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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Jan 17. 2020

하필이면 그런 날

[픽션에세이] 내얘기듣고있나요

뜨끈한 우동 국물이나 들이키면,

허한 속이 좀 달래질 것도 같은데-


거기다 소주나 한 잔 곁들이면,

최소한, 울고 싶진 않을 것도 같은데-


>>


그런데 지금 그의 주머니엔 설상가상,

천 원짜리 두 장 뿐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포장마차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


널 믿을 수 없으니 헤어져야겠다고,

약 두 시간 전에, 여자친구는 단호하게 이별을 선언했다.


"웃기시네-"

헤어지잔 얘길 듣고, 그가 제일 먼저 했던 말./


그거 보라고, 넌 이렇게 진지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지금 내 말을 장난으로 알아듣는 거냐고...

그렇게 말하는 여자친구의 표정은, 

정말로 정이 다 떨어진 것 같았다.


헤어진다, 못 헤어진다... 한참 말싸움을 해서 그런가,

아직도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거 같아서,

더도 말고 딱 소주 반명만, 마시면 좋을 것 같았다.


보내주네 못 보내주네... 

길에서도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지긋지긋하다고 뛰어 도망가는 여자친구를 쫓아서

전력 질주까지 하고 났더니,

뱃속까지 허해서, 뜨끈한 우동국물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그의 주머니엔, 단 돈 이 천 원...


>>

에라 모르겠다... 일단 포장마차로 들어가서

우동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그리곤 후루룩- 우동을 건져먹으면서,

믿을만한 친구 녀석에게 구조 요청을 보낸다.


<아무 것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반포 포장마차로 와라. 술값 들고>


문자를 보낸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친구 녀석에게선 답이 없다.

우동은 벌써 다 해치웠고, 술병도 반이나 비웠는데...

주머니에 든 꼬깃한 천원 두 장이 불안하다.


그래도 뱃속을 좀 채우고 나니,

분하고 억울한 마음은 좀 가라앉은 것도 같다.

대신, 주책없이 자꾸 울고 싶어지긴 했다.


괜히, 나타나지 않는 친구 녀석에게만...

그래, 사랑 복 없는 놈 친구 복은 있겠냐, 혼자서 푸념을 해댔다.


집엔 가야겠고, 포장마차 이모에게 불쌍한 척이나 해 볼 양으로 

부비적거리며 일어서는데, 후다닥- 포장마차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녀석...


"어우, 미안하다.. 일이 밀려서. 술은 벌써 다 했냐? 여기 얼마에요?"


하던 일 부랴부랴 마쳐놓고, 술값 계산하러 왔다는 녀석 말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헤어진 게 슬픈 건지, 술값도 없는 내 신세가 슬픈 건지

늦게 온 친구가 미워선지, 날 버린 여자가 미워선지...

주책맞게 쏟아지는 눈물콧물을, 손등으로 쓱쓱, 자꾸 닦아낸다.


>>


아무 것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헤어지자는 말이 슬펐던 그 날,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술값 내 주는 친구 덕에,

그래도 조금, 괜찮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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