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갈 때마다 듣는 와이프의 한 마디.
‘오빠, 오래 걸려? 휴대폰 두고 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오래 앉아 있는 저의 버릇을 아는 아내는 으레 습관처럼 말합니다.
내 장 건강을 걱정하는 최고 권위자의 말에 뜨끔하지만,
‘오래 안 걸려~’
티 나지 않게 한마디 내뱉고 자리를 뜹니다. 물론 휴대폰과 함께.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매번 반복되는 명절영화처럼 레퍼토리는 바뀌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2천만 남편분들은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지겨울 때도 됐는데 저 질문에 문득 나보다 날 더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기도 합니다.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저희들은 하루 중에도 사랑을 주고, 받으며 생활합니다. 화장실을 갈 때에 걱정해 주는 와이프부터 본가에 계신 부모님의 걱정 어린 안부 전화, 매일 아침 생존신고 하듯 인사하는 회사 팀원들.
지금까지 맺어 놓은 관계 속에서 상호안부와 걱정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사랑을 느낍니다.
<관심은 사랑일까? 사랑이 관심일까?>
생일날 카카오톡 선물을 많이 받는 친구들을 볼 때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제 와이프가 그렇습니다. 가까운 지인과 친척, 가족들을 살뜰히 잘 챙기는 편입니다.
주변에 나눈 만큼 와이프 생일날에는 10개가 넘는 생일 축하와 선물을 받습니다.
그와 반대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고 관계정리를 위해서 카카오톡에 제 생일 알림을 껐습니다.
생일을 공표하지 않고 ‘선물 안 주고 안 받기‘를 몸소 실천한 지가 어언 5년이 넘었네요.
첫 해에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선물 없이 생일 축하 인사만 전달했습니다. 그것마저도 해가 바뀌고 나니 인사만 하는 게 데면데면하여 잘하지 않았습니다.
자주 못 보는 지인들은 1년에 생일 혹은 연말 1~2번 인사치레 하는 정도인데, 생일을 건너뛰니 1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50% 연락 빈도가 줄은 만큼, 인간관계도 좁아진 듯합니다.
그렇게 연락이 줄고 관심을 받지 않는 만큼 주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주지 않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는 게 맞는 순서인 것 같네요.
‘주변 사람들을 다 챙길 수도 없는데 왜 저렇게 열심일까?’
이런 저의 모습과는 반대인 사람들을 보면, 다른 모습에 속으로 거부감이 들곤 했습니다.
안부를 묻고, 그간의 서로 몰랐던 일들을 공유하고, 의미 없는 약속도 오가고 말이죠. 상투적인 인사와 안부는 반골기질이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 생각했습니다. 남에게 쏟아붓는 에너지와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나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나에게 관심을 가질수록 좋은 점 들이 많습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이어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단순 친목 도모를 위한 회사사람들과 저녁식사 자리에 가서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술잔을 오가는 자리를 끊어냈죠. 20~30대 비교적 사회생활 초반 때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모임을 만들어 주도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산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관계의 동물이다>
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에 통해 흥미로운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30대 후반 이른 나이에 퇴사 후 대부분의 관계를 끊고 사는 혼자 사는 걸 택한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남자는 우리가 밖에서 옷을 사고, 차를 운전하며, 분위기 좋은 밥집에 가는 이런 일상들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혼자 있는 걸 선택한다면 불필요한 것 들이며, 굳이 많은 것들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일례로 구멍 뚫린 패딩을 기워 입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이유가 없어서 새 옷을 살 필요가 없다는 거죠.
“내가 만약에 저 사람처럼 산다면 어떨까?”
영상을 본 후, 곰곰이 상상해봤습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끊고 살아가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살 수 있을까.
답은 ‘아니요’였습니다.
제가 끊어내고 싶었던 건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인간관계였지, ‘모든’ 관계는 아니었던 겁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밤새 잘 잣는지 물어주는 아내.
지난 주말에 한 일을 커피를 마시며 물어봐주는 팀 동료.
매주 금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전화를 주시는 부모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요구되는 제 역할 또한 제 각각입니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내가 원할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멍 난 패딩을 기워 입으며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삶도 분명 하나의 선택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화장실 문밖에서 휴대폰을 두고 가라며 내 건강을 참견해 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삶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내 인생의 캔버스에 꼭 필요한 색을 더해주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제 에너지를 내어주려 합니다.
불필요한 관계를 걷어낸 빈자리에 비로소 선명하게 남은 이들.
그들과 주고받는 사소한 안부야말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해 주는 가장 따뜻한 온기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