞에서 크고 검은 개 2마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조용히 나를 따라와. 혼자 행동하지 말고"


"예! 이병 정우진! 알겠습니다!"


"목소리 낮춰 개새끼야!"


"예, 알겠습니다"


식당 문을 열자 왼쪽에 모자 놓는 곳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모자를 벗어 올려놓았다.


"야 신병. (속삭이며) 누가 너보고 모자 벗으래?"


"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군생활 끝나냐?"


"....."



김이병은 식판을 건네주었다.


"반찬 남기면 죽는다"


"예, 알겠습니다"


짬밥을 받아들고 식탁에 앉았다.


"빠른 속도로 다 처먹어"

"예, 알겠습니다"


식사 후 고참과 함께 레이돔(레이다기지)으로 올랐다. 사방은 온통 하얀색이었고 계단은 얼음 그 자체였다. 레이돔에 도착하니 뚱뚱하고 짤막한 고참이 깔깔이만 입고 싸리빗으로 계단을 쓸고 있었다.


"필승! 상번했습니다"


김 이병이 소리쳤다.

그 고참은 쏜살같이 달려와 김 이병에서 태권도 날라차기를 했다. 실제로 때리진 않았다. 장난이었다. 그 고참은 임 병장으로 H대 전자공학과를 다녔으며 쫄병들에게 잘해주는 고참이었다.


레이돔 안으로 들어가자 권 이병이 열심히 바닥을 걸레로 닦고 있었다. 빙글빙글 사선형는 계단이 있었는데 서 상병이 내려오더니 김 이병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가까이 오라고 했다. 김 이병은 후딱 계단을 올라갔는데 서 상병의 옆차기를 맞아 데구르르 굴러 떨어졌다.


"야 이 십새끼야, 2분 늦었잖아! 똑바로 해. 개새끼야"


"넵 알겠습니다"



#홀로서기


자대 생활 이틀째 날이 밝았다.

새벽 4시 30분 고참이 나를 깨웠다. 먼저 내무실 커텐을 치고 마실 물을 받아 놓고 비누를 정리하고 딸딸이(슬리퍼)를 일자로 맞추고 내무실에 배치된 스텐컵 4개를 찾아서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 스텐컵은 보통 BX, 휴게실, 세면장 등에서 발견되는데 새벽에는 너무 어두워 찾기가 어려웠다.


6시가 되면 막내 고참부터 차례대로 깨운다.


"ㄱ이병님 기상하실 시간입니다."

"ㄴ일병님 기상하실 시간입니다."

"ㄷ상병님 점호 받으실 시간입니다."

"ㄹ병장님 기상하실 시간입니다."

"ㅁ코드원님(왕고참), 6시 29분입니다."


당연히 왕고참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앞에 모든 내무반원이 손을 모으고 사열해 있다. 야외점호라도 있는 날엔 졸병들이 옷을 입혀서 들쳐업고 운동장으로 그를 나른다. 한마디로 내무실의 왕인 셈이다.


점호를 마치고 헐레벌떡 대본으로 뛰어간다. 장판 바닥의 워커 자국을 마대걸레로 지우고 대대장님 차와 우유를 식당에 가서 받아오고 책상과 쇼파를 정리한다. 시설반, 관리관에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또 다시 뛰어서 식당에 들러 우유 한 팩을 낚아채고 레이돔 계단을 뛰어오른다. 그 계단은 30개쯤 되는데 중간쯤에 창고가 있다. 그 창고 뒤에서 몰래 우유를 마신다.


"버텨야 한다"


최소한 밥을 주니 살아야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니 눈물이 났다. 그런데 울 시간도 없다. 레이돔 청소를 제 시간에 못하면 맞는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교환대에 들어서자 이 병장이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여기 나온 전화번호 다 외워라. 내일까지다."


"예! 알겠습니다"


"남들 보는 앞에서 외우면 죽는다. 몰래 혼자서 화장실 가서 외워."


"예! 알겠습니다."


나는 틈틈히 화장실에 가서 외웠다. 그러나 얼굴도 모르고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장소와 근무자, 근무자의 집 전화번호는 잘 외워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바빠서 외울 시간도 없었다. 권 이병이 팁을 알려줬다.


"점호가 끝나고 1~2시간이 지난 후 고참들이 자면 몰래 화장지를 끊고 가져가서 화장실에서 외워라"


화장실은 보르쿠 벽돌로 만들어져서 화악산의 매서운 칼바람이 벽에서 새어 나왔다. 동기 명규가 몰래 챙겨준 다이제스티브 과자와 꼬깔콘을 주머니에 같이 챙겨갔다. 너무 배가 고파 과자 2봉지를 물 한모금 없이 쑤셔 넣으니 입천장이 다까졌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군가의 음과 영외자들의 집 전화번호는 아무리해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왜냐면 군가는 아직 들어보지도 못했고 영의자들의 얼굴도 모르는데 목소리만으로 그 사람 집전화번호를 외우는건 불가능했다.


전화가 온다. 

"따르릉 따르르릉~"


"이도령 통신보안"


"우리집~ 뚝! 뚜뚜뚜뚜..."


고참 말한다. 

"누구냐?"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군생활 끝나냐? 퍽!!!"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집'을 외치던 사람은 시설반 중사였다.


031-827-0000 쌍놈씨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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