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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ourney Apr 08. 2021

모방할 수 없는 편안함, 페라가모

명품 신발 중에서 인체구조학적인 요소를 가미한 장인정신이 깃들어있는 슈즈,  가장 편안하게 만들어진 신발이 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페라가모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것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디자인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그 편안함은 모방할 수 없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오드리 헵번, 1954년


페라가모는 당대 유명한 여배우들과 셀럽들의 신발을 책임졌다. 패션의 아이콘 중 하나인 오드리 헵번은 페라가모의 슈즈를 사랑했다. 그녀는 가녀린 몸과는 다르게 큰 발의 소유자였다. 큰 발에 어울리는 슈즈를 찾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고민을 해결해준 사람은 페라가모였다.

그녀는 본인이 출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1955)', '사브리나(1956)' 등에서 페라가모의 플랫슈즈를 신고 등장했다. 발이 큰 그녀에게 페라가모의 신발은 구세주와 같았다.


페라가모 '오드리 헵번 슈즈' <출처: 페라가모>


오드리 헵번을 위한 굽이 낮은 플랫 슈즈뿐만 아니라, 마릴린 먼로를 위한 힐도 만들었다. 섹시한 이미지의 마릴린 먼로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발이 편한 슈즈였다. 마릴린 먼로도 오드리 헵번과 더불어 당대 패션의 트렌드를 대표하는 패션의 아이콘이었다. 유명 여배우들이 영화에서 페라가모의 슈즈를 신고 등장하면서 페라가모는 명품 신발로서의 명성이 높아졌다.


마릴린 먼로 '7년 만의 외출', 1957년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이탈리아 보니토에서 14남매 중 11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그는 신을 신발이 없던 여자 형제를 위해 신발을 직접 만들어줬다. 버려지는 가죽을 구해 와서 신발을 제작한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당시 9살이었다. 본인이 신발을 만든 경험을 계기로 구두가게에서 구두 만드는 법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1년간 열심히 일하다가 집 한켠에 자신이 만든 신발을 팔았는데 동네에서 인기를 얻었다.


 1914년 11살이 된 그는 형들을 따라 미국 동부로 건너가 신발공장에서 일하다가, 1920년 페라가모 형제들은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서  작은 신발가게를 열었고 구두를 수선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영화사에 신발을 납품하게 되면서 가게는 발전했다. 영화의 중심이 할리우드로 옮겨 가자 페라가모도 할리우드로 가게를 옮겼다.


할리우드로 이전하면서 페라가모는 발이 편한 슈즈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고객들의 발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낮에는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UCLA 대학에서 해부학을 공부했다. 해부학의 원리를 신발에 적용하여 무게중심을 받는 신발 중앙에 철심을 박아서 체중을 지탱하게 만들었다. 발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면서 발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 편안한 슈즈를 개발한 것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


1927년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와 피렌체에 본인의 이름을 건 첫 매장을 오픈했다. 1920년대에 구찌의 창업주인 구찌오 구찌도 피렌체에서 가방 가게를 열었고, 페라가모도 피렌체에서 신발 가게를 시작하면서 구찌와 페라가모는 이탈리아의 대표 명품 브랜드로 성장했다. 2차 세계대전 등으로 물자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건 페라가모도 마찬가지였다. 구찌는 소가죽 대신 돼지가죽과 일본산 대나무로 뱀부 백을 만들었다면, 페라가모는 가죽 대신 와인 코르크로 슈즈를 만들었다. 신발 역사상 최초로 1938년 코르크를 사용한 웨지 힐을 세상에 내놓았다.


페라가모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 코르크 웨지힐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신발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어색하지 않다. 와인을 막는데 쓰였던 코르크를 신발을 만드는 데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놀랍고 대단하다. 지금도 코르크로 만든 웨지힐 슈즈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코르크는 푹신하기 때문에 굽이 높아도 발이 편안한 것이 특징이다. 페라가모는 독특한 재료를 이용한 슈즈를 만들어내면서 실험정신을 보여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에 매장을 오픈하기 시작했다.


페라가모는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의 슈즈를 제작하면서 명성이 더 높아졌고, 1958년에는 가방 잠금장치를 '간치니(이탈리아어로, 자물쇠)'로 디자인하면서 페라가모의 아이콘을 만들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디올의 레이디 디올 백도 즐겨 들었지만, 페라가모의 레이디-D백도 애용했다. 레이디-D백은 말발굽 모양의 간치니 장식이 특징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즐겨 들었던, '레이디-D'백


간치니는 말발굽 모양으로 페라가모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동일하게 피렌체에서 시작한 구찌 브랜드는 말재갈에서 영감을 받아 홀스 빗 장식을 사용하고, 페라가모는 말발굽 모양의 간치니를 다양한 제품에 넣어 사용하고 있다. 슈즈나 벨트 등 다양한 종류에 간치니 장식이 많이 쓰인다.


간치니를 사용한 남성 슈즈 <출처: 페라가모>


많은 작품 남긴 페라가모는 1960년 세상을 떠났고, 아내와 딸들이 가업을 이어받았다. 프라다의 창업주 마리오 프라다도 그의 딸에게 사업을 물려주었고, 마리오 프라다의 외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와 남편이 함께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프라다와 페라가모는 딸들이 창업주의 뜻을 지키며 브랜드를 발전시킨 경우다.


살바치오 페레가모의 첫째 딸, 피암마 페라가모는 16살 때부터 페라가모의 경영 수업을 받은 엘리트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페라가모의 간치니를 남겼다면, 피암마 페라가모는 '바라' 장식을 만들었다. 리본 모양의 바라 장식은 출시했을 때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아직까지도 프라다의 스테디셀러 라인이다. 다채로운 컬러와 바라 장식은 소유하고 싶은 소비욕을 자극한다.


바라 장식의 페라가모 여성슈즈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10살도 안된 나이에 처음으로 신발을 만들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14남매 중 11번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본인의 재능을 살렸고 브랜드까지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게는 1927년 피렌체에 처음으로 열어 현재까지 9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명품 슈즈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낮에는 장사를 하고 밤에는 해부학을 공부하며 편안한 신발을 만든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페라가모는 가족경영을 지키고 있는 명품이다.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하긴 했지만 여전히 가족지분을 유지하고 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장녀인 피암마 페라가모가 2011년 세상을 떠나고, 그녀의 자녀들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매출이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신발 천재인 창업주의 정신을 유지한다면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디자인은 따라 할 수 있어도 편안함은 모방할 수 없다고 했다. 인체해부학을 접목한 세계 최초의 슈즈. 코르크로 웨지 힐을 만든 창의성. 우리가 걸어 다니는 한 페라가모의 슈즈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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