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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Aug 30. 2024

직성이 풀리는 적성 찾기

그냥 사는 이야기


'나에게 맞는 일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중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 한 질문을 하고 있다.


그 중간 과정에서 일어난 것들은 '적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와 그 정의에 따라 나의 적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었다.


결론은, 내 적성에 맞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 다른 것들도 함께  하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어릴 때는 '나중에 뭐 하고 싶어?' 또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하고 누가 물으면 어떤 직업이 그 답이 되었다. 당연히 어린아이에게 보이는 직업이란 명확히 하는 일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옛날에는 의사, 선생님, 과학자 같은 답이 많았고,  지금에는 유튜버, 게이머, 디자이너 뭐 이런 눈에 띄는 직업들을 얘기할 것이다.


나 역시 '화가'라는 꿈이 있었다. 화가가 무엇을 업으로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그냥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나도 그림을 좋아했으니.


그런데, 중학교 때쯤이었나, 그냥 그림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무엇인가 의미를 전달하는 명쾌한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우리가 'Art'라고 부르는 그런 그림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그림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게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작업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불명확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디자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정의하는 디자인이란 어떤 '문제'를 조형으로써 풀어가는 과정을 보통얘기하는데, 나는 그때도 여전히 '적성'이란 '직업'과 동일한 것이었고 '디자이너'와 같이 적성을 포장하고 있는 수식어를 적성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디자인을 직업으로 하여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떤 사물을 디자인한다는 게 나의 적성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디자인이란 '멋있는 조형을 만드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잘하고 즐겨하는 것은 다양한 구체적인 모양이나 현상 들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뽑아내는 것이고 이것을 다시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 자체였다. 만들어진 사물자체의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게 뭔 말인가 싶을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하는 물리적, 정신적 활동을 쪼개어 더 작은 활동들로 나누면, 그 활동들은 디자이너라는 직업뿐 아니라 다른 직업에서도 필요로 하는 중요한 것이고, 우연히도 이 디자이너들은 그 활동을 디자이너라는 직업 통해 처음 접하게 되고 그 활동의 포장지일 뿐인 '디자인'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뭔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아니라, 뭔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서 규정하는 작업을 좋아했다. 그 이유를 찾아 규정하고 그것을 다시 적용하는 과정은 디자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그 요소를 실행할 수 있는 일중 처음 접한 게 디자인이었고 그래서 그것을 지금껏 하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로봇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 아이는 로봇 활동에서 무엇을 좋아하고 즐겨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승부를 가리는 게임의 요소를 좋아하는 것인지, 프로그래밍과 같은 논리적이고 엔지니어링적인 부분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로봇경기의 팀을 이끌고 작전을 짜는 전략활동을 좋아하는지.


각각의 요소들은 다른 활동에도 포함되어 있지만, 아마 그 아이는 로봇을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요소를 보다 빠르게 발견한 것일 것이다. 물론, 그 아이가 그 어떤 한 요소를 명확히 구분하여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하는 활동이나 직업의 대부분은 여러 요소가 섞여있는데, 그것을 구분하기도 어렵지만 선택적으로 그 요소만 경험할 수는 더욱 없다.


또 다른 예로 아주 쉽게 자동차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자동차를 좋아한다. 그게 어떤 요소인지 들여다보면, 4, 5세 남자아이가 동경하는 '힘'이나 '자율성'일 수도 있고 '작동원리'에 대한 호기심일 수 있다.  어떤 아이들은 다양한 자동차의 브랜드와 그 차이점에 집착하는 아이도 있다. 그것은 '시스템'에 대한 호기심 일 수도 있지만, '소유'에 대한 갈망 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자동차 엔지니어나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연히도 자동차는 태어나면서부터 접하는 기계문명으로 실제 움직이는 로봇과 같다. 그래서 자동차를 좋아하게 된 것뿐이다. 사실, 그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다른 요소들이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고 그 요소는 다른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직업들이 많다. 아이들도 그런 직업을 꿈꾸기 어렵다. 내가 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나는 형태를 디자인하지 않는다. 나는 시스템의 행동을 디자인하고, 그 시스템이 그렇게 동작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여기서 부모들이 할 일이 있다. 아이들이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단지 직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살펴보고, 그 활동 속 공통적인 요소를 찾아주는 것이다. 아이가 한 가지 활동만 좋아해도 괜찮다. 그 활동을 잘게 나눠보고, 그런 요소들이 포함된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소가 더 많이 포함되어 있고, 재미있는 재료로 이루어진 일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활동이 정말 좋아서 덜 좋아하는 요소와 결합된 일일지라도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일을 선택하게 된다. 우리도 취미 생활을 할 때, 귀찮은 준비 과정이나 기다림, 뒤처리, 피곤함을 감수하면서 놀이공원을 가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가는 것처럼.




내 적성을 생각해 보니,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었서도 할 것들이 많았다.  '원리'를 찾고 그것을 적용하는 다른 많은 직업들이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한의사'다. 한의사가 하는 일이 결국에는 병의 원인을 찾고 그것이 발생하는 원리를 반대로 적용하여 치료를 하는 것이다.


'원리'는 전체 구조도나 어떤 모양이나 현상의 '이유'인데,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심리학도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 하지만, 적성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Craftmanship을 즐긴다기보다, 그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지 이유들을 조직화하고 그것을 제작과정에 구조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즐긴다. 그 다지 손재주는 없는 듯하다. 그래서 자전거를 스스로 고쳐본 적도, 라디오를 분해해 본 적도 없다. 뭔가 만들 때 만드는데 드는 시간 보다, 그것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하는 시간이 훨씬 많이 든다.  아마도 그래서 리서처일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리서처는 실제 뭔가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냥 이유를 밝히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방향만 잡아 줄 뿐이다.




나는 최근에 적성에 맞는 또 다른 요소를 발견하였다. 사실 이 요소는 디자인과는 상당히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직업을 바꾼다면 사람들은 얘기할 것이다. '그 나이에 뭘 또 새로 시작하려고.. 그냥 잘하던 거 하지'
나는 과정을 즐긴다. 나는 내가 뭔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밝히고 그것을 적용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새로 발견한 그 적성이 가장 많이 포함된 직업을 선택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적성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면 그것은 '직성(直性)'이 된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얘기해주고 싶다. 직업을 고민하지 말고, 그다지 좋아한다고 생각되지 않는 일이라도 그 안에 어떤 요소가 마음에 드는지 살펴보라고. 그 요소는 꼭 어떤 분야여야 할 필요는 없다. 단순한 정신적, 감정적 활동이거나 감각적 활동일 수 있다. 그런 것이 포함된 일들을 다양하게 경험해 보라고.


평생직장의 시대는 갔다. 평생 직업의 시대도 가고 있다. 이젠 평생 적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직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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