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함께 걸을 수 있다.

by 정남이

휴일 아침 집 근처 저수지 산책을 돌며 우연히 노년의 부부를 보게 됐습니다.

두 분은 손을 꼭 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죠. 조금 뒤에 떨어져 걷던 저는 짤막한 아침 인사와 함께 그들을 지나쳤습니다. 지나치는 순간까지 할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까요.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님 한 분을 발견했습니다. 그냥 지나 칠 수 있었는데, 저수지를 2바퀴 도는 동안 그 자리에서 미동도 않고 앉아 계신 터라 기억에 남았습니다. 작은 벤치에 앉아 햇볕을 쐬고 계신 모습이 앞의 노년의 부부와는 대조적으로 어딘가 외로워 보였습니다.


물론 짧은 식견으로 바라본 세상이기 때문에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감을 느끼는 지점과 외롭다고 판단하는 지점 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편하게 내 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아주 큰 행복입니다.

친구, 가족, 동료 등 내 마음을 터놓고 교류할수록 마음의 큰 위로가 되죠. 인간관계에 지치다가도 위로받고 싶을 땐 또 사람을 찾게 됩니다. 속된 말로 병 주고 약 주는 게 모두 사람인 거죠.




<모두 우리가 되길 원한다>

우리에게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 틈에 섞이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참지 못하는 것은 결국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치기 어린 시절 친구들은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무리 지어 다니는 게 왜 그렇게 좋기만 하던지. 할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언제나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했습니다. 혼자 있으면 소외된 거 같은 기분이 들고, 어떻게든 만나서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 이곳저곳 기웃거렸습니다.


20대 때는 그 정도가 제일 심했습니다. 폭넓게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 여러 가지 활동들과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나중에는 인맥이 그게 제 가치를 입증하는 것 같았죠.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제가 뭐라도 된 것 마냥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습니다.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주변에 카톡 친구가 1,000명 넘게 보유한 친구를 보며 부럽기도 하고, 내 친구 목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많다고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인맥을 자랑스러워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사람들 간의 교류는 시끌벅적한 술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 나누는 소박한 대화 속에 있었습니다. 예전엔 나를 알아주는 '무리'가 필요했다면, 지금은 그저 곁에서 나와 발맞춰 걸어주는 사람만으로도 충분한 안정감을 느낍니다. 아침의 그 노부부처럼 말이죠.




<나로서의 독립>

이립 (而立). 30세는 홀로 서는 때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30살 이후가 돼서는 주변의 꼭 사람이 있어야 하는 기질이 바뀌었습니다. 서른을 넘어 마흔 가까이 되니 주변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속의 강직함이 생긴 것도 같습니다.

사람들 틈 속에서 마음의 안정감을 갖는 건 본능에 가깝습니다. 다른 이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낸 사람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확률도 높다고 하죠.


나이가 들수록 확연히 나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꾸준히 그리고 활발히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주변을 보면 각종 모임과 활동에 집중하여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사람들과 끊임없이 나누며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제 잘난 맛에 살았던 때가 있었죠.


‘혼자 못할게 뭐 있겠어?

인생은 결국 혼자야. 누구의 도움을 받는 건 사치야.’


회사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창 어깨가 으쓱하던 시절에는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았죠.

떳떳하게 본가에서 독립하고 나와서 제 앞가림을 하고 산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혼자서 취미 활동을 즐기고, 외식하고, 여행도 가는 그런 삶 말이죠. 실제로 그렇게 해보니 외롭다는 감정은 없고, 스스로를 제대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채워가다 보니 문득 아침에 보았던 벤치의 할머님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그분은 외로웠던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치열하게 사람들과 부대끼던 젊은 시절을 지나, 따뜻한 햇볕 아래서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고독의 시간을 즐기고 계셨던 건 아닐까요.


인맥이 가치라 믿었던 시절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니, 삶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아도, 내 마음을 나눌 진실된 몇 명과 온전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