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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Oct 13. 2024

자기만의 방

불안장애를 겪습니다






지난밤,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늦은 오후에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있었는데,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전날 운동의 여파로 몸이 굳어 긴장해서였을까. (어떤 이유로든 몸이 긴장되면, 마음도 덩달아 긴장하는 것 같다.) 불안이 솟으면 하던 일은 다 정지다.



왜 불안한지를 생각해 봐야 알 수도 없고, (대체로 이유가 없으니까.) 불안 해소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왜 불안하지, 묻는 것이 아니라, 나 불안하구나, 인정하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대처다. 몸이 스스로 긴장을 해소하려는지 눈물이 나려 했다. 좋은 징조다.



정도가 지나친 불안은 병적 상태. 정신적으로 아픈 것. 아픈 것을 아프다고 담담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내가 가진 큰 방패 아닐까. 약을 먹어야 해. 자기 전에 먹는 약을 먹었고, 다음날 복용할 약 봉투에 있던 항불안제까지 꺼내 먹었다. 십여 분 후쯤 가슴을 누르던 느낌이 풀리고 졸음이 쏟아졌다. 거실 의자에서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고 있다.



말간 아침이다. 반짝이던 네온사인과 가등은 모두 조용하고 골목마다 고여 있던 밤은 이미 흩어졌다. 가슴 졸이던 나의 밤도 위협을 멈추고 물러났다. 미로 같은 도시의 밤, 헤매는 우는 떠는 뛰듯이 걷는 뒷걸음질 치는 소리 지르는 때리고 부수는 기진하는 쓰러지는. 밤은 도시를 동시에 덮지만, 개별적으로 어둡게 한다. 나의 밤이 오로지 혼자였던 것처럼.



아직 깨지 않은 이들이 밤을 지나고 있겠지. 끙끙대며 이를 악 문 채 사랑하려고 다시 일어나려고 죽지 않으려고, 자기만의 밤을 성실히. 모로 누워 어깨를 움츠린 이를 바르게 누일까, 밝다고 이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귀엣말할까. 밤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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