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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코밀 Jan 10. 2024

불안과 염려의 한 끗 차이

 REBT 이론에서

심리상담 대학원 1학차에서는 상담이론, 이상심리, 발달이론, 그리고 심리검사에 대한 과목을 배웠습니다. 저의 매거진 연재를 통해 나만의 심리상담이론 해석과 대학원 적응기를 쓰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번 내용은 최초의 인지치료인 합리적 정서행동 치료(REBT, 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에 대한 것입니다. 이론의 전부가 아니라, 제가 관심 있게 생각한 부분에 대한 내용입니다. 비전공자분께는 여러울 수도 있지만 저도 지식이 얇아서 무리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합리적 정서행동 치료에서 가장 관심을 두게 된 부분은 바로 정서 emotion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이론의 이름 그대로 인간의 인지와 정서, 행동이 서로 중요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인지가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가져온다는 것이 기본 가정이다.


REBT는 우리의 비합리적인 신념(인지)이 변해야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국 생각이 변해야 나의 감정과 행동에도 변화가 오는 것이다. 감정은 찰나적이고 순간적이다. 하지만 저 마음의 깊은 곳에 내 분노를 건드리는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인해 그 감정이 발현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 신념을 유연하게 교정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감정도 훨씬 더 조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이론의 창시자인 앨버트 엘리스는 인간의 심리장애는 정서 장애로부터 온다고 한다. 정서장애를 이해하려면 우선 합리적 정서행동 치료의 인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선천적인 두 가지 경향성이 있다. 즉 인간은 스스로 고통을 증폭시킬 만큼 비합리적이며, 그 비합리성은 쉽게 재발되고 쉽게 대체된다고 하였다. 동시에 인간은 그 비합리성을 인식하고 합리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아동기에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비합리적인 신념에 대해 주입받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비합리적인 독단이나 근거 없는 믿음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고 보고 있다. 당신은 가끔은 근거 없는 비합리적인 믿음을 자가 생산하는 자신을 느껴본 적이 없는지. 인간은 자기 암시와 반복의 과정을 통해 자기 패배적 신념을 강화하고 마치 비합리적인 신념이 전부이고 유용한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더욱 강화된다고 보고 있다. 앞서 자기자비에 대한 글에서도 썼지만, 우리는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가끔 자기 비난의 끝없는 수렁으로 자신을 내몰기도 한다.


엘리스에 따르면 정서적으로 힘든 이유는(정서 장애의 원인은) 주로 비난 때문이라고 하였다. 엘리스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 타인, 세상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온전히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비난을 받게 된다면 우리 마음엔 부정적인 정서가 일어난다. 엘리스의 이론에서는 부정정서를 건강한 부정정서와 건강하지 못한 부정정서로 구분하고 있다. 건강하지 못한 부정정서는 대게 불안, 우울, 죄책감, 수치심, 상처, 건강하지 못한 분노, 질투, 시기심 등이 있다. 반면에 건강한 부정정서는 염려, 슬픔, 후회, 실망, 비애, 건강한 분노, 질투, 시기심 등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심리적 장애를 느끼는 이유는 어떤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감정만을 고집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령 예를 들면, 이런 일을 당하다니. '난 무조건 가치가 없어'(비합리적인 신념)라는 식은 우울감과 수치심으로 우리 자신을 내몬다. '당신이 나를 대접하지 않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나를 존중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나는 형편없는 인간이다.'(유색처리 부분은 참고문헌 : 합리적 정서행동 치료 중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혀둔다.) 이런 식의 사고는 대게 다른 감정이나 생각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이 마음의 공간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울대신 슬픔으로, 수치심 대신 실망으로 조금만 옆 길로 센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마음이 조금은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REBT의 목표는 내담자가 가진 비합리적인 신념의 정당성을 파악하고 그것이 정당하지 않다면 불안을 경험하는 내담자가 염려를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는 합리적인 신념과 비합리적인 신념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위협을 회피하려고만 하면 불안이고, 위협에 직면하려고 한다면 염려일 것이다. 어려운 사건 앞에서 끔찍한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과대평가한다면 불안일 것이며, 그 결과들을 현실적으로 평가한다면 염려일 것이다. 불편한 사건 앞에서 우리가 현실적인 평가를 한다면, 자기비판을 하지 않고 보다 관찰자적인 시점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REBT이론은 비합리적인 신념과 더불어 유연한 신념을 강조하고 그중에 수용도 강조하고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수용전념치료 ACT 등과 같은 마음 챙김을 기반으로 하는 상담이론과 그 맥이 닿아 있다고 느낀다.)


이러한 심리적 유연성은 내게 큰 통찰을 주었다. 우리는 가끔 한 가지 감정과 한 가지 생각에 빠져있곤 하지만, 가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다. 내가 꼭 맞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해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비틀면, 그 사람이 꼭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다.(왜 이렇게 이게 안되는지 가끔 필자도 괴롭다. 그래서 이 이론이 내게 더 공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비합리성은 계속 재발되며 끈질기게 다시 올라온다. 인간은 자신이 겪는 고통에 끝없이 괴로움을 덧붙이는 존재이며 증상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엘리스는 인간은 무의식에 대해 쉽게 포착하고 의식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인간의 개인의 경험과 가치, 자기실현경향성에 더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치료자는 어쩌면 한 가지 방향으로만 고착된 비합리적인 신념을 파악해 주고 내담자의 해석에 대한 정당성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은 나를 괴롭히는 나쁜 해석 방식보다 더 멋진 해석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끈질기게 올라오는 비합리적인 신념에 대항하려면 어느 정도 역시 내담자의 노력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여건만 맞아준다면 다시 자기 패배적인 습관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들의 유튜브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에서 이런 마음 챙김에 대한 영상에서 기억에 남은 비유가 생각나 지면에 옮겨본다. 우리의 마음은 넓은 수조와 같다. 수조 안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둥둥 떠 다니고 있다. 이러한 감정들은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여러 가지 감정중에 우리에게 맞는 적절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택,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나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새로고침을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선택을 하고자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능성의 인간을 의미하며, 자기 자비를 하는 인간을 의미하며, 보다 합리적 정서 선택을 하는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많은 상담이론들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고 한 가지 뜻으로 통합되는 면이 있다.


결국은 인간의 심리장애는 유연하지 못한 사고방식 때문이며 이 또한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기실현 경향성과 변화 가능성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에 대한 그 믿음 말이다. 인간이 합리적인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잠재력이 없다면 도대체 심리치료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역자의 자문은 내게 깊은 울림을 준다.


경직되고 확고한 신념들은 당연히 현실의 상황과는 늘 맞지 않아 깨지기 쉬운데 우리는 그것을 꽉 붙잡고만 있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이 가능하며, 수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결고 나약한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약하고 누구나 비합리적일 수 있으니 자신과 타인의 부족한 점을 수용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길. 그런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 본다.


우리 모두 흔들리며 살고 있다. 다만 보다 유연하게 그리고 맵시있게 흔들리길 바란다. 나 역시도.





참고문헌

- 합리적 정서행동 치료, Windy Dryden  저, 유성진 역, 학지사, 2016

- 심리치료와 상담이론, Richard S. Sharf 저, 천성문 역, 센게이지러닝,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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