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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혜 Dec 06. 2023

Day 9 (1/2) 11월의 크리스마스-낮

오스트리아 빈의 크리스마스 마켓과 훈데르트바서 빌리지

오늘은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국가 이동을 하는 날. 체코 브르노에서 기차 1시간을 타면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도착한다. 유럽 여행의 장점 중 하나가 나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마치 국내 여행하는 것처럼 이웃 나라 가는 게 쉽다는 것. 기차를 탈 때마다 캐리어 보관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다.(유럽 기차에서는 가끔 캐리어 도난이 발생한다.) 그런데 빈으로 가는 체코 기차를 타보니 내 자리가 짐 보관함 바로 옆자리였다! 알고 예약한 게 아니었는데 요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맞춰주시는 하나님 최고야. 심지어 평일이라 그런지 좌석도 널널해서 내 옆 자리도 비어 있어서 빈까지 편안하게 갔다.

지인이 챙겨주신 배도라지 스틱 먹고 오늘도 화이팅 / 좌 캐리어 우 백팩을 놓고 편안한 여행
빈 중앙역

빈 중앙역에 내려서 대중교통 티켓을 모바일로 사느라 스마트폰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철도청 남자 직원 분이(유니폼 입고 계셔서 추측) 너 혹시 길을 잃었냐며 도움이 필요한 지 물으셨다 ^^; 처음에는 무뚝뚝하지만 요청하면 부드러워지는 체코 사람들과는 결이 다른 친절함이네. 괜찮다고 나 티켓 사고 있었다고 하니까 빈에서는 얼마나 머무는지, 크리스마스 마켓 꼭 가보라고 하셨다. 아니 여기는 슈퍼 외향성을 지닌 사람들의 나라인가. 하지만 낯선 도시에 떨어진 여행자에게 이런 친절 (친절을 가장한 소매치기 제외)은 긴장되었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이 스몰토크 덕분에 단숨에 오스트리아가 좋아졌다. 기쁜 마음 안고 역 바로 앞에 서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보자!

반달모양 정류장 표지판과 버스 내부

8박 9일동안 호스텔에서 단체 숙소를 이용하다가 드디어 단독으로 사용하는 숙소. LEHRERHAUS 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독일어로 '선생님의 집' 이라는 뜻이란다. 주인이 선생님이셨나보다. 오스트리아에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웬지 '선생님의 집'에 묵는다니 친근한 느낌이 든다. 여기는 조식이 따로 나오지는 않고 대신 수저와 그릇, 전자레인지와 포트를 이용할 수 있는 셀프 시스템이다. 리셉션에 짐을 맡겨두고 이 색다른 도시를 구경하러 가야지.

오스트리아 숙소 LEHRERHAUS
어딘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선생님의 집 답게 칠판도 있고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흑백 사진들
선생님 댁에서 2박3일 신세 지겠습니다.


호텔 밖을 나서니 유기농 농산물 시장이 열렸다. 한 두개씩 팔지는 않을 것 같아서 구경만 열심히 했다.

이렇게 감자 종류가 많다니
꽈리 ?
내 얼굴보다 더 큰 빵
하늘색 모자 쓰고 나란히 앉아계신 두 분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사진을 찍어버렸습니다
국회의사당


오스트리아 빈은 라트하우스 광장이라는 곳에서 11월부터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었다. 11월에 가니까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도 못하겠구나 했는데, 내가 빈 도착하기 딱 하루 전 날부터 일부 지역에서 마켓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대가 되었다. 낮이라서 약간 한산하긴 했는데, 정말 눈이 돌아간다는 표현밖에 생각 안 날정도로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격은 안 예쁜 게 함정인 데다가 여리여리한 이것들을 내가 남은 여행지 내내 안전하게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카메라에만 담았다.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크리스마스 마켓
이건 비누 같다.
호두까기 인형들
마켓 중앙에 위치한  마굿간 속 아기 예수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뜨겁게 데운 와인을 판다. 집집마다 조금씩 레서피가 다른데 계피나 정향, 여러가지를 넣고 같이 끓여서 감기약으로도 쓰인단다. 프랑스에서는 뱅쇼라고 부르고, 여기서는 뮬드와인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건 데운 사과 주스. 애플티 맛이 나고 몸이 훈훈해졌다. 저 머그컵은 지역 마켓마다 다 다른 디자인을 자랑하는데 구입할 때 컵 값(6천원 정도)까지 포함해서 사고, 먹고 나서 컵을 돌려주면 5유로를 거슬러 준다.

너무 추워서 하얗게 질린 애와 데운 사과 주스

마켓에서 슈니첼도 사 먹었다. 오스트리아 돈까스라고 생각하면 되는 고기 튀김을 야채와 함께 빵에 끼워준다. 오늘의 첫 끼 ㅠ_ㅠ 물가 비싼 오스트리아에서 외식할 식당 고르기가 어려웠는데 마켓이 있어서 다행. 그렇다고 마켓이 싼 건 아니다. ㅎㅎ

세그웨이 동호회인가

마켓에서 요기를 했으니 이제 다른 곳도 가볼까. 날씨가 많이 춥고 체력이 조금 떨어진 게 느껴져서 너무 규모가 큰 관광지 말고 만만한 곳을 찾다가 훈데르트 바서 빌리지 라는, 건축가 훈데르트 바서가 지은 공동 주택에 가봤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임대아파트? 인데 디자인이 파격적이라서 관광지가 되어버린 곳이다. 곡선을 선호하고 심지어 주택 앞 길바닥조차 봉긋하게 만들어놔서 구경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거주하는 사람들은 좀 싫을 수도 있겠군.

예쁜 분수대 안에는 낙엽

빌리지 맞은 편에 있는 기념품 센터도 예뻐서 들어갔다. 실내에 들어가니 좀 살 거 같다. 어찌나 춥던지.. 훈데르트 바서가 창문 권리 라는 걸 주장해서 법이 바뀌었다고 했다. 거주자는 자기 집 창문에서 자신의 팔이 닿는 곳까지를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권리란다. ㅎㅎ 바서의 미술 작품이 있는 조그마한 갤러리도 있었다.

훈데르트 바서가 주장한 '창문 권리'
훈데르트 바서는 이렇게 생기셨네요.

한 군데는 더 가보자 싶어서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나왔던 초록 다리로. 영화 속에서 남녀 주인공은 우연히 유럽 기차 안에서 만나 즉흥적으로 함께 내리고 해가 뜨기 전까지 여행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빠져든다. 대학생 때 봤었나..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와 봤는데 너무 추워서 사진만 찍고 마트로 도망갔다.

오늘은 일용할 양식을 위한 장을 봐야 한다. 내가 도착한 날이 토요일인데, 오스트리아는 일요일에 거의 모든 마트 및 가게와 식당이 문을 닫기 때문이다. 사과가 매우 저렴했지만 대용량으로만 팔아서 살 수가 없고, 햇반이 있으니까 같이 먹을 수 있는 소고기 스프와 요거트, 디저트를 샀다.  

저렴한 사과, 예쁜 순무, 그 밑에 파도 있구나
소포장 과일을 사고
오렌지를 그 자리에서 바로 즙을 짜서 주스로 만들어주는 기계. 저 빈 통을 대면 주스가 나와요.
오렌지 치즈 케이크
오스트리아 특산품 살구맛 요거트와 밤맛 요거트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수줍게 서 있는 미니 도서관을 만났다. 이건 책을 무료 나눔 하는 곳일까, 빌려주는 곳일까? 신기해.

(분량이 많아서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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