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안녕하십니까, 우리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여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까지 운행할 예정입니다. 좌석 벨트를 착용해 주시고, 좌석 등받이와 테이블은 원위치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비행기의 엔진소리가 들리고 귓속이 먹먹해진다. 나는 발 밑으로 작아져 가는 건물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는다. 아… 이제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리는 것이다.
아직은 어린 여자학생인 나를 보고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어머, 학생 혼자 가요?”
나는 옆에 손님이 나에게 말을 걸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흠칫 놀라며 대답한다.
“아, 네… 공부하러 가요.”
“아이고~ 어린 친구가 고생이 많네~”
나는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이 더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기에 적당히 대화를 얼버무린다.
비행기 내부가 어두워지고 졸음이 쏟아질 때쯤, 내부의 불이 켜지고 승무원들이 분주하게 준비하더니 어느새 첫 번째 식사가 나온다. 내 앞줄에서 승무원들이 비빔밥과 소고기 요리 중 고르라 한다. 나는 메뉴를 미리 듣고 혼자서 결정을 내려본다. 음… 그래도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니까… 비빔밥을 먹어야겠다.
“손님,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아, 저는 비빔밥으로 주세요…”
“음료는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어… 파인애플 주스로 주세요”
여럿 나물들과 밥,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모든 재료들을 뒤섞는다. 약간 퍽퍽한 듯해서 된장국도 몇 숟갈 떠먹는다. 밥을 깨작깨작 먹고 과일과 간식으로 입가심을 한다. 밥을 먹고 노랫소리에 머리를 비우고 새로운 시작의 두려움을 잠시 잊어버리고 눈을 붙인다.
이 15시간 동안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두렵고 설레는 심장의 떨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잔잔하게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마음속 아쉬움을 떨쳐 내리라 다짐한다.
잠을 자고 좋아하는 노래도 듣고 마지막 간식까지 먹으니 어느새 15시간이라는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었다. 덜컹거리며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어 육지에 내려앉자, 머릿속에서 감정들이 서로 부딪혀 요동친다. 이 두려움과 설렘이 마음속에 뒤엉켜, 실뭉치가 마음속 깊이 내려앉았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발걸음을 옮겨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대로 이끌려서 입국심사를 하러 온다. 시차 때문인지 아직도 비몽사몽 한 정신을 붙들고 줄에 선다. 아직은 낯선 영어로 대화하는 사람들과 여러 다른 언어들도 섞여서 내 정신을 쏙 빼놓는다. 낯선 언어들, 밝은 불빛,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리가 내 몸과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아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입국심사의 후기들은 나의 정신을 조여 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흩어져가는 정신을 붙잡고 두 손에는 여권과 투명파일에 넣어놓은 각종 서류들을 꼭 쥔 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3번으로 가세요-!!”
공항 직원들이 외치고 부르는 것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인다. 아… 어느새 내 앞에 사람도 떠나가고 내 발걸음은 입국심사관 앞에 섰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입이 닳도록 연습했던 영어 문장을 내뱉는다.
“헤, 헬로…”
나는 심사관에게 나의 심장 소리가 들릴까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입국 심사관은 나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채 여권을 무심히 받아 들고 내 얼굴을 짧게 보더니 간단한 질문만 한 채 나를 통과시켰다. 휴, 생각보다 간단해서 다행이다…
산을 넘었나 싶었는데 또 다른 산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제야 숨을 돌리나 했는데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짐만 찾으면 된다. 전광판에 나와있는 수화물 번호를 찾아 그쪽으로 가니, 짐이 막 나오기 시작했는지 수화물 벨트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는 겨우 벨트가 보이는 곳에 서서 하염없이 내 캐리어만 나오길 기다린다.
하나, 둘 사람들이 본인들의 수화물을 찾아 떠나는데 내 짐만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시차 때문에 몸도 찌뿌둥하고 정신도 혼란스럽고 배도 고파서 그런지 컨디션이 꽝인데 내 짐만 나오질 않으니 눈앞이 핑 도는 기분이었다. 점점 체념해갈 때쯤, 어! 드디어 내 수화물이 벨트를 타고 내 쪽으로 오기 시작한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벨트 앞으로 다가가 무거운 캐리어를 두 손으로 끙끙대며 들어 올렸다. 후… 벌써부터 체력이 너무 달린다. 그래도 이제 모든 준비는 마쳤으니 이 공항에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이제야 잊고 있던 핸드폰을 꺼내어 가족에게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남긴 뒤 나를 데려다줄 가디언에게 연락을 한다.
_저 이제 짐 다 찾고 나왔습니다!
_어, 그래 지한아 38번 기둥 옆에 차 주차 해 놓았으니 그쪽으로 오면 돼
_네 알겠습니다!
내 몸만 한 캐리어 두 개를 이끌고 밖으로 나오니 초겨울이라 느껴지는 겨울 냄새와 차가운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아, 드디어 그래도 도착이구나… 나는 가디언이 기다리실까, 겨울내음을 다 만끽하기도 전에 얼른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