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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Jan 24. 2023

버리냐 두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버리는 중 알쓸민잡 - 3. 의류정리

이사를 결정했다. 불가피한 상황은 아니었고, 다만 지금 집에서 더 살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처음 이곳을 선택했던 이유들 중 여전한 장점들이 있지만 살아온 시간이 생각을 바꾸기도 하니깐. 이사를 결심하니 그때부터 집안에 뵈는 것들이 죄다 ‘짐’으로 다가왔다. 처음 독립해 나올 때는 이삿짐센터도 부르지 않은 채 차로 몇 번 오가고 말았는데 살림이 많이도 늘었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십 년을 모조리 드러낼 수야 없겠지만 ‘최대한 버리기’를 마음먹었다. 그 과정 중 알쓸민잡, 알아둬야 쓸데없는 민주의 잡생각


혼자 사는 집에 아홉 자 옷장은 너무 크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다. 처음 들인 날은 그 육중함에 ‘오버했나?’ 생각도 했다. 그러나 충분히 넓다고 생각한 공간은 과장을 조금 섞어 빛의 속도로 채워졌다. 철마다 유행 따라 차려입는 패셔니스타도 아니요, 복장 규정이 까다로운 직장도 아니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옷을 과하게 사들이는 쪽은 아니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가 그러는 거다, “개뻥!” 누구냐고? 옷장 문을 열었을 때 지저분하게 엉켜 있는 옷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여기 이미 포화라고!’


우선 낡은 옷을 추렸다. 바로바로 버려야 했는데 ‘한 번만 더 입고’란 생각으로 여전히 옷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 번 ‘덜’ 입기로 한다. 다음은 여전히 말짱한 옷들이다. 최소 삼, 사 년 관심 밖이었던 옷들은 미련이 없다. 유행이나 패션 센스의 정도를 넘어 이렇게 저렇게 아무리 봐도 괜찮지 않은 것들은-구입 당시 도무지 뭔 생각으로 샀나 싶다-누구에게 줄 수도 없어 과감히 버렸다. 보기에 나쁘지 않은데 단지 작아진 것들은 나보다 날씬해 한 치수는 작게 입는 언니에게 우선 의사를 물었다. 개중엔 사서 태그도 떼지 않은 청바지도 하나 있었는데 “예쁜데 왜 안 입었어?” “아끼다 뭐 된 거지.” 씁쓸해도 어쩌랴 내 살을 원망할 뿐. 언니라도 잘 입으면 된다. 이십 대 때 곧잘 입었는데 지금 입자니 남들 눈이 신경 쓰이는 옷들도 있다. 물론 사람들은 남의 옷차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줄은 아는데, 나잇값 못한다거나 의도와 다르게 어려 보이려 애쓴다거나 하는 소리가 혹시라도 들릴까 지레 염려가 된다. 다행히 조카들이 이미 그 나이대다. 몇몇을 득템이라며 기분 좋게 골라줘서 고마웠다. 한 차례 정리 후에도 이사 직전까지 박스를 비치해 두고 또 버릴 게 없는지 호시탐탐 살폈더니 통틀어 큰 사이즈 박스 세 개쯤 분량을 처분할 수 있었다. 옷장은 숨이 트였다.


“십 년 된 건 버려야지.” “이거 십 년 넘었는데......” 하필 그때 마침 입고 있던 상의가 대학원 시절 산 거니 따져 보지 않아도 십 년은 넘고도 남은 것이었다. 모든 옷을 그렇게 입지는 않는다. 다만 크게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체형에도, 취향에도 맞아 계속 손이 가는 옷들이 몇 있는데 매의 눈을 흐릿하게 하는 주범이었다. 긴소매면서도 시원한 소재여서 매년 여름 줄기차게 입은 체크 셔츠, 두껍지 않고 품이 적당하여 가을엔 단벌로, 겨울이 다가오면 블라우스를 받쳐 입는 등 환절기 효용이 높았던 검은색 니트 같은 것들. 셔츠 소매와 칼라 끝은 이미 해졌고 니트는 군데군데 보풀이 일어났다. 그래도 선뜻 폐기 박스로 던지지 못하고 머뭇댔다. 결국 결단을 내렸지만 망설인 이유가 없진 않았는데 바로 철이 바뀔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 ‘왜 입을 게 없지?’였다. 주저 없이 꺼내 입는 만능아이템마저 없으면 다음 그 계절엔 정말 입을 게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옷장이 포화라고 열심히 버리는 중 할 생각이 아닌데, 옷이 많은데 입을 게 없을 걱정이라니 진짜 아이러니다. 이사를 마치고 드레스룸 정리를 하는데 닳은 옷 한 두벌이 또 눈에 띈다. ‘아, 이것도 버렸어야 했나?’ ‘이거 없음 내년 봄에 뭐 입으려고?’ 또 생각이 엉킨다. 정답은 뭘까?...... 아직 못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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